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에서 파리 시내 갈 땐 한인택시 타세요
이 여행은 2019년 2월에 다녀온 것으로 지금으로부터 6년 전입니다. 이 때의 김토끼는 무려 20대입니다. 20대임을 감안하고 읽어주세요. 애엄마 아니고 30대 아니고 독수리 만나기도 훨씬 전입니다. 코로나 이전의 여행이기에 여행 환경이 지금과는 사뭇 다를 수 있으며 6년 동안 기억이 빛바래져 빈 공간은 상상력으로 채웠음을 엄숙하게 선언합니다.
그 뒤로는 모든 일이 순조로웠다. 작고 소중한 병에 담아주는 와인을 무제한으로 마시려다가 자중하기로 했다.
기내에서 영화 ‘미녀와 야수’를 한 N회차쯤 보고 나자 이제 곧 착륙한다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N번이나 봤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엠마 왓슨은 참 예쁜데 무엇이 문제인지 보다 보면 자꾸만 잠이 쏟아졌다.
10시간의 비행은 참을 만한 정도였다. 비행기에서 내렸을 때, 괜히 마음이 울컥했다. 공기부터 시크한 게, 여기가 바로 그 프랑스요, 하는 듯했다. 여기저기 표지판마다 애증의 프랑스어가 쓰여있었고 보자마자 읽히는 게 느껴졌다. 제일 먼저 눈에 띄는 단어는 Sortie (출구)였다. Exit 대신 Sortie를 다시 볼 수 있게 되다니.
파리로 IN 할 때 도착할 수 있는 공항은 크게 두 가지다.
샤를 드골 공항과 오를리 공항
따라서 비행기표를 살 때 둘 중 어떤 공항에서 내리는지 잘 살펴봐야 한다.
우리나라로 치자면 샤를 드골 공항은 인천 국제공항 같은 느낌이다. 국제선이 대부분이다. 오를리 공항은 김포 공항 같이 국내선 또는 프랑스 인근 국가들을 갈 수 있는 저가항공편들만 있다. 우리는 이역만리에서 온 외지인이기 때문에 당연히 샤를 드골 공항에서 내렸다.
샤를 드골 공항에서 파리 시내까지는 차로 한 50분쯤 걸릴 정도로 상당히 외곽에 위치해 있다.
파리 여행을 계획할 때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과연 뭐 타고 시내까지 가느냐일 것이다.
RER B 열차
가장 싸지만 소매치기로 악명 높은 열차이기 때문에 웬만하면 권하지 않는다. 안 그래도 캐리어까지 들고 이동해야 하는데 표적이 되기 딱 좋다. 내 귀중품 절대 지켜!
루아시 버스
좀 기다란 일반 버스 같은 느낌이다. 버스 안에서 캐리어를 안고 돌돌돌 이동하는 건 너무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2026년 3월부터 사라진다고 한다! 충격★
택시
프라이빗한 대신 관광객 대상으로 요금 바가지 씌우는 게 일이라는 소문을 익히 들어왔다.
★한인 택시도 있다. 한인 택시는 사전에 예약 후 보디가드처럼 이용가능하다. 호텔 위치도 알려주면 아예 호텔까지도 데려다준다.
공항 리무진 버스 Le bus direct
가격은 열차나 루아시버스보다는 비싸지만 택시처럼 바가지요금이 아닌 정찰제인 데다가 좌석 간격도 넓어서 쾌적하다. 이만한 교통수단이 없다. 당첨!
★2020년에 폐지됐다고 한다. 이 여행은 2019년에 다녀온 여행이라 아직 선택지에 있었다.★
결론: 비싸도 한인택시 예약해서 가는 게 최고다
라니언니와 나는 둘 다 파워 J였기 때문에 예매는 물론 출력도 컬러로 마쳤다. 공항 리무진을 타는 곳 위치까지 따로 표시해 갔다. 다행히 비는 안 오고 흐리기만 했다. 여기까지만 해도 아주 좋았다. 파리는 맑은 날 당연히 더 예쁘긴 하지만 적당히 흐린 날이, 그런 회백색 톤이 어쩐지 운치 있게 어울리는 도시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들떠있었고, 무엇보다 사람도 별로 없어서 더더욱 좋았다. 그렇게 10분, 20분 시간이 속절없이 흘러만 가는데 버스 시간표 상 와야 하는 버스는 오지 않았다. 또다시 쎄한 기류가 등골을 타고 흘렀다. 뭐지. 왜 버스가 안 오지. 그럴 리가 없는데. 길어지는 대기시간 탓에 뒤 타임으로 예약한 사람들도 하나둘 정류장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반갑게도 한국인 관광객들이 매우 많았다.
