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화장실에 있다. 미적지근한 온수가 나오고 머리는 깨질 것 같다. 어제 술을 너무 많이 마셨다. 머리카락에서 담배 냄새가 난다. 몸은 쥐어짜인 걸레처럼 기운이 없다. 나는 비척비척 목욕 의자에 앉는다. 이 의자는 이사 와서 지금까지 쓴 적이 없다. 나는 항상 서서 샤워를 하니까. 하지만 오늘은 천근만근으로 몸이 무겁고, 꼼짝도 하기 싫고, 어디 기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는 수밖에 없다. 후. 너무 마셨어. 벌거벗은 채 목욕탕 의자에 쭈그리고 있으니 매우 춥고 슬프고 외로운 느낌이다. 나는 본능적으로 화장실 한편에 놓인 세숫대야를 끌고 와 발을 집어넣고 뜨거운 물을 채운다. 데일만큼 뜨거운 물이 발목까지 차니까 몸에 온기가 좀 돈다. 후. 대야에 담긴 내 발을 멍하니 보다 문득 아주 오래전으로 되돌아간 기분이 들었다.
어릴 때는 꼭 대야에 뜨거운 물을 채우고 발을 담가야만 샤워를 했다. 목욕 의자에 쭈그리고 앉아서. 몇 살까지 그랬더라? 열두어 살까진 그랬던 것 같다. 유인원이 두 발로 서기 시작하면서 인간으로 진화했듯이, 나는 어느 순간 서서 씻기 시작했고 그 뒤로 항상 서서 씻었다. 이건 빨리 씻을 수 있어 훨씬 효율적이다. 영화에 나오는 배우들의 샤워신도 다 꼿꼿이 서서 씻는다. 눈을 감은 채 쏟아지는 물줄기를 맞으며 피와 인생의 찌든 때를 흘려보내던 무수한 영화 씬들... 후. 하지만 나는 지금 형편없는 몰골로 쭈그려 앉아 대야에 흘러드는 뜨거운 물의 수도세와 난방비를 생각한다. 물을 꺼야 하는데. 끄면 너무 빨리 미지근해지는 걸. 안 그래도 깨질 것 같은 머릿속에선 공과금을 내는 나와, 관리비가 뭔지도 모르는 열두 살짜리 내가 갈등한다. 후. 이게 뭐하는 짓이람. 나는 수도꼭지를 더 뜨거운 물이 나오는 방향으로 틀고 그냥 가만히 있는다. 직립 샤워를 시행한 지 근 십여 년만에 다시 목욕 의자로 회귀하다니.
가만히 대야에 담긴 발을 관찰한다. 십여 년 사이 내 발은 꽤 자랐고 굳은살이 배기기 시작했다. 발가락도 울퉁불퉁한 게 갈수록 엄마 발이랑 똑같아진다. 예전엔 굳은살이 옹이 진 엄마 발만큼 못생긴 발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내 발도 점점 그렇게 되고 있다. 세상에. 나는 까끌까끌한 뒤꿈치를 문지르며 고개를 들어 내가 있는 화장실을 보고 더 뜨악한 기분이 되었다. 하나도 달라진 게 없다! 십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침침한 조명, 코딱지만 한 크기의 화장실(사실 예전보다 지금이 훨씬 좁다), 물때가 잔뜩 낀 바닥 타일과 그 한가운데서 욕조 대신 세숫대야에 온수를 낭비하는 나까지. 대체 십여 년의 세월은 어디로 간 걸까? 나는 그동안 많은 이사를 다녔고, 많은 화장실에서 씻었지만 직립 샤워에서 쭈그린 의자 샤워로 되돌아온 지금 내가 여전히 후진 화장실에 있다는 사실에 욕지기가 나기 시작했다. 거지 같은 인생. 거지 같은 나. 이 문구 역시 열두어 살의 내가 화장실에서 했던 말이기도 하다. 다른 점이라면 그때는 내가 크면 이런 후진 집에서는 안 산다는 말도 같이 했다는 것이다.
