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스에서 가장 맛있었던 건 의외로...ㅇㅇㅇㅇㅇ였다!
Previously on Kimtoekki’s travel essay
김토끼와 고라니는 40유로짜리 비닐분홍장화를 사서 물살을 헤치고 호텔 체크인에 성공한다.
호텔 맞은편 피자가게에서 도시가 물에 잠기는 이 현상을 ‘아쿠아 알타’라고 부르며 다음날이면 물이 빠질 거라는 희소식을 전해 듣게 되는데…
오늘의 일정
06:30-07:45 호텔 조식 먹고 정리 후 체크아웃 (호텔에 짐 맡기기)
07:45-08:01 숙소에서 S. Zaccaria (Jolanda) "D"선착장 도보 이동
08:01-09:22 S. Zaccaria (Jolanda) "D" 선착장(08:01) -> 바포레토 4.1번 타고(선착장에서는 41번으로 표기)
MURANO FARO선착장 (08:46)
MURANO FARO 선착장(08:49) -> 바포레토 12번 타고 Burano선착장(09:22)
09:22-12:06 부라노 섬 구경
13:50-14:50 TUTTINPIEDI에서 점심식사
14:50-15:20 짐 찾고 알리라구나 타러 선착장 이동 및 대기(15:20분 출발)
15:20-16:40 알리라구나 타고 베니스 공항으로 이동
16:40-19:05 베니스 마르코폴로 공항(VCE) 도착 후 공항에서 저녁 먹기
19:05-20:10 베니스 마르코폴로 공항(VCE) -> 로마 피우미치노 공항(FCO) 도착
다음날, 우리는 부라노섬을 구경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지만 집념의 파워 J 는 아쿠아 알타의 위력 앞에 무릎을 꿇었다.
자욱한 물안개와 더불어 전날 물살을 헤치고 호텔 체크인을 한 여파로 몸 여기저기가 쑤셨기 때문에 오로지 수상 교통수단으로만 이동해서만 가야 하는 부라노 섬까지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부라노 섬을… 포기하자.”
“그래. 부라노 섬 가려다가 우리 수상 미아가 될지도 몰라.”
대신 아침 일찍 일어나서 정말 어젯밤 피자집 직원이 말한 대로 물이 빠지는 게 맞는지 확인했다.
정말이었다. 욕조에 물 받았다가 목욕 끝난 후 물 빼듯이 수심이 얕아지고 있었다. 전날 덤터기를 써서 산 장화도 여전히 유용했다. 아무래도 아직 물이 찰랑찰랑하게 남아있었기 때문에 장화를 신어야만 했다. 대충 만든 허접한 장화치고는 방수 기능도 훌륭했다.
산 마르코 광장을 사진으로 담으니 물에 비친 모습이 그대로 담겨 내가 찍고 싶었던 그 사진이랑 비슷하게 찍을 수 있었다. 물론 하늘은 아직 회색빛이었기 때문에 맑은 하늘로 바꿔주는 필터를 사용했다.
“그럼 우리 남는 시간에는 뭘 할까.”
“그냥… 본섬 구경이랑……곤돌라를 타보는 건 어떨까?”
즉흥적으로 그 순간 우리 눈앞을 유유히 지나가던 곤돌라를 타보기로 했다. 어쩌면, 베니스에 왔으니 한 번쯤은 곤돌라를 타보는 게 낭만의 입장에서 맞는 결정이긴 했다. 우리는 아이유가 될 요량으로 오로지 부라노 섬에서 9 분할 사진 찍을 생각만 하고 있었긴 했지만.
생각보다 곤돌라 값은 비쌌다. 한 번 타는데 한화로 약 10만 원 정도 했다. 우리는 순간 망설였다. 이까짓(?) 곤돌라 타는데 10만 원을 태우는 게 말이 될까. 그래도 여긴 베니스니까. 어차피 부라노 섬에 가는 경비가 전혀 들지 않을 예정이니 10만 원을 투자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우리는 과감히 10만 원을 지불하고 아무 곤돌라에나 탑승했다.
턱수염 덥수룩한 남자가 시종일관 미소로 일관하며 노를 젓기 시작했다. 남자는 때때로 영어로 지나가면서 보이는 유적지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때로는 노래도 불러주었다. 생각보다 괜찮은 시간이었다.
“마치… 귀족이 된 것 같아.”
“파리에서 이어 여기서도 우리는 귀족 영애인 건가?”
뱃사공과 가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며 물 위에서 바라보는 베니스의 전경은 아름다웠다. 비록 여전히 하늘은 잿빛이었지만.
약 1시간 정도 탈 수 있었는데 그 시간이 전혀 아깝지도 않았고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시간을 내서라도 베니스에 왔으면 곤돌라 한 번쯤은 타보는 걸 완전 추천한다.
제대로 베니스를 푹 즐기고 가는 느낌이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탈리아 남자에 대한 환상이 있었지만 이 뱃사공은 우리의 안구복지를 충족할 만큼의 미남은 아니었다. 그저 흔한, 서양 남자정도?
