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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칠마루 Aug 26. 2023

파도풀에서 온종일 놀았던 두 아들

이게 얼마만이냐!

큰 아들은 생각보다 싫증을 잘 내는 편이었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엄마, 아빠를 졸라 자신이 맘에 드는 걸 얻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관심의 대상이 다른 것으로 금세 바뀌었다. 예를 들면 2주 정도를 골라 좋아하는 레고를 얻은 지 2~3일이 채 지나기도 전에 이번에는 다른 것에 관심이 생겼다며 새로운 것을 요구하는 식이었다. 그럴 때마다 아이에게 “네가 원하는 걸 다 가질 수 있는 게 아니다”라며 훈육을 했지만 이미 생겨버린 새로운 관심의 대상을 바꿀 순 없었다. 또 아이의 특성상 한 번 꽂히면 엄마, 아빠를 들들 볶아대기에 2주나 한 달 정도의 시간을 정해서 아이의 요구를 들어주는 쪽으로 이끌어가는 편이었다.      


올여름처럼 피서를 위해 여행을 가도 위와 같은 일이 반복되어 일어났다. 아이를 위해 비싼 입장료를 내며 온 가족이 워터파크를 왔는데 아이는 워터파크에 들어온 지 서너 시간이 지나면 재미없다며 밖으로 나가자고 졸라대기 일쑤였다. 둘째 아이는 형과 달리 이것저것 더 놀고 싶어 하는데 워터파크에서 나가자는 큰 아이와 더 놀자는 둘째의 상반된 입장을 마주할 때면 지끈지끈 머리가 아파왔다. 결국 나가자는 큰 아들의 성화에 못 이겨 나와 둘째가 워터파크에 남거나 나와 큰 아이만 워터파크를 빠져나오곤 했다. 


비싼 입장료를 내면 뭘 하나? 매년 워터파크에 들어가기 전이면 큰 아들에게 이번엔 재미있게 놀겠다는 다짐을 받았지만 그때뿐 다짐의 효력은 얼마 못 가 사라졌다. 그래서 올해도 아내가 물놀이를 위해 워터파크 입장권이 포함된 패키지를 구매했다길래 티격태격 다투기도 했었다. 내겐 이번에도 큰 아이는 점심 먹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올 텐데 그걸 굳이 돈 들여서 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고정관념이 생긴 상태였고 반면에 아내는 그래도 아이들의 경험을 위해선 여름에 제대로 물놀이를 시켜줘야 하지 않겠냐는 입장이었다. 그래, 어쩔 수 없지, 이번에도 못 이긴 척 아내의 말을 따랐다. 그런데 놀라운 반전이 일어났다.   

   

1. 파도풀, 2. 워터 슬라이드(?)


큰 아들은 6학년, 둘째는 4학년이다. 10시쯤 워터파크에 들어왔는데 이번엔 파도풀이라고 10시부터 18시까지 매시각 정각부터 30분 동안 단계별로 인공파도가 밀려오는 야외 수영장이 있었다. 온 가족이 모두 신기해하며 몰려드는 인공파도를 쳐다보고 있었다. 자극이 강한 놀이를 좋아하는 큰 아들은 워터 슬라이드 등 여러 가지 기구를 보자마자 달려가더니 1시간 만에 모든 기구를 섭렵하고는 다시 내가 있는 파도풀로 찾아왔다. 형과는 달리 둘째는 밀려드는 파도를 즐기며 노느라 바빴다. 두 아이 모두 생각보다 잘 노는 모습에 내심 흐뭇했다. “그래, 이번엔 돈 아깝지 않게 제대로 놀아라, 이놈들아” 속으로 생각했다. 오후 1시가 넘어 점심을 먹고 일부러 식당 안에서 30분을 더 있었다. 아이들은 식당 옆에 있는 실내 수영장을 오가며 자기들 나름대로 즐기고 있었다. 잘하면 오늘 워터파크 끝날 때까지 놀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조금씩 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밥을 먹고 충분히 쉬고 난 다음 다시 야외 수영장으로 가니 오후 2시 30분이 넘었다. 시간별로 높이가 달라지는 파도를 맞아 이리저리 굴러 다녔다. 숨을 잘못 내쉬어 물을 먹거나 귀에 물이 들어간 건 여러 차례, 드디어 가장 센 단계의 파도가 밀려드는 17시가 되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난 오전 11시의 8단계의 파도일 때도 힘들었는데 둘째는 9단계의 파도에서도 아빠와 같이 놀고 싶다고 졸라댔다. 아이 혼자 놔두고 나만 도망갈 수는 없었다.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까, 8단계도 견뎠는데 이게 실제 파도보다는 덜하지 않겠냐. 아들도 있는데 그냥 해보자” 그리 생각했지만 그래도 9단계는 확실히 9단계인 이유가 있었다. 거센 파도를 맞자마자 둘째와 나는 몇 m 뒤로 그냥 날아가버렸다. 가장 센 파도라는 안내방송이 나오자마자 겁이 난 큰 아들은 엄마와 멀찌감치 피해 있었고 나와 둘째가 파도를 맞고 날아다니는 모습을 보며 즐거워했다. “그래, 그렇게라도 재미있게 즐기면 되지”, 파도를 맞아 이리저리 굴러 다니지만 이게 어디냐 싶었다. 다른 아이들은 물놀이가 재미있어서 하루종일 놀았다는 말을 듣고는 부러워하기만 했던 우리 가족이었는데, 드디어 우리에게도 워터파크에서 하루종일 지내는 역사적인 순간이 찾아올 줄이야, 큰 아들을 키우며 오랜만에 마음속이 꽉 차옴을 느꼈다.      


이미지 출처 :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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