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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칠마루 Oct 14. 2022

산 넘어 산을 향해 끊임없이 간다

조정래 작가님의 강연을 듣고 나서

스물세 살 무렵, 군대를 갔다 오고 난 후 세상 사는 게 참 팍팍했다. 동기들은 다 어학연수를 가네, 복학을 하네 바쁜 삶을 살고 있었다. 그에 비해 나는 그들과는 달리 공부 대신 돈을 벌어야 했고 각종 아르바이트를 하며 남는 시간을 쪼개 홀로 영어 공부를 하고 있었다. 돈이 없어 힘든 삶이었지만 뒤처지기는 싫었다. 그래서 속으로  자신을 더욱 다그치며 살았다. 그렇지만 하루하루 힘들게 일해도 그게 쌓여 한 달이 되고 6개월이 지나도 돈을 모을 수 없었다.      


내가 어학연수를 가려고 1년 가까이 모았던 돈은 모두 아버지 사업자금으로 들어갔다. 그에 실망하지 않고 다시 일을 계속했다. 아니 사실은 되게 실망을 많이 했다. 같이 일했던 친구는 캐나다로 떠나가 유창한 영어 실력을 얻어 왔지만 나는 기회부터 차단당했기에 상대적인 박탈감이 크게 느껴졌다. 그래도 돈을 벌어야 살아갈 수 있었다. 계속 땅바닥만 치며 실의에 빠진 채 지낼 수는 없었다. 다시 일을 구했고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는 식자재 도매상에서 밀가루, 식용유를 옮겼고 토요일 저녁부터 월요일 새벽까지는 주자장 요금 정산 일을 했다. 하루도 쉬지 않으며 8개월을 일했지만 어려운 집안 살림에 보태느라 통장에는 복학하고 딱 1학기만 버틸 수 있는 돈이 전부였다.  

   

왜 이리 내 인생은 힘든 거지? 왜 난 부모의 도움 없이 세상을 살아가야 하나? 가끔 학교에 갈 때면 아무 걱정 없이 공부할 수 있는 주변 친구나 선후배들이 참 많이 부러웠다. 그래도 대학은 마쳐야 그나마 대기업에 원서를 낼 자격을 얻을 수 있었다. 당시 내 목표는 어떻게 해서든 학교를 졸업하고 남들이 부러워할만한 대기업에 합격하는 것이었다.  

    

남들은 학점을 걱정하고 연애를 하며 20대 청춘을 제법 거창하게 즐기고 있었지만 내겐 그런 일들은 사치였다. 항상 수업이 끝나면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다. 물론 저녁 시간의 자유는 없었다. 평일에는 하루에 4시간만 자며 일을 했고 그 일자리(인기가 많은 알바자리라 6개월 정도 하면 더이상 할 수 없었음)가 끊긴 후엔 주말에 하는 일을 구했다. 그렇게 해야 겨우 등록금과 밥값, 전공 책을 사볼 수 있었다. 공부를 특별히 잘하지 않아 장학금은 세 번밖에 못 탔다. 그렇기에 더욱 열심히 일을 해야 했다. 지갑이 얇은 만큼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집에서 내게 손 벌리지 않는 것만 해도 다행이었다. 기댈 곳은 없었고 오직 스스로 모든 걸 헤쳐 나가야 했다.   

   

그러다 2001년인가 2002년 가을쯤, 학교에서 조정래 작가님이 강연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휴가 나와서 태백산맥과 아리랑을 모조리 독파하며 험난한 그 시대를 책으로나마 읽게 해 준 작가님을 뵐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일을 하루 쉬며 강연에 참석했다. 약 1시간 정도의 강연이었다. 원고지에 손으로 글을 쓰는 작가님이었기에 어깨가 좋지 않아 손으로 마이크를 든 채 강연을 하지 못하고 단상에 놓여 있는 스탠드에 마이크를 고정시킨 후 말씀을 이어나갔다. 그중 인상적인 한 마디를 써본다.  

    

“누가 내게 물었습니다. 왜 태백산맥이나 아리랑 같은 장편소설을 쓰냐고? 힘들지 않습니까?

내게 주어진 사명은 글을 쓰는 겁니다. 힘들다고 쓰지 않을 수는 없어요. 인생은 산 넘어 산입니다. 힘들 때도 즐거울 때도 있지만 대부분 힘든 일 투성입니다. 그럴 때마다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어요. 난 저 앞에 산이 있으니까 그냥 그 산을 넘는 겁니다.”   

  

그 말이 내게 큰 위안이 되었다. 하루하루 삶을 살아내며 남들보다 뒤처지지 않기 위해 발버둥 치는 내게, 힘든 일은 살면서 피할 수 없으니 그냥 버텨내야 한다고. 힘들다고 포기하거나 넘어지지 말고 힘내서 앞으로 나가라고 작가님이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물론 그 강연을 듣고 나서 기적이 일어나 내 생활이 바뀌지는 않았다. 다만 일이 힘들거나 삶이 힘겹게 느껴질 때 그냥 다 포기하고 어딘가에 숨어버리고 싶을 때 나를 지켜주는 마음속의 한 줄기 빛이 돼주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살아가다 보면 반복되는 일상이 지겹고 날 지탱해주는 주변의 모든 게 날 구속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그래도 어쩌나? 인생은 살아내는 것이고 인생의 길에서 산은 끊임없이 나올 수밖에 없으니 나오는 족족 오르는 수밖에. 맑게 개인 가을 하늘이 오늘만은 왠지 흐리지만 그래도 한 걸음씩 내딛어 본다.


제목 이미지 출처 :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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