베니스 여행에서 또 하나 기억에 남는 게 있다면 다름 아닌 음식이었다. 나는 이탈리아 여행을 하면서 딱히 음식에 만족한 적이 없었다. 파스타의 나라이면서 파스타들이 대부분 너무 짰다. 숙소와 산 마르코 광장과 가까운 위치에 있는 가게 하나를 미리 찾아갔었다.
《TUTTINPIEDI》
이 글을 쓰기 위해 구글지도로 이 가게를 검색해 보니 지금은 폐업상태라고 한다. 또르륵. 내가 베니스에 다시 간다면 꼭 이 가게를 다시 가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영원히 다시 갈 수 없이 오로지 내 기억 속에 추억으로만 남은 맛집이 되었다.
이 집에서 우리는 과감하게 먹물 파스타와 흔한 피자류를 하나 주문했다. 무슨 자신감인지 모르겠지만 이탈리아에 왔는데 먹물파스타쯤은 먹어줘야 한다는 강한 자신감이 솟구칠 때였다.
주류는 물론 ‘스프리츠(Sprits)’였다.
이탈리아 여행 내내 나는 이것만 마셨다. 달달한 과실주인데도 도수가 좀 있는 편이어서 내게 아주 안성맞춤이었다. 로마에서도 무조건 음료는 스프리츠 고정이었다.
이 습관은 내가 동유럽 여행을 하러 갔을 때 크게 혼나게 된 이유가 된다. 동유럽에서 파는 스프리츠와 이탈리아에서 파는 스프리츠는 이름이 같지만 전혀 다른 주류다. 동유럽에서 파는 스프리츠는 말 그대로 에탄올 그 자체다. 엄청난 도수의 술을 샷으로 쫙 들이켜는, 그런 독주에 가까웠다. 난 그것도 모른 채 이탈리아 때의 경험을 생각하여 스프리츠를 시켰다가 직원이 내게 와서 무려 3번이나 되묻고 갔었다. 정말로 이거 시킬 거냐고.
아무튼, 이탈리아의 스프리츠 과실주는 이렇게 생겼다.
영롱한 코랄빛 음료는 지금 생각해도 군침이 돈다. 오로지 이탈리아에서만 마실 수 있다니 안타깝다.
음료를 홀짝이고 있을 무렵 본 메뉴가 서빙되었다.
이때 문제는 바로 저 먹물 파스타였다. 플레이팅도 대충이었고, 그냥 까만 면 그 자체였는데 입에 넣는 순간 눈알이 튀어나올 뻔했다.
“이게… 뭐야? 이게 무슨 맛이야? JMT야!”
내 혀를 믿을 수가 없었다. 적절한 짭쪼롬함이 중독적이었다. 포크질이 계속 이어졌다. 옆에 같이 나온 피자는 찬밥신세였다.
내 이빨이 시꺼멓게 되든 말든 전혀 상관이 없었다. 내가 먹었던 먹물 파스타 중 가장 맛있었다. 그때를 회상하면서 쓰는 지금조차도 그 맛이 그립다. 이제는 더 이상 그 파스타를 먹을 수 없으니 그저 아쉽기만 하다.
본섬의 굵직한 유적지 몇 군데를 돌아보고, 곤돌라까지 타고나니 금방 이제 다시 공항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우리가 막 떠날 무렵 하루 종일 잿빛이었던 하늘에 구멍이 나고, 그 구멍 사이로 햇빛이 은총을 내리듯 쏟아지고 있었다.
날이 그제야 풀리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하필 가장 안 좋은 날씨 정중앙에 베니스를 방문한 셈이다.
나는 야속한 눈빛으로 하늘색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럼에도, 너무 아쉬워하지 않기로 했다. 불행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진귀한 경험이었고, 누구나 쉽게 할 수 없는 경험이었다.
그래서 나는 유럽의 다른 도시들 중에서 유독 베니스에 대한 묘한 애정이 있다. 내가 죽기 아님 살기로 버티게 했던 곳이었는진 몰라도, 여전히 모든 교통수단이 수상에서만 이루어진다는 점은 매력적이다. 다시 한번 내게 시간이 주어진다면 베니스는 꼭 한 번 재방문하고 싶다.
그땐, 제발 아쿠아알타 기간을 피해서. 우기가 아닌 시기에, 평화롭게 베니스 본섬도 구경하고 못 가보았던 부라노 섬도 가보고 싶다.
1.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베니스 여행이 끝이 났습니다. 옛날 사진 뒤적이면서 저 때 참... 힘들었었지만 다시 돌아가고 싶기도 하고 그러네요. 갇혀있는 삶보단 낫지 않나?
2. 요새 약간 대인기피증 같은 게 생긴 것 같습니다. 사람 만나는 게 귀찮고 그저 굴 속에 처박혀 있고만 싶어요 엉엉엉.
3. 제가 작년에 로맨스 눈깔 장착해서 오랜만에 다시 써본 로맨스를 밀리의 서재 밀리로드로 연재 중에 있습니다! 2화까지 올라온 상태이니 밀어주리 아직 안 해주신 분은 해주세요! 시간이 괜찮으시면 댓글도 살포시 남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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