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르누아르 좋아하세요? 오르세미술관으로 갑시다

짧은 파리여행에선 루브르보단 오르세가 낫다

by 회색토끼


당시 우리가 짠 계획은 다음과 같다.



06:50-07:50 숙소 조식 먹고 정리 후 체크아웃 (숙소에 짐 맡기기)

07:50-08:40 지하철로 오르세 미술관 이동

08:40-09:30 콩코드광장, 루브르 겉면 구경하고 오르세미술관으로 도보 이동

09:30-13:00 오르세 미술관(개관시간 09:30) C게이트에서 입장

https://tourtira.com/

에서 티켓 구매완료

점심식사는 2층에 있는 내부 음식점(Le Restaurant)에서 11시 30분에 먹어야 대기 줄 없음

13:00-13:40 지하철로 숙소 이동

숙소에서 짐 찾고 샌딩 서비스 타러 준비

13:40-14:50 샌딩서비스로 공항이동

14:50-16:50 공항 도착해서 간식 먹고(저녁이 많이 늦을 테니) 출국 수속 (16:10 체크인 데스트 마감)

16:50-18:25 파리 샤를 드 골 공항(CDG) -> 베니스 마르코폴로 공항(VCE)




한인 아파텔 주인아주머니는 지하철 말고 버스를 타고 다니는 걸 추천했지만 파워 J인 우리는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는 걸로 정했기 때문에 알아서 무시했다. (이러려고 한인 숙소를 예약한 게 아닌데…!)


솔직히 또 버스 파업이 있을까 봐, 그리고 한국에서도 나는 버스를 잘 안 타고 다니는데(길치 이슈) 머나먼 이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파리의 지하철은 우리나라의 선진 지하철에 비하면 한참 후진적이다. 이상한 하수구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하며 여긴 놀랍게도 스크린도어가 없다. 발을 잘못 헛디디면 바로 저승행이다. 우리는 교통카드 한 방에 어디든 갈 수 있지만 여기는 고전적인 지하철표를 끊는 게 더 편하다. (심지어 카드 결제 잘 안됨)

그럼에도 우리나라보다 잘 되어 있는 게 딱 하나 있다면 픽토그램이다. 어느 출구로 나가면 어떤 유적지로 갈 수 있는 한눈에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이 사진을 보면 1번 출구 옆에 귀욤뽀짝한 노트르담 대성당 그림을 찾을 수 있다. 아무리 길치라도 일단 1번 출구로 나가면 노트르담 대성당에 어쨌든 도착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된다. 길치로서 이런 픽토그램들이 도움이 많이 됐다. 우리나라에도 귀여운 유적지 그림들이 많이 생겨나기를 바랐다.

이 얘기는 내가 지방공무원 면접 때도 했었다. 우리나라의 관광 산업 발전을 위해 어쩌고저쩌고…. 20분 내내 관광 이야기만 했는데 그래도 합격시켜 줘서 놀라웠다.



당시 사진을 보면 계획표대로 기어코 루브르 앞에서 인증샷을 남겼다. 저 초단위(?) 계획표를 지켰다. 심지어 전날 못 봤던 노트르담 대성당까지 봤다. 언니랑 나는 초인이었나, 당시에?


이 여행 이후 얼마 안 있어서 화재사건이 일어났다...


베니스로 떠나기 전, 우리는 파리에 왔으니 미술관 하나는 찍고 가자고 합의를 보았다. 파리엔 3대 유명 미술관이 있다.


오르세, 루브르, 퐁피두


퐁피두는 현대미술 위주여서 과감히 삭제했다. 라니언니는 파리에 처음 가는 것이기 때문에 루브르랑 망설였다. 댄 브라운의 「천사와 악마」 덕분에 루브르에 대한 환상이 1g 더 늘어났던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둘 다 인상파 그림을 좋아했기 때문에 두말없이 오르세 미술관으로 최종 합의를 마쳤다.

개인적으로 시간이 빠듯한 파리여행을 한다면 루브르는 그다지 추천하지 않는다. 루브르를 꼬옥 가고 싶다면 반. 드. 시. 도슨트를 끼고 관람하는 것을 추천한다. 루브르는 워낙 넓기 때문에 작품 하나하나 다 보려면 적어도 한 달은 걸린다. 도슨트를 끼면 딱 유명한 작품들을 연대별로 스토리를 엮어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적어도 반나절은 투자해야 한다. 우리는 시간이 없기 때문에 오르세에서도 좋아하는 작품 위주로 파기로 결심했다.

