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항공편 예매 시 이름을 꼭 확인하자

하마터면 출발조차 못할 뻔한 썰.txt

by 회색토끼



이 여행은 2019년 2월에 다녀온 것으로 지금으로부터 6년 전입니다. 이 때의 김토끼는 무려 20대입니다. 20대임을 감안하고 읽어주세요. 애엄마 아니고 30대 아니고 독수리 만나기도 훨씬 전입니다.

코로나 이전의 여행이기에 여행 환경이 지금과는 사뭇 다를 수 있으며 6년 동안 기억이 빛바래져 빈 공간은 상상력으로 채웠음을 엄숙하게 선언합니다.


드디어 여행 날 아침이 밝았다. 난 여행용 크로스백을 질끈 매고 든 건 패딩뿐인 것 같은 두툼한 캐리어를 끌며 공항으로 향했다.


겨울 유럽여행 가지 마세요

겨울 유럽 비행기 값이 싼 이유가 있었다. 겨울 유럽, 특히 1~2월은 우기였다. 춥고 비 오고 여행가에겐 최악의 날씨의 연속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유럽여행을 혹시 계획한다면 싼 비행기표값에 혹해 설연휴에 가지 않는 것을 추천한다. 대한민국 국민은 사진의 민족이 아니던가. 가면 두툼하고 칙칙한 패딩만 입고 찍은 사진만이 남을 것이다. 물론 파리지앵 흉내를 내겠다며 코트를 일관하는 뚝심을 보일 순 있겠으나 그랬다간 대번에 감기 걸리고 나머지 여행 일정을 소화하지 못할 것에 내 검지 손가락을 걸 것이다.

기억하라! 복창하자! 겨울 유럽! OUT!




여행기인데 그땐 여행 가지 말라고 쓰는 나 자신이 부끄럽지만 많은 여행초보들이 나 같은 실수를 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적는다. 그래도 대한항공 직항을 100만 원 이하로 얻었는데 하나를 얻으면 하나는 포기해야 하는 게 삶의 진리였다. 다 가질 순 없었다. 그게 날씨 악마로서의 시작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내가 예약한 비행기는 오전 9시 55분이었다. 과연 나는 보딩 몇 시간 전에 공항에 도착하는 게 현명할까?


보딩 3시간 전엔 공항에 가 있자


왜왜? 미쳤니? 3시간 동안 뭐 하려고?


마지막으로 해야 할 일들이 꽤 많다. 생각보다 보안 검색대의 줄이 길다. 만약 유심을 미리 구매하지 못했다면 공항에서 급하게 살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그리운 한국 음식을 마지막으로 먹어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인천공항 지하에 있는 한식 푸드코트에서 파는 김치찌개는 정말 맛이 일품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내 최애 설렁탕 집 중 하나이자, 성시경의 먹텐에서도 나왔던 영동설렁탕이 입점해 있었지만 몇 년 전에 사라졌다.

무엇보다도 만일의 응급사태에 대비해서라도 최대한 일찍 가 있는 게 좋다. 이 날도 내가 3시간 전에 여유 있게 공항에 도착하지 않았더라면 마음의 고향 방문조차 어려울 뻔했기 때문이다. ​


내 기준 최고의 항공기는 대한항공 비행기라고 생각한다. 땅콩회항이니 뭐 그런 구설수들이 있긴 했지만 여러 나라의 국적기를 타본 결과 대한항공만 한 비행기는 없었다. 이코노미석임에도 자비로운 좌석 간격, 친절한 승무원들의 훌륭한 서비스. 그래서일까. 가격도 언제나 최고봉이다. 그런 대한항공 직항 티켓을 날씨와 맞바꾸어 단돈 90만 원 즈음에 얻었다. 그때는 그렇게 날씨에 신경 쓰지 않을 때라 그저 ‘개이득’이라는 생각에 신이 나 있었다.


나는 e-티켓 출력본을 개선장군처럼 휘날리며 체크인을 하러 갔다.

​에어프랑스랑 코드쉐어된 비행기라서 에어프랑스 카운터로 향했다. ​


여기서 잠깐!



코드 쉐어란?


두 항공사가 한 노선을
함께 판매·운항하는 협정


중소형항공사가 대형 항공사의 탈을 쓰고 조금 저렴한 가격에 내놓은 항공 상품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대한항공은 대형 항공사이므로 협정을 맺은 외항사들도 많다. 코드쉐어했다하면 대한항공 여객기가 아닌 항공사의 비행기를 타게 된다.


