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퀴벌레가 싫다
그 계절이 돌아온다. 푸른 잎이 울창하게 자라고 꽃이 만개하는 계절. 사람들이 강에 발을 담그며 노니는 계절, 생명력이 터져오르는 그 계절, 여름. 전쟁의 시작.
지난 이 년 반 동안 칠 평 원룸에서 살았다. 시세보다 훨씬 싼 보증금과 월세에 혹해 집을 계약했다. 겨울에 그 집은 창문이 얼어서 열 수가 없었다. 한여름 폭우에 천장 세 군데에 물이 샌 뒤론 비가 많이 올 때마다 물이 뚝뚝 떨어졌다. 똑. 똑. 또옥.
하지만 날 미치게 만들었던 건 천장 밑에 받쳐놓은 바가지에 물 떨어지는 소리도, 꽉 닫힌 창문도 아니었다. 그건 탁. 타닥. 타다닥. 여섯 개의 다리가 재빠르게 벽을 기어가는 아주 작은 소리였다. 검지손가락만한 갈색 생물체. 죽기 직전 파드득 떨리는 날개. 끝까지 흔들거리는 긴 더듬이…내 집은 바퀴벌레의 온상이었다.
처음에 고양이 사료 봉투에서 튀어나오는 바퀴벌레 두 마리를 보고 난 비명을 지르며 도망갔다. 차로 세 시간 거리에 사는 아빠한테 전화해서 당장 내 집으로 와 잡아달라고 울었다. (리모컨만하다고요! 리모컨!) 노란 장판이 하얗게 절여지도록 홈키파 한 통 반을 쏟아붓고 나서야 바퀴벌레는 죽었다. 그 후 한 시간 동안 난 방 한 가운데에 몸을 뒤집고 죽은 바퀴벌레를 건드리지 못했다. 멀리서 보는 것만으로 공포스러웠다. 저건 사실 안 죽었어. 내가 다가가면 벌떡 일어나서 내 얼굴로 기어오를 거야. 살충제를 다 닦아내고 나서야 벌레 위에 휴지 다섯겹을 깔았고 빈 와인병으로 마구 짓이겨 노란 오물이 휴지 아래 묻어나는 걸 보고 휴지 째로 변기에 내렸다. 휴지 끝으로 긴 더듬이가 물에 둥둥 떠 있는게 보였다. 세상에 이렇게 혐오스러운 생물체가 또 있을까.
엉망진창인 방바닥에 주저앉아 패배감에 녹초가 된 몸으로 여러 살충제를 주문했다. 마음의 안심을 위해서 였지만 바퀴벌레가 하루에도 서너 마리씩 나타나 살충제는 금방 동났다. 천장에서, 전등 틈에서, 화장실에서, 침대 밑에서. 잠결에 내 목을 기어가거나, 샤워하는 중간에 벽 모서리의 재빠르게 움직이는 검은 덩어리로 등장하거나, 밤낮없이 바퀴벌레는 등장했다. 가장 작은 게 내 검지 손가락만했다. 미국 바퀴라는, 바퀴 종류 중 가장 큰 종류였고 크기로 보아 외부 유입 종이라 집 안에서 박멸은 꿈 같은 일이었다. 썩은 김치통 냄새가 풍기는 이 낡고 오래된 건물과 낡고 오래된 하수구에서는 무리였다. 어떤 살충제도 그 크기의 바퀴벌레를 한 방에 죽일 수 없었다. 나는 동물적인 감각으로 미세한 파다닥 소리를 포착한 뒤에 재빠르게 적정 거리에서 독성 살충제를 분사하는 방식으로 적응하고 있었다.
칠 평 원룸에서 맞는 두번째 여름에 접어들면서 처음의 비이성적인 공포와 불안(저 괴물이 내 얼굴로 달려들거야)은 훨씬 강렬한 감정으로 변해갔다. 감히 내 집에 들어온 놈들에게 끔찍한 최후를 맞게 해 줄 거야. 식의 증오! 난 살충제를 살짝만 뿌리고는 부들부들 떠는 그 놈들의 위에 전기 파리채를 얹었다. 전기가 통하면 고기 익는 냄새와 연기가 났고 바퀴벌레는 다리를 뒤틀며 타들어갔다.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바로 죽기에는 전류가 약했다. 주둥이의 이빨이 딱딱 열렸다 닫혔고 꽁무니에선 검은 똥을 줄줄 뱉었다. 눈알이 보일만큼 가까이 있었는데도 바퀴벌레가 무섭지 않았고 희열이 들었다. 꼴 좋다. 핀셋이 있었다면 더 갖가지 고문을 시도해볼 수 있었겠지만 가지고 있지 않았다. 전기파리채를 가장 자주 사용했고 가끔은 배를 뒤집고 죽어가는 바퀴벌레의 두툼한 배에 서너개씩 이쑤시개를 꽂고 괴로워하며 똥을 싸는 걸 지켜본 뒤에 락스를 뿌렸다. 한 마리씩 죽이는 건 너무 시간과 품이 많이 들었다. 그냥 다 불로 태워버리고 싶다. 치워야 할 귀찮은 벌레 잔해를 보며 난 생각했다. 내가 아무리 죽여봤자 이 후진 건물의 벽과 배수관을 타고오를 바퀴벌레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바퀴벌레를 없애기 위해서 이 건물 째로 홀랑 불 질러 버리고 싶었다. 머릿속으로 활활 타오르는 건물과 집주인과 그 속에서 고통스럽게 죽어갈 바퀴벌레 무리를 생각하니 즐거웠다.