실물로 영접한 내 최애그림

인상파 그림, 특히 르누아르, 모네 요런 화가들의 그림을 좋아한다면 무조건 오르세 미술관에 가는 걸 추천한다. 오르세는 루브르보다 훨씬 규모가 작고 (그러나 객관적으로 보면 절대 작진 않다! 루브르 기준이다.) 시대별로 미술책에서만 보던 유명 그림이 훅훅 눈에 잘 들어오게 배치가 잘 되어 있다. 특히 길치에게 최적화된 미술관이 있다면 오르세라고 말하고 싶다. 대충 훑어도 유명한 건 빠짐없이 다 볼 수 있다.

나 같은 경우에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피아노 치는 소녀 그림을 실물로 봐서 행복했다. 인상파 화가 중에 르누아르를 좋아한다면 오르세를 보고 오랑주리 미술관까지 정복해 보자. 오랑주리 미술관은 엄청 작은 미술관이라 보는 데 오래 걸리지도 않지만 유명한 작품들이 되게 많다. 특히, 모네의 「수련」 원작을 볼 수 있다. 우리에게 하루만 더 시간이 있었다면 오랑주리 미술관까지 갔겠지만 안타깝게도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오르세 미술관에 만족하기로 했다.

사람없다 야호! 달려달려~~~

우리는 오르세 미술관 개관 시간까지 미리 알아두어 오픈런에 성공했다. 표를 미리 사두면 기다리지 않고 바로 입장이 가능하므로 시간을 아꼈다. 국제 학생증이 있으면 이 모든 게 다 공짜다. 제발 파리 여행은 찬란한 대학생일 때 꼭 한 번 다녀오자. 학생들에게 너그러운 파리다.


오르세 미술관에는 아주 중요한 포토존이 있다. 바로 이 사진! 인터넷에서 많이 보았을 것이다. 시계 앞에서 역광사진 찍기

사실 이거 찍으러 오르세 간 것이었음...


이 포토존은 오르세 미술관 5층에 있다.


오르세 미술관을 오픈런으로 가기로 했다면 가자마자 일단 5층부터 들렀다가 찬찬히 내려가면 좋다. 유명한 포토존이 되어버려서 저 사진을 찍기 위해 사람들은 줄을 서기 때문이다. 우리는 바쁘게 움직인 덕에 사람 없을 때 사진을 많이 남길 수 있었다. 오르세 미술관에 간다면 이 포토존을 잊지 말고 꼭 방문하자!

이야...이게 식당이여 궁전이여

점심식사까지 알차게 오르세 2층에 있는 식당을 이용했다. 웬 베르사유 궁전처럼 되어 있어서 놀라웠다. 블로그 설명대로 11시 반에 가니까 웨이팅도 없이 바로 들어갔다. 파워 J 만만세!

중세 귀족 영애에 빙의하여 황홀한 점심을 즐겼다.


“영애는 어떤 음식을 가장 좋아하지?”

“고기요. 기분이 저기압일 땐 고기 앞으로 가야 해요.”


실물공개(?)어차피 지금이랑 다름ㅇㅇ 고기먹는 영애.jpg

이런 천장, 이런 샹들리에 아래에서 먹는데 뭔들 맛이 없으랴.

열심히 스테이크 썰어줬다. 프랑스에 가면 질리도록 고기를 먹을 수 있다.


잠깐! 프랑스어! 고기를 프랑스어로?

프랑스에서 영어메뉴판을 제공받지 못했다면 짧은 프랑스어로 무난한 음식을 픽할 수 있다.

그건 바로바로 고기! 고기는 웬만하면 실패가 없다.


고기 통칭: De la viande

(일단 카테고리에서 viande를 찾아볼 것. 이 하단에 있는 건 다 고기류다.)


가장 실패 없이 무난히 먹을 수 있는 고기= 소고기

무난픽 당첨! 뵈프는 언제나 옳아요

★★★★★ bœuf (뵈프)

(oe가 뽀뽀하듯 붙어있다. 이거 자체가 하나의 글자다. ‘ㅚ’ 발음과 유사함. abcd 같은...)

b로 시작하고 oe가 붙어있는 단어를 찾자! 그냥 b로 시작하는 걸 고르면... 참사가 있을지도? 이것조차 퍽퍽하고 맛이 없다면 심각한 집이다.


의외로 루브르 쪽에서 먹으면 맛있는 고기=오리고기

생각보다 맛있어 옴뇸뇸뇸

★★★★ canard(꺄나드)

이건 신혼여행 때 알게 된 사실... 오리고기는 나름 모험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검증된 지역에서만 먹자.


노르망디 지역을 여행한다면= 양고기

특히 몽생미셸 가실 분들은 양고기 필수

★★★★★ viande de mouton(무통)

그냥 발음 그대로... 무통을 찾자. 양이 한 통에 나온다고 생각하고 외우자.


우리나라의 치킨을 기대하면 안 된다=닭고기

★★★ poulet(뿔레)

프랑스에서 맛있는 닭고기 요리 사실 먹어본 기억이... 거의 없다. 차라리 소고기 먹자...