대부분 여자였고 (왜일까!) 다들 각자의 일행과 이야기 꽃을 피우며 버스를 기다렸다. 기다리고 또 기다리던 버스가 왔다. 에펠탑이 종점인 Line 2번 버스다. 우리의 숙소는 에펠탑 뷰인 한인 아파텔이었기 때문에 에펠탑 쪽에서 내려야 했다. 우리는 부랴부랴 캐리어를 버스에 싣고, 버스를 막 타려는데, 운전사가 프랑스어로 소리쳤다.
“ Aux Champs-Elysees, Pas La tour Eiffel! (샹젤리제 거리까지만 갑니다요! 에펠탑 안 가요!)
갑작스러운 통보였다. 샹젤리제 거리에서 에펠탑까지도 꽤 거리가 있었기에 이왕 직행버스를 타는 거 에펠탑까지 가는 걸 타야 했다. 다음 버스가 에펠탑까지 간다는 말만 남겨 놓고 휭 가버렸다. 캐리어를 실었던 한국인들은 일제히 캐리어를 도로 내렸다. 에펠탑으로 가려는 한국인들이 이렇게 많다니, 묘한 동질감때문에 든든했다. 15분쯤 뒤에 또 같은 버스가 왔다. 이제는 가겠지, 하는 마음으로 다시 캐리어를 실었는데 또 샹젤리제까지만 간다는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파리에 오긴 왔는데 오늘 안에 시내까지 갈 수나 있을는지 눈앞이 캄캄했다.
숙소 체크인하자마자 노트르담 대성당이나 개선문 전망대를 오를 예정이었는데, 그 일정은 곧 순삭될 위기에 처했다.
그때, 한 한국인 여성분이 잔다르크처럼 위풍당당하게 나타났다.
“에펠탑까지 가는 버스는 5시 30분에 온대요!”
“네…? 왜 갑자기 바뀐 거죠?”
“버스 파업이래요. 그래서 일부 구간까지만 운행한대요.”
아. 잊고 있었다. 그놈의 파업.
프랑스에서 파업은 일상이다. 우리나라의 파업과는 차원이 다르다. 정말 삶에 그대로 녹아있다. 어제까지만 해도 별일 없던 교통수단들이 갑자기 오늘 파업을 선언한다. 그건 파리에서 뿐만이 아니라 다른 도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프랑스에서 지낼 때도 어느 날 갑자기 트램 파업이라고 해서 강제로 중간에 아무 역에서나 내리게 한 다음 알아서 가라고 했다. 덕분에 한참을 걷고 또 걸어서 기숙사까지 갔던 기억이 있다. 한국인 학생들은 모두 화를 냈지만 프랑스인들은 아무도 화를 내지 않았다.
파업이 왜? 그냥 그들의 의사 표현 중 하나일 뿐이야.
그뿐이었다.
우리는 3시 40분에 공항버스 정류장에 도착하여 계속 기다리기만 하다 보니 어느덧 4시 10분을 지나고 있던 차였다. 1시간 넘게 기다려야 한다니, 이대로라면 일정 하나는 그냥 날려야했다. 파리 여행이 처음인 라니언니에게는 너무나 미안한 일이었다. 힘들게 왔는데 하나라도 더 보여줘야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 막막해하던 차에, 잔다르크는 다시 한번 목소리를 드높였다.
“무작정 여기서 시간을 죽일 게 아니라 3명씩 짝지어서 그냥 택시 타고 가시죠. 3명이서 N빵 하면 가격은 공항버스랑 비슷할 거예요.”
