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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칠마루 Jul 21. 2023

심리 회복을 위한 특별 교육 이수 계획서

이런 것도 있었구나

지난 7월 5일, 00 초등학교의 한 회의실에서 큰아들이 관련된 학생 인권위원회가 열렸다. 참석자는 교감선생님을 비롯한 선생님 8분과 학부모인 우리 부부 그리고 인권위원회의 당사자인 큰아들이었다. 물론 아들은 위원회가 열린 1시간 동안 전부 참석하지 않고 제일 마지막에 본인의 의견을 제시하는 2분 정도만 참석했다. 1학기동안 큰아들이 선생님께 대들고 ADHD로 인해 친구들과 다투는 등 글로 쓰기엔 애매한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다. 그 결과 큰 아이는 학교 인권위원회에 회부되었다.       


인권위원회에 참석하며 느낀 점은 크게 세 가지다. 첫 번째로는 이미 위원회가 열리기 전 선생님들은 답을 어느 정도 정해놓고 들어오신다는 것이었다. 굳이 학부모인 우리를 위원회에 참석하려고 부른 것은 아이의 상황에 대해 부모가 얼마나 알고 있는지, 아이에 대해 얼마나 신경 쓰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일종의 요식행위였다. 부모인 우리는 그 위원회에 참석해서 아이가 지금까지 상담한 내역, 병원에 다니며 몇 년째 성실히 치료받고 있으며 아이가 일부러 말썽을 일으킨 게 아니다는 내용을 마치 변호사처럼 항변했다. 만약 위원회에 참석하지 않았다면 아이에게 신경쓰지 않는 부모라는 인상이 남았을 것이고 그로 인해 더 나쁜 결과가 나왔으리라는 건 분명했다.     


두 번째로는 ADHD에 대해 선생님들이 아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었다. 단지 ADHD에 걸린 아이들을 가르친 경험만 많았다. 그래서 본인들이 겪은 경험을 통해 ADHD에 대해 많이 안다고 자부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이 말 때문이었다. 위원회에서 교감선생님이 하신 말씀 중 가장 어이없었고 화가 났던 말이었다.     


교감선생님 : 아이가 일반 정신과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고요? 그럼 상급병원에 가서 치료받는 것은 어때요? 요샌 MRI처럼 검사하면 ADHD 증상이 바로 나오기도 한다던데...

나 : (저 말을 듣는 순간 아주 신랄하게 반론을 제기하고 싶었으나 참았음, 교감선생님과 논쟁해서 이겨봐야 상처뿐인 영광이며 아이에게 나쁜 영향을 끼칠까 걱정되었음, 일부러 아무 말 않고 듣고 있었으나 너무 어이가 없었음) 선생님, 요즘 종합병원 가면 1~2년은 기다려야 초진을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 아이가 진료받고 있는 병원도 2달 정도 기다려 겨우 진료를 받았던 병원입니다.       


교감선생님의 말을 듣자마자 어이가 없었고 화도 났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부모인 우리가 모르는 새로운 ADHD 진단법이 개발되었는지 되묻고 싶었으나 아이가 걱정되어 참을 수밖에 없었다. ADHD 진단을 받기 위해 5시간 정도 3~4가지 심리검사를 받았던 때가 떠올랐다. 내가 알고 있는 진단법은 위와 같은데 단순하게 MRI 찍어서 나오는 ADHD 판독법이 있다고? 무슨 안드로메다에서 오셨나? 말씀을 하시려면 제대로 공부하고 오셔야지, 학부모에게 상처를 주기 위해 일부러 저렇게 말씀하시는 건가? 별의별 생각이 들었다. 아이 엄마도 나도 모두 억울했고 분했다. 그렇지만 아이를 위해 저자세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세 번째로는 후속조치인 특별 교육 이수계획서를 제출하라는 것인데 이 역시 정말 요식행위의 절정이었다. 인권위원회가 열린 뒤 10일쯤 지난 7월 14일에 아이를 통해 세 종류의 서류를 제출하라는 결과 통지서를 받았다. 아이의 상담 내역서, 정신과에서 치료받은 내역서, 그리고 대망의 특별 교육 이수계획서였다. 통지서를 아무리 읽어봐도 내역서를 뽑을 때 기간이 얼마나 되는지는 나와있지 않았다. 또한 교육 이수 계획서라는 말만 있을 뿐 아무런 보충설명이나 자료도 없었다. 참, 이걸 어찌하란 말이야, 답답했다. 어쩔 수 없이 학교에 문의한 결과 얻은 답변은 아래와 같다.      


선생님 : 상담내역서와 진료내역서의 기간은 올해 1월부터 현재까지입니다(그럼 그걸 써놓으면 될 것 아닌가 서류에 한 줄 적는 것이 뭐가 힘들다고). 그리고 특별교육 이수 계획서는 본인도 잘 모른다며 경기도 전역에 흩어져있는 각종 기관과 그 연락처를 보내주셨다. 아이의 불안감 저하와 감정조절 기술 향상을 위한 어떤 교육이든 괜찮다고 했다. 아마도 누군가가 작성했던 옛 문서를 뒤져 그대로 복사, 붙여 넣기 하신 것은 아닌지 심히 의심됐지만 일부러 가만히 있었다. 선생님이 말씀하신 각종 기관은 군포, 양평, 화성 등 집과 최소 30km 떨어진 곳이 대부분이었다. 도대체 어느 학부모가 일부러 교육받기 위해 먼 곳으로만 찾아다닌다는 말인가? 고민하다 교육 이수 계획서는 내가 직접 작성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온 계획이 바로 이것이다.   

  


계획서를 쓰면서 짜증이 많이 났다. 엉뚱한 ADHD 검사를 언급했던 교감선생님, 구체적인 설명도 없이 계획서를 쓰고 기간이 명시되지 않은 진료 및 상담 서류를 제출하라는 선생님을 생각하니 대충 써서 계획서를 주고 싶었다. 마음 한편으로는 똑같은 사람이 되지 말자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일부러 최소한의 기준으로 낮춰 계획을 만들었다.      


아이는 점점 좋아지고 있다. 다만 좋아지는 속도가 더디어서 부모인 우리가 답답할 뿐이다. 이번 여름방학을 지나 더욱 성숙해질 아이를 기대하며 오늘도 좋은 부모가 되길 다짐해 본다.


이미지 출처 :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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