보통 프랑스 여행 시에는 에어 프랑스를 타기 마련이다. 처음에 표를 검색할 때 에어 프랑스를 검색하긴 했지만 대한항공 코드쉐어한 이 표값이 더 쌌다. 에어 프랑스는 다른 여타 유럽 항공사에 비해 비행기 퀄리티가 좋으니 망정이지 프랑스행 비행기표를 검색해 보면 에어 프랑스의 지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 왜일까? 자국 항공사를 우대하는 것일까? 잘은 모르겠다. 어쨌든 대한항공의 탈을 쓴 에어프랑스 항공권이었지만 그래도 상관없었다.

(이게 중하면 티켓 예매 시 항공기를 잘 살필 것. 조그마한 글씨로 어느 항공 비행기를 타야 하는지 쓰여 있음.)


교환학생 가던 시절을 생각하며 나는 에어프랑스 수속 카운터로 향했다. 나는 자랑스럽게 예약확인증을 내밀었다.

어라. 뭔가 이상하다. 직원의 낯빛이 어두웠다. 모니터와 나의 예약 확인증을 계속해서 번갈아가며 체크했다. 쎄한 느낌이 온몸을 타고 흘렀다. 체크인에서 일이 잘못될 일이 없는데. 여기서 일이 잘못된다면 정말 큰 사건뿐인데.


예를 들면, 으음...예약이 안 되었다든지.

나는 무려 대한항공 사이트에서 직! 접! 구매를 한 성골 구매자였다. 진짜 이때 엄청 짧은 순간이었지만 등줄기를 가르며 땀이 슥 흘러내리는 것 같았다. 이윽고 직원의 얼굴에 짜증이 확 올라왔다. 뭐지.

정말로 문제가 생긴 것만 같은데.


“손님, 여권에 적힌 영문 이름이랑 예매표의 영문 이름이랑 다른데요. 대한항공 카운터로 가셔서 이름 바꿔달라고 하세요. 당일에 이렇게 오셔서 될까 모르겠네.”


... 네?


이름이 다르다니. 대체 그게 무슨 소리세요. 제가 해외여행을 얼마나 많이 했는데요. 이름을 잘못 쓰다니요. 저 유럽도 혼자 다니던 여자예요. 내가 그런 실수를 할 리가 없다고.


나는 황망한 표정으로 예약내역서를 봤다.


​내 이름은 김토끼.

여권에는 Kim Toe Kki라고 되어있다.

예약 내역서에는 어쩐 일인지 Kim To kki라고 되어 있었다. TOE 가 TO로 둔갑해 버린 것이다. 아무리 기억을 뒤져봐도 TO라고 입력한 기억이 없는데 뭘까.


​ 여권을 만들었던 당시부터 지금까지 내 영문 이름은 늘 TOE였고 교환학생 때 외국인 친구들도 그저 TOE라고 불렀기 때문에 ​TO는 상상할 수도 없는 스펠링이었다. 외국인 친구들은 내 이름이 쉽고 직관적이라고 좋아했다.


토? 네 이름이 진짜 토야? 짱쉽다. 너 마음에 들어.

해서 친해진 친구들도 있었다. 게다가 TO라고 쓰면 ‘투’라고 읽힐 위험도 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럴 리가 없었다.


초조한 마음에 입술을 수없이 깨물며 대한항공 카운터로 날아갔다. 노룩패스를 시전 하듯 4발 캐리어를 먼저 발사한 다음 그 뒤를 따랐다. 나는 ​슈렉에 나오는 장화 신은 고양이 같은 표정을 지었다.

이래도 안 바꿔줄거야...?


“이름이 잘못 되었대요. 제발 바꿔주세요...”


​ 직원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설마 이름 하나 바꿔주는 게 그렇게 국가 중차대한 일일 정도로 어려운 일일까. 다른 항공도 아니고 서비스만큼은 국내 최고, 세계 최고, 천하의 대한항공인 것을. 내 주머니에 땅콩과자라도 있는지 곰곰 떠올려보았다. 없다. 땅콩의 도 없다. 안되는데. 어떻게 불쌍한 직딩 한 명 구제해준다는 마음으로 안되려나.