잔다르크의 상황 수습력은 가히 최고 수준이었다. 나는 그녀의 리더십에 반해 그녀에게 간택받고 싶었지만 그녀와 약간 멀리 떨어진 곳에 서있었다 보니 그녀에게 선택받지 못했다. 그녀는 재빠르게 자신의 근처에 서있던 2명의 다른 여자와 떠나갔다. 우리도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다 싶어서 마침 혼자 여행 온 듯한 한 여자를 끌어들였다.
순식간에 의자 뺏기 하듯 의지의 한국인들은 3~4명씩 팀을 이루어 이동했다. 한국인의 단합력은 훌륭했다. 부지런히 잔다르크를 따라가면서도 뭔가 부끄러워졌다. 나는 왜 저런 결단력을 발휘하지 못했으며 저런 지식이 없었을까. 내가 파리 여행을 하루이틀 와본 게 아닌데. 저 여자는 아마 파리에서 오래 살던 사람이거나 유학 중일 것이다. 그녀는 마치 이 공항이 자신의 것인 것처럼 아주 자연스럽게 택시 승차장으로 걸어갔기 때문이다. 뭐, 덕분에 택시를 찾아 헤매진 않았다.
생각해 보면 나는 보통 기차를 타고 파리에 왔었다. 내가 교환학생 때 머물던 곳은 사실 파리가 아니었다. 파리에서 기차 타고 2~3시간은 가야 있는 소도시에서(우리나라로 치면 공주정도?) 공부했었다. 그렇기에 친구들과 파리 여행을 할 때면 난 항상 기차를 탔었기 때문에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방법은 그새 잊어버린 것이다. 세월이 많은 것을 잊게 만들었다는 사실이 혀끝부터 씁쓸하게 다가왔다.
택시 승차장에서 우리는 운 좋게도 벤 형식의 택시를 탈 수 있었다. 덤으로 운전기사도 훈훈했다. 이제 어디로 가달라고 말을 해야 했다. 라니언니가 내 옆구리를 쿡 찔렀다.
“불문과 토끼 뭐 해. 빨리 불문과의 위엄을 보여줘.”
“La Tour Eiffel, S’il vous plait. (에펠탑으로 가주세요)”
다행히 운전사는 나의 프랑스어를 알아듣고는 쿨하게 출발했다. 우리와 짝을 이룬 여자 여행객도 그제야 표정을 풀고 편하게 좌석에 등을 기댔다. 공항에서 파리까지는 처음 왔을 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마찬가지로 꽤 멀게 느껴졌다. 아무것도 없는 평야가 끝도 없이 이어졌다. 그렇게 지루해질 무렵 슬슬 파리 시내 같은 곳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우리나라는 네모 반듯한 아파트 같은 건물들만 빼곡하게 들어차 있는데 이곳은 아직도 과거의 역사가 숨 쉬는 듯 중세 왕궁 같은 고풍스러운 디자인의 건물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그 모습은 언제 봐도 진귀하다. 그리고 또 부러웠다. 우리의 한옥도 고전적이고 아름다운데. 편의성만 생각하여 무조건적으로 다 헐어버리고 도시화시킨 건 아닐까. 이 때문에 한 때는 관광쪽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다.
우리는 무사히 택시에서 내렸고, 바로 눈앞에 꿈에 그리던 에펠탑이 보였다. 이미 해가 져버려서 골드 에펠탑으로 변신해 있었다.
나 정말로, 다시 돌아왔구나. 마음의 고향 파리로.
To be continued...
[Behind the Scene]
1. 이제 파리에 겨우 도착했는데 아직도 숙소 못찾음...ㅋㅋㅋㅋㅋ무슨 여행이 이럴까요?
2. 이 글을 쓰면서 파리 시내로 가는 교통 수단을 찾아봤는데 Le bus direct는 진작 사라졌고 루아시버스마저도 다담달이면 사라진다고 하니...한국인에게 남는 최고의 선택지는 역시 한인택시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3. 이제 타임어택 좌충우돌 파리여행이 시작됩니다. (이번엔 진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