우리나라의 삼겹살을 찾지 말라= 돼지고기

★★★porc(포크)

생각보다 돼지고기 요리도 많지 않다.


쓰다 보니 아니 그럼 프랑스인들은 소고기만 먹느냐 하는데 아니다. 이들은 생선 요리를 자주 먹는다. 따라서 소고기가 물리면 생선 요리를 먹으면 된다.


생선은 프랑스어로?
소고기 아님 생선임...

★★★★poisson (뿌아쏭)

이란 글자가 보이면 그 밑엔 다 생선요리라고 보면 된다. 구체적으로 어떤 생선인지는 쓰여있을 수도 있고 통칭 poisson일수도 있으니 생선명은 사전을 찾아보는 게 좋다.



이 근방의 맛집 찾느니 그냥 여기서 먹는 게 훨씬 시간도 절약되고 좋았다. 파리하면 미식의 도시! 해서 맛있는 게 많을 것 같지만 의외로… 한국만큼 맛있는 걸 많이 파는 나라는 없다. 이건 이탈리아에 가서 마저 이야기하도록 하겠다.




우리는 부엘링을 타고 베니스로 넘어가기로 했다. 악명 높은 부엘링이지만 달리 대안이 없었다. 유럽 내 국가들을 비행기 타고 이동할 때 대체로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부엘링 vs 라이언에어


우리나라로 치면 제주항공 같은 저가항공이다. 그런데 둘 다 아주… 퀄리티가 좋지 않다. 잦은 지연, 잦은 캐리어 분실 사고…뜨악할 만한 후기들이 많고 교환학생시절 숱하게 겪었지만 그럼에도 둘 중에 하나를 골라서 탈 수밖에 없다. 이번에는 부디 악명이 안 높길 바라면서 좀 더 저렴한 부엘링 항공을 골랐다.


하지만.

악명이라는 게 그렇게 쉽게 낮아질 순 없는 것이었다. ‘지연’ 이슈에 걸려버린 것이다. 왜 지연되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저… 항공사의 사정이라고 할 뿐. 4시 50분에 출발한다는 비행기는 5시 15분, 6시 15분… 2시간이 넘도록 지연되었다.


“우리… 베니스에 갈 수는 있는 걸까?”

“일단… 보안대는 통과했으니까……언젠가는 보내주겠지?”

“공항에서 노숙해야 하려나….”


베니스는 내가 신혼여행으로도 가고 싶을 만큼 나의 꿈의 도시 중 하나였는데 암담했다. 다행히 공항 노숙은 피할 수 있었다. 계획표상 6시 반에 베니스에 도착했지만 실제로 우리가 베니스에 내렸을 때 이미 9시가 넘은 상태였다. 도시는 이미 어둠으로 잠식되어 있었고 오로지 배로만 이동해야 하는데 조명조차 없었다.

그럼에도 우리와 함께 비행기를 탔던 승객들 덕분에 우리는 그들을 따라갔다. 애초에 수상 택시를 타고 들어갈 생각이었지만 이미 운행 시간이 끝나서 탈 수 없었다. 도심으로 들어가는 배편은 하나뿐이어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근데 문제가 있었다. 내려야 한다고 해서 내렸는데……길이 없었다. 도시 전체가……물에 그냥 잠겨있었다.



“오씌, 이게 뭐야!?”


우리가 예약한 호텔을 갈려면 물살을 가르고 가야 하는 초유의 사태에 다다른 것이다.


-To be continued-



[Behind the Scene]

1. 이번 화를 쓰면서 느낀 게... 아예 그냥 프랑스랑 관련된 브런치북을 파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프랑스인들은 아시다시피 자국어를 몹시 사랑하기 때문에 외국인을 위한 영어 메뉴판 제공을 잘 안 해줍니다. 시골 소도시로 갈수록 더 경향성이 심해집니다. 기본적인 고기 단어만 알아도 메뉴 선택에서 실패가 없기에 길게 설명하게 되었는데 이해가 잘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2. 결국 물 흐르듯 호로록 베니스로 넘어갔습니다. 이제 이 여행기의 대망의 하이라이트를 다음 회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토끼와 라니는 과연 숙소까지 찾아갈 수 있을까요?

3. 중간에 제 얼굴이 잠깐 등장하지만 지금은 저렇게 안 생겼기 때문에 그냥 올립니다. 모자이크를 하자니... 쫌 아깝기도 하고. 영애의 고고한 표정이 킬포이기 때문이죠. 지금의 김토끼는 꼬질꼬질해서 절대 저 얼굴이 아닙니다. 20대 김토끼 곱다 고와~~(할머니 빙의)

4. 나름 파리지앵 흉내 내겠다고 하얀 베레모를 썼습니다. 사진 보세요. 겨울 유럽은... 저렇게 칙칙한 패딩엔딩입니다.




화, 수, 목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