“걔네들도 생태계에 하는 일이 있을 거야.”
그 날도 바퀴벌레 하나를 전기고문 시킨 뒤 시체를 집주인의 문 앞에 던져놓고 난 뒤 언니와 한 통화에서 언니가 말했다.
“그건 알 바 아니야. 생태계고 나발이고 모든 바퀴벌레를 박멸할 수 있다면 다른 생명체는 다 죽어도 상관없어. 버튼이 있다면 누를 거야. 없는 게 문제지. 빈대를 잡을 수 있다면 초가삼간 불지르는 건 일도 아니란 말야.”
머리로는 기후위기와 혐오로 만연한 이 시대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책을 읽으면서도 내 가슴은 순수한 혐오로 가득했다. 눈을 감으면 단 한 마리의 바퀴벌레도 남지않은 황량한 지구의 디스토피아적인 모습을 떠올랐고, 거기 홀로 서 있는 내가 떠올랐다. 이게 내가 원하는 풍경이야. 어떠한 파다닥 소리도 없는 죽음같은 고요!
생명체없는 풍경이 내게 주는 평화를 상상하면서, 혐오는 무척 도시적인 감수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시에는 구획이 있다. 구획으로 나뉜 그 선은 개개인의 것이며 침범당하면 안 되는 것이다. 네모반듯한 건물과 일렬로 깔린 보도블럭, 자연은 잘 다듬어진 화단처럼 정해진 구역에 있고, 사람들의 일상도 정해진 구역에서, 정해진 방식으로 이뤄진다. 그런 분리에 익숙해지다보면 있지 말아야 할 것이 갑자기 눈 앞에 나타난 순간에 극도의 이질감, 공포, 혐오를 느끼는 것일까? 그래서 우리는 사물보다는 생물체에게 더 강렬한 혐오를 느끼게 되는 걸까?
바퀴벌레를 향한 내 증오에는 더 많은 게 엉켜 있었다. 내 아래층에 살며 온갖 쓰레기를 집 안에 모아두는 게 분명한 말이 안 통하는 집주인에 대한 분노, 안 그래도 돈이 없어 좁은 집에 사는데 그 공간 하나 편히 쓸 수 없다는 설움, 내가 기대하는 주거 수준와 내가 얻을 수 있는 주거지 사이의 간격이 얼마나 큰 지 바퀴벌레가 끊임없이 상기시킬 때의 좌절감 등이 뒤섞여 있었다. 이는 사실 벌레랑 무관한 인간의 문제이다. 도시는 나를 힘들게 하고, 나는 그 울분을 도시의 밑바닥 생물체인 바퀴벌레를 태우면서 해소하고 있었다.
난 전기 파리채를 죽어가는 벌레의 위에 내리누르면서 이건 너와 나 사이의 전쟁이야. 내 영역을 침범했으니까 이 정도는 당해도 싸. 라고 생각했지만 정확히 언제부터 바퀴벌레를 ‘너’라고 부르게 된 걸까? 전쟁이라면, 대체 나는 무엇과 싸우고 있던 것일까? 해충? 벌레의 끈질긴 생명력? 자연? 내 통제를 벗어나고, 침범하는 모든 존재들? 생명을 죽이는 일에는 사물을 부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카타르시스가 있었다. 난 익숙해지고 싶지 않았지만 그 미약한 권력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내 집을 지키고, 통제에 성공했다는 만족감.
칠 평 원룸에서 보냈던 마지막 여름. 드디어 내가 이겼다고 생각했다. 강력한 살충제로 바닥 주변을 다 덮었고 바퀴벌레는 그걸 밟자마자 뒤집어진 시체로 발견됐다. 기술의 승리지. 바퀴벌레의 출몰은 갈수록 줄어들었다. 겨울은 평화로웠고 보일러가 한 번 터졌다. 봄에 나는 화장실 환풍구에서 웅웅 거리는 날개짓 소리를 들었다. 며칠 뒤에 집단으로 움직이는 우우웅 소리가 밤에도 낮에도 화장실 천장을 울렸다. 천장 안쪽에 벌집이 만들어지고 있는 게 분명했다. 벌 시체가 하나 둘씩 변기 위로 떨어졌고 나는 홈키파를 들고 화장실 환풍구 속에 한통 가득 뿌리고 테이프로 환풍구를 막았다. 날개짓 소리는 미친듯이 커지다가 점차 줄어들었다. 난 마지막 소리가 없어질 때까지 기다렸지만 벌들은 계속 낮게 웅웅거리며 화장실 천장 안을 맴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