내 인생을 움직인 한 마디
9월 29일 아침 9시, 라디오를 들으면서
오늘은 얼마 전 헌혈하고 받은 메가박스 무료 관람 쿠폰을 쓸 차례다. 그동안 죽 잊고 살았는데 마침 보고 싶었던 영화가 아직 개봉 중이라 꼭 쿠폰을 쓰리라 마음먹었다. 극장으로 가는 길은 차와 자전거, 도보 중 여러 방법이 잊지만 영화가 시작하는 오전 9시 20분이라는 시간에 맞추려면 어쩔 수 없이 차로 가야 했다. 차에 타면 시동을 걸자마자 내가 좋아하는 93.9 CBS 음악 FM이 흘러나온다. 마침 9시가 막 지나 라디오에서는 사회자의 오프닝 멘트가 나오고 있었다. 긍정적인 확언이 자신에게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에 대한 내용이었다. 간단히 소개한다.
"난 날마다 더 좋아지고 있다."
"내 인생은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사회자의 그 음성이 갑자기 마음속으로 훅 들어왔다. 맞아, 저 말처럼 예전에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말이 있었지 또 그 말을 되뇌기도 했었는데, 그랬지, 그럴 때가 있었어 혼자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며 그 말이 뭐였더라 생각하기 시작했다. 곰곰이 생각하는 사이 대기 중인 신호에서 초록불이 들어왔고 다시 극장으로 운전을 시작했다.
2시간 정도 영화를 보고 나서 내 지금 모습에 대해 생각해봤다. 내가 치열하게 살았던 20대, 그리고 30대, 40대의 시간을 되돌려봤다. 과연 내 인생을 이끌어 나간 밑바탕에는 뭐가 있었을까? 여러 가지 책, 명언, 영화, 주변 사람들의 한 마디가 있었지만 가장 밑에는 신앙과 더불어 이 말이 있었다.
1997년 11월 해군 훈련소에서 훈련받던 시절이었다. 그때는 지금과는 달리 토요일까지 일하는 날이어서 훈련 역시 토요일까지 열심히 해야 했다. 그리고 일요일이 되어서야 온전히 하루를 쉴 수 있었다. 일요일에는 훈련소 안에 있는 여러 종교 중 하나를 선택해서 예배를 드릴 수 있었다. 난 기독교인이라 교회를 다녔다. 그래서 가톨릭 신자인 사촌동생(1살 아래의 사촌 동생이 나보다 1달 먼저 훈련소에 들어와 3주간 같이 훈련소에 있었다. 물론 얼굴을 보는 건 성당 미사 시간 포함 2번 밖에 없었다)을 만날 때만 빼고는 모두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렸다. 그러다 예배시간에 군목(군대에서 복무하는 군인이자 목사님이다. 계급과 성함은 기억나질 않는다)의 설교 시간에 내 인생의 한 마디를 듣게 되었다.
"행복은 작은 것에 감사할 줄 아는 것이고 멋진 인생은 가치 있는 일에 목숨을 걸 줄 아는 것이다"
"바로 이거다"라는 확신이 들었고 그로부터 한동안 군대에서 내가 쓴 편지의 끝에는 위 문장을 적었다.
행복은 작은 것에 감사할 줄 아는 것이다 : 내 주변의 작은 것이 무엇일까? 아침에 깨워도 일어나지 않는 5학년, 3학년 두 아들, 원하는 걸 들어주지 않아 짜증 내는 아이의 모습, 24시간 종일 근무하고 집에 막 들어왔을 때의 난장판이 된 모습. 평소에는 그냥 무시하거나 나 역시 짜증을 냈지만 작은 것에 감사할 줄 아는 게 행복이라는 말을 떠올리면 이 역시 넘어갈 수 있었다. 매번 성공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화내지 않고 넘어갈 확률이 3~40%는 된다.
멋진 인생은 가치 있는 일에 목숨을 걸 줄 아는 것이다 : 내 생각에도 난 돈을 많이 버는 체질은 아닌 것 같다. 돈은 빚 없이 아플 때 병원비 걱정하지 않고 아이 공부시킬 정도만 갖고 싶다. 돈보다는 가치 있는 일이 무엇인지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겐 가장으로서 생활비도 벌고 주변 사람들도 지켜줄 수 있는 소방관이라는 일이 참 마음에 들고 위 문장에 딱 들어맞는 직업이라 생각한다.
정말 말의 힘이라는 것이 대단하다. 25년 전 우연히 들은 설교 말씀이 두고두고 내게 영향을 미쳤을 줄이야.
오늘도 군대 시절 썼던 편지처럼 마지막을 이렇게 장식한다.
"행복은 작은 것에 감사할 줄 아는 것이고 멋진 인생은 가치 있는 일에 목숨을 걸 줄 아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