타닥타닥 빠르게 타자로 입력하는 소리가 들렸다. ​뭔가 복잡한 시스템 상의 변경 과정을 거치는 것 같았다. 직원은 여기저기 막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이대로 파리에 못 간다면 내가 감내해 낸 그 눈치게임은 어떻게 할 것인가. 곧 나의 동행자 고라니언니도 만나기로 했는데 이러다간 언니 혼자 비행기를 타야할 수도 있다. 언니는 유럽여행이 처음인지라 나만 믿고 같이 가기로 한 상태였다. 나는 발을 동동 구르며 기다렸다. 기다리면서 대체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를 생각해 봤다. 천하의 김토끼가 이런 초보적인 실수를 할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 그러고 보니 내가 평소와는 다르게 대한항공 사이트에서 직접 표를 구매했던 게 떠올랐다. 여행사를 끼고 사면 만원 정도 수수료가 붙지만 직접 구매하면 수수료 없이 바로 구매할 수 있어서 그때 당시 가격 상 좀 더 이득이었다.

(이건 근데 경우에 따라 다르다. 예약 수수료 포함해도 여행사를 끼면 더 쌀 수 있다.)

엄청 오래전에 이미 가입한 이력이 발견되어 그냥 아이디 찾기로 로그인해 구매를 했던 게 기억났다. 가입 당시에는 아무 생각 없이, 여권명과 상관없이 영문 이름을 적었던 거 같고, 그래서 자동으로 그 이름이 찍힌 것 같았다.

(결국 돌아오자마자 이름 변경을 신청했다.)


​바보 멍청이!


이름이 다르게 찍혔을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똑딱똑딱.

시간은 속절없이 흘렀다. 점점 보딩시간은 가까워지고 여유롭게 보안대를 통과하여 언니와 함께 계획을 점검하며 브런치를 먹으려던 나의 계획은 이미 폐기되었다.

마침내 직원은 이름을 바꿔서 재발행해주었다. 재발행 수수료는 12만 원이라고 써 있길래 ​12만 원을 내야 하나 내심 조마조마했지만 다행히 추가 비용은 들지 않았다.

역시 갓-대한항공! 사랑합니다!


나는 아까처럼 4발 캐리어를 장풍 쏘듯 쏜 다음 빛의 속도로 에어프랑스 카운터로 달려갔다. 보딩 패스는 무사히 출력되었고 나는 내가 처음에 지정했던 좌석으로 비행기에 탈 수 있게 되었다.


​여행의 서장부터 공항 추격 장면을 방불케 했다. 이미 내 마음은 녹초가 되었다.


“Oh… mon dieu…(신이시여)”


나는 부들부들 눈물을 흘리며 여권 사이에 보딩 패스를 끼워 넣었다. 그리고 자랑스레 인증샷을 남겼다.

​ 나는 보안검색대까지 빠르게 통과한 다음 안쪽에서 드디어 고라니 언니를 만났다. 언니를 보자마자 나는 그녀를 끌어안고 펑펑 울었다. 이제야 모든 게 다 끝난 기분이었다. 언니는 나를 포닥였다.


잘 해결했어?”

“흐어어어엉... 내가 김토낀데 김토끼가 아니래... 엉엉....”

많이 놀랐겠다. 우리 일단 앉아서 찬찬히 너의 마음을 들여다볼까?”


언니는 그런 식이었다. 언니는 늘 상냥한 목소리로 내가 감정적으로 격앙되어 있거나 예민해져 있으면 나 스스로 감정을 돌아보게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진정하게 만들어주었다.


“휴, 언니... 빨리 비행기 타서 와인 마셔야겠어.”

“그래. 같이 마시자. 나도 기대돼.


에어 프랑스는 미니 주스병 같은 와인을 계속 마실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라니 언니와의 여행은 이게 처음이지만 언니와 나는 둘다 파워J인지라 잘 맞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파리, 기다려라, 내가 진짜로 간다!

​나, 김토끼를 막을 수 있는 건 이젠 더 이상 없어!

나, 한국 뜬다! 모두 안녕!


-To be continued-



[Behind the Scene]

1. 1화인데 아직도 여행지에 도착 못한 거 실화?

고라니 언니는 김토끼 시리즈에선 한 번도 출연한 적이 없는, 저의 동기언니입니다.

왜...아직 출발도 안했는데 벌써부터 전 힘든거죠...20대의 김톡끼 넌 참 강했구나. 여행 초입부터 이런 걸 겪으면서도 의연하다니.

2. 제가 실제로 이 일을 겪고 얼마나 트라우마로 남았는지 그 뒤로 비행기표 예매할 때마다 이름 무조건 확인합니다. 후덜덜덜.

3. 저는 대한항공을 지금도 사랑합니다♥

4. 에어프랑스도 사랑합니다♥

5. 불문과 학생이 프랑스 여행하면 어떤지 궁금하시면 다음 편을 기대해주세욥!


오늘 토깽항공의 여행은 여기까지입니다.

손님 여러분, 즐거운 여행되셨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화, 수, 목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