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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칠마루 Jul 15. 2023

병원을 사랑하는 큰아들

7개월간 벌써 12번째

ADHD를 가지고 있는 큰아들은 성격이 예민하다. 보통 사람에겐 1, 2로 느껴질 자극이 그 아이에겐 7, 8 정도로 몇 배이상 느껴진다고 말하는 게 가장 이해하기 쉬울 것 같다. 또 거기에 불안함도 있어서 세상 모든 게 그 아이에겐 두려움을 주는 요소가 될 수 있다. 위와 마찬가지로 아픔을 느끼는 것 역시 다른 아이에 비해 민감한 편이라 또래에 비해 아프다고 말하는 빈도가 높다. 그 결과 큰아들은 자기 몸이 조금만 아파도 학교 보건실에 가서 쉬거나 진통제를 요청했고 병원 진료 역시 숱하게 많았다. 오죽하면 보건선생님이 큰 아이를 보며 “오늘은 왜 왔어”라고 할 정도다.     


그런데 올해는 좀 심했다. 지금까지 이 병원에 방문한 횟수만 7개월 새 12번이다. 흔한 감기 진료가 아니다. 외과 4번(작년 12월 초 큰아들의 엉덩이에 난 종기 제거수술 및 경과 관찰), 성형외과 진료 3번(넘어질 때 입술 안쪽이 교정부위에 걸려 찢어짐 → 5바늘 꿰맴), 신경외과 진료 2번(점핑운동을 하다 허리 쪽 근육 놀람, 머리 타박상), 정형외과 진료 3번(손목 접질림, 발 뒤꿈치 부상 → 정형외과 진료받을 때마다 왼쪽 손목 반깁스, 오른쪽 발 반깁스 및 목발로 마무리)이다.      


어제는 내가 비번이어서 집에서 쉬고 있을 때라 아내는 나보고 큰아들이 하루 발을 다쳐 오늘 조퇴할지 모르니 잘 봐달라는 부탁을 하며 출근했다. 아니나 다를까 예민한 큰 아이는 발 뒤꿈치가 아파 병원에 가고 싶다며 12시쯤에 전화를 했다.      


아들 : 아빠, 어제 다친 발이 아파 병원에 가고 싶어요

나 : 지금이 12시라 병원은 2시까지 점심시간이야, 그러니까 밥 먹고 조금만 참았다 수업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그때 병원에 가자

아들 : 지금 조퇴해서 병원에 가고 싶어요

나 : 지금은 점심시간이라 진료가 안되니까 학교 마치고 오면 병원 가자

아들 : (마지못해) 네, 알았어요     


1시 20분쯤 되니 아들에게서 다시 전화가 왔다. 짜증을 꾹 참아가며 통화를 했다. 아까 말한 내용이 그대로 되풀이되었다. 이번 학기 동안 큰아들의 마음 상태가 좋지 않아 조퇴하는 것에 대해 너그럽게 허락했더니 이젠 몸이 조금만 불편하면 집에 오려고 하는 아들이 아주 못마땅했다. 그래서 일부러 더 강하게 얘기했다. 학교 마치면 병원에 갈 거라고 하니 아들은 그제야 조퇴하는 걸 단념하는 것 같았다.

    

병원 도착한 지 30분 정도가 지나 큰아들은 정형외과 진료를 마치고 목발을 짚고 나타나셨다. 아주 상전이 따로 없다. 목발을 짚고 있는 아이를 보니 안타까우면서도 속에서 화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하는데 그 이유는 명확했다. 집에서 엄마에게 꾸중을 듣고 나서는 본인이 자기 화를 주체할 수 없어 쿵쿵대며 방 안으로 들어가다 발 뒤꿈치를 야무지게 안방 문틀에 부딪혀서 다쳤기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아이에게 한 마디 해야 하지 싶었다. 마음 속으로는 그래도 참자 하며 계속 갈등하고 있을 때였다. 이젠 하늘도 나를 도와주지 않았다. 병원에 갈 때만 해도 보슬비가 내리더니 진료를 마치고 집에 갈때는 하늘에서 장대비가 쏟아진다. 더군다나 오늘은 목발에, 반깁스에 진료비만 8만 원이 넘었다. 장마로 인해 습도는 높지, 장대비를 맞아 짜증은 아주 팍팍 솟구치지, 결국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이에게 버럭 화를 내며 말했다.     


나 : 너, 도대체 이게 몇 번째야?

아들 : 아빠, 화났어요?

나 : 그으래, 아빠 화났다. 이게 몇 번째냐고? 12월부터 오늘까지 10번도 넘게 이 병원에 왔잖아. 이게 정상이야? 왜 네 몸 하나 간수를 못 해?

아들 : (묵묵부답)

나 : 오늘 너 병원비만 8만 원 넘게 나왔어 이놈아. 엄마, 아빠가 밖에서 힘들게 일하면 뭐 하냐? 아빠가 언제까지 너 병원 데리고 갈까? 이 병원 의사 선생님들과 모두 안면 트고 인사할래? 외과, 정형외과, 성형외과, 신경외과 다음은 내과 진료 볼 거야?

아들 : (기죽은 목소리로) 아니오.     


내가 못나서 참지 못하고 아들에게 짜증을 확 쏟아버렸다. 아들이 잘못했다고 다음부터는 혼자 화내다 다치지 않겠다는 말을 듣고 싶었는데 그걸 원하는 대로 표현하지 못했다. 바보같이 아들에게 상처만 남기고 말았다. 풀이 죽은 채 오후 내내 가만히 있던 큰아들은 퇴근하고 들어온 아내를 보자마자 쪼르르 달려가더니 “아빠가 오늘 나한테 화냈어요”라며 엄마에게 하소연을 시작했다. 아내는 아들의 성향을 알고 있기에 반쯤 속아주며 내게 “왜 00 야단쳤나”며 과장된 몸짓으로 아들의 속을 달래주려 애썼다. 그렇게 아들의 맘은 풀어졌지만 내 속은 왜 이리 찜찜한지... 이 아이를 키우며 정말로 그 병원의 모든 의사 선생님들과 안면을 트지 않을까 심히 걱정되는 밤이었다.  


이미지 출처 :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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