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와 기도
지난 20일, 큰 아들의 대안학교(중학교) 입학 결과가 발표됐다. 기대를 많이 했으나 최종 결과는 불합격이었다. 사유는 따로 언급되지 않았다. 아이의 대안학교 입학을 위해 그 학교에 방문한 게 벌써 몇 번째였던가? 7월 말 사전 방문 및 면담, 9월 초 입학설명회 참석, 10월에만 가족면접, 학생면접으로 왕복 150km 거리를 총 4번이나 달려왔었다. 그런데 낙방이라니, 힘이 주욱 빠지는 결과였다. 아이의 대안학교 합격을 위해 장모님과 아내는 입학원서를 쓸 때부터 약 50일 가까이 기도하고 있었는데, 그래서 더 크게 실망했는지도 모른다.
큰 아들은 지금도 아침, 저녁으로 ADHD 약을 먹고 있으며 1달에 2~3번은 1시간씩 상담을 받고 있다. 아들이 전보다 더 나아지고 있는 것은 분명한데 그 좋아지는 속도가 느리다 보니 가끔씩은 아이를 돌보는 게 힘에 부칠 때도 있다. 부모의 기대는 LTE인데 아들은 2G의 속도로 좋아지니 부모와 아이 모두 다 힘들 수밖에.
아이의 머릿속은 많은 생각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순식간에 사라지는 게 반복되니 아이는 평소에 좋아하는 것이 아니면 집중하는 것을 힘들어했다. 학교에서 선생님이 중요한 공지사항이라고 얘기했어도 그걸 잊어버리고 부모에게 얘기하지 않은 것, 우산을 쓰고 등교한 뒤 학교에서 잃어버린 것이 몇 개인지는 일부러 세지도 않았다. 다만 게임이나 레고 등 좋아하는 일을 할 때의 집중력은 또래 중 상위권이었다. 글씨 쓰는 것을 귀찮게 느껴 영어나 한글, 숫자 등 아이가 풀어놓은 영어나 수학 문제집을 채점할 때면 이게 글자인지 지렁이가 기어가는 것인지 한숨이 자연스레 나올 때도 많았다.
전에 어떤 작가님이 ADHD인 자신의 아이에게 이런 설명을 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00야, 너는 엔진은 페라리인데 브레이크는 경차에 달린 거야, 그래서 지금 상담을 하고 약을 먹고 있는 거야, 브레이크를 업그레이드해야 하거든.” 그 작가님처럼 큰 아들에게 자신의 상태를 설명했지만 페라리 엔진에 경차 브레이크를 가진 아이를 양육하는 게 정말 쉬운 일은 아니었다. 보통 아이 3명 키우는 것보다 큰 아들 1명 키우는 것이 훨씬 힘들었다. 이유 없는 짜증(아들에겐 자기만의 이유가 있다지만 부모인 우리는 이해가 안 되는)과 보통 사람과는 다른 발작버튼(혼자 상황을 곡해하거나 지나가는 말 한마디에 버럭 화를 냄)을 지닌 아이와 집에서 10년 넘게 씨름해 온 아내와 장모님이 존경스러웠다.
이 아이를 잘 키우려면 좋은 학교를 보내야 하는데, 바라던 학교에서 떨어지니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처럼 마음이 바빠졌다. 수많은 대안학교 중에서 우리 부부가 원하는 학교의 모습은 딱 2가지를 충족하는 학교였다. 공부보다는 신앙 중심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독교 대안학교와 집에서 등하교할 수 있는 학교를 찾아야 하는데 앞이 막막했다. 불합격 소식을 접하고 실망한 건 20일 금요일 저녁뿐, 계속 실망한 채 허우적댈 수는 없었다. 나보다 아내가 더 실망한 눈치였지만 다행히 아이의 교회 주일학교 담임선생님과 우리 가족을 10년 넘게 지켜보신 권사님과의 연이은 통화로 아내의 마음은 많이 진정되어 보였다.
다음날인 21일 토요일, 아내와 나는 경기 남부 화성과 오산, 용인, 수원 근처의 대안학교를 깡그리 뒤졌고 아직 우리가 입학 지원할 수 있는 몇몇 학교가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혹시 모르니 이번에는 2곳 이상의 학교에 지원하기로 아내와 이미 합의했다. 우리 가족이 앞으로 지원할 곳은 오산의 하늘빛우리학교와 용인의 새물결기독학교 두 곳이다. 이번 주말 10월 28일에 다리를 다쳐 움직이지 못하는 나를 빼고 온 가족이 하늘빛우리학교의 입학설명회에 참석할 예정이다. 그리고 용인의 새물결기독학교는 아마도 11월 초에 입학설명회가 열릴 것 같다.
기독교 대안학교 입학할 때는 보통 이런 질문을 많이 한다. 기독교 세계관에 입각한 부모의 교육 자세는? 아이의 장단점은? 아이가 병원 치료를 받는지 여부, 학교가 전부 사립이라 부모의 수업료 납부가 학교의 재정에 매우 중요하므로 성실한 수업료 납부 여부, 학교의 부모 교육 시 성실하게 참여할 것인가를 입학원서에 답해야 한다. 부모의 등록교인 여부, 다니는 교회에서의 헌신 여부 등도 보는 곳도 있었다.
어찌 됐건 지금 내 삶을 돌아보면 모든 걸 스스로 해온 듯 보이지만 조금만 깊게 들어가면 그게 아니라 나보다 나를 더 사랑하시는 주님의 은혜로 여기까지 온 사실을 깨닫게 된다. 아이의 대안학교 입학 문제도, 그와 더불어 아내의 직장(현재 왕복 100km 출퇴근 중) 문제, 온 가족이 지낼 보금자리(지금 사는 집을 팔고 새로 살 곳을 구해야 함) 등 당장 해결해야 하는 문제 투성이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찬송가의 가사처럼 감사와 기도뿐이다. 장모님의 말씀처럼 무슨 일이든지 기도를 앞세우고 가면 마무리가 좋지만 미리 기도를 하지 않고 내가 앞서서 일을 할 때면 잘 되던 일도 흐지부지 될 때가 많다는 사실을 되새겨본다. 요즘 우리 교회에서는 추수감사 특별새벽기도회를 하고 있다. 이번 기회에 감사와 기도를 통해 우리 가족의 신앙이 성숙해지길, 산적한 문제가 주님의 순리대로 해결되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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