이미 훌쩍 커버린 지금, 난 아직도 후진 집에 산다. 열두 살 때 애타게 꿈꾸던 독립은 얻었지만 그럴듯한 경제력도 생활 능력도 없이 매일 집과 나 자신의 지저분함과 싸운다. 이게 내가 꿈꾸던 미래일까? 사실 미래를 말하기도 전에 나는 내가 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하나도 없다는 직감에 경악스러운 기분이 되었다. 몸집만 커지고 그 속은 십 년 전 그대로면 어떡하지? 건방지고 인생이 불만이며, 절대 굽힐 줄 모르는 고집으로 모두를(특히 미래의 나를) 힘들게 한 내가 주민등록증을 받던 날 사라진 게 아니라 오늘날에도 멀쩡히 살아 숨 쉬고 있다면? 아. 어떡하지! 나는 세월이 흘렀다는 증거를 찾기 위해 비척비척 일어나 김이 뿌옇게 서린 거울에 얼굴을 비춰보았다. 별 볼일 없는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그 속에서 시간이 내게 줬을만한 걸 찾아보았다. 지혜나 지성, 이지적인 눈빛 뭐 이런 거... 그런 건 없고 거울에는 숙취로 푹 꺼진 얼굴에 다크서클만 턱까지 내려와 있었다. 이럴 거면 뭐하러 나이를 먹는단 말인가. 복작대던 후진 집을 떠나봤자 돌고 돌아 혼자 사는 후진 집으로 되돌아올 뿐이라면. 인생이 계단을 올라가는 게 아니라 같은 운동장 트랙을 계속 도는 일이라면.
우리는 우리가 자라온 과거에서 얼마나 벗어날 수 있을까? 이사를 가고, 졸업을 하고, 낯선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시도를 하면 할수록 우리는 지난 시간에서 더 멀리 떠나올 수 있는 걸까? 그렇다면 어릴 때의 습관은 어디서 잠들어 있다가 이런 유쾌하지 않은 순간에 불쑥 튀어나오는 걸까. 내가 되고자 원했던 모습은 여전히 멀리 있고 사라지기를 바랐던 면모는 그대로 나와 달라붙어 있다. 그게 지금 이 순간 나를 매우 우울하게 만든다. 이젠 나 자신의 후짐에 대해 탓할 사람을 찾을 수도 없다. 난 뭐든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아니었다. 나는 열두 살 때와 같은 꿈(넓고 깨끗한 화장실!)을 꾸고 있고, 아직도 이루지 못했다. 넓은 집에 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생각하면 앞으로도 요원해 보인다.
묘한 건 이제 뭐든지 될 수 없다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별로 뭐든지 되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나는 그냥 내가 되고 싶고, 나로 사는 게 좀 익숙해졌으면 좋겠다. 내가 진작에 떠나보냈다고 생각한 건 지금처럼 취약한 순간에 들이닥치고, 한때 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던 많은 것들은 언제 어디로 사라졌는지 짐작도 안 간다. 남은 건 점점 식어가는 물속에 담긴 내 발과 코딱지만 한 화장실이다. 인생은 달라지지 않는구나. 달라지더라도 아주 조금씩만 변하고, 어릴 적 환상이 체에 걸러지고 난 앙금을 가슴속에 자갈처럼 굴리면서 사는구나. 이건 술이 가져다준 깨달음인가 목욕의자가 가져다준 깨달음인가 아니면 엉망으로 굳은살이 박히기 시작한 내 발이 가져다준 깨달음인가... 나는 슬슬 추워지기 시작해서 다시 온수를 틀었다가 이내 대야에 담긴 물을 엎어버리고 그냥 일어섰다. 너무 오래 있었다. 더 있다간 목욕의자와 이 좁아터진 화장실마저 좋아하게 될 것 같았다. 나는 물을 끄고 몸을 닦고 추위에 닭살이 잔뜩 돋은 채 밖으로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