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에 대해 생각하기

by 김나은

마지막으로 해외 여행을 한 건 2020년 1월, 핀란드였다. 대학교 글로벌 탐방 프로젝트에 선정 돼 숙식비랑 항공비를 지원받은 여행이었다. 팀원 세 명과 보름 동안 같이 먹고 자면서 겨울 핀란드의 축축한 공기 속을 누볐다. 기관을 만나 인터뷰하고 밤새 보고서를 썼던 시간은 다 잊고, 지금도 기억나는 건 이런 대화.

A랑 B는 테이블에 앉아 스마트폰을 보면서 얘기 중이다. 난 막 샤워를 끝내고 나왔다.


“헐”

“왜?”

“숙명여대에서 트젠 입학 허가했대.”

“헐, 진짜?”

난 테이블에 앉았고 두 사람이 나한테 스마트폰 화면을 돌리면서 에브리타임에 올라온 기사 링크를 보여준다. 처음 듣는 소식에 나는 생각나는 대로 반응했다.

“잘 됐네.”

“뭐?”

A와 B가 둘 다 말을 멈추고 나를 본다. 뭔가 이상하다. 분위기가 싸해지고 A가 스마트폰을 뒤로 가져가는 게 내가 잘못된 대답을 한 것 같다. 그럼 정해진 답이 있었던 건가? 난 당황했고 (뭔지는 몰라도) 일단 틀린 답을 말했다는 사실에 창피했고, 도대체 이게 뭘 확인하려고 한 질문인지 의문스러웠다.

“왜, 잘 된 거 아닌가?” 난 어리둥절해서 되물었다.

“아니, 이건 좀 아니지…”


B는 얼버무리듯이 말하며 고개를 돌렸다. 두 사람은 다시 스마트폰을 바라보았고 난 여전히 묘한 기분 속에 있었다. 트랜스젠더가 정체성을 인정받고 대학에 입학하는 건 고무적인 일이라는 처음 생각엔 변함이 없었다. 하지만 이 의견이 환영받지 못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날 보는 A와 B의 눈빛에서 난 여자는 결혼해서 애를 낳아야 한다고 말하기라도 한 것처럼 시대 착오적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난 대학 입학 이후 시간표말고는 거의 보지 않던 에브리타임을 켰다. 내 학교는 여대였고, 트랜스젠더 입학을 극구 반대하는 게시글들이 줄줄이 인기글로 올라와 있었다. 정말 이상한 일이군. 도저히 이해하기 힘들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거지?


핀란드에서 돌아와 학생회관에서 점심을 먹고 나오는 길, 계단에서 페미니즘 소모임 회원을 모집하는 팜플렛을 보았다. 가입 조건은 긴 머리, 귀걸이, 화장, 치마 금지. 난 긴 머리에 치마를 입고 있었다. 난 안 되겠군. 그런데 나는 왜 안 되지? 다시 한 번 기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한참 전에 정희진의 책을 필사하고, 여성주의 분야의 책을 심심할 때마다 읽는 것으로 페미니즘과 나 사이의 거리가 가깝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지금 일어나는 일은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인터넷을 멀리한 사이 페미니즘은 전혀 다른 게 되어버린 걸까?


숙대 트랜스젠더 입학 사건은 논란을 빚다가 당사자가 입학 포기를 하는 것으로 끝이 났다. 학교 페미니즘 소모임은 래디컬 페미니즘 소모임으로 이름을 바꾸었고 교내 유일한 페미니즘 소모임을 유지하고 있다.

이 두 순간을 오래 기억하는 건, 내가 당연히 받아들여질 거라 생각한 집단에서 거절당한 당황스러운 기분과 함께, 내가 여성이라는 게 뭘 의미하는지 생각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트랜스젠더 입학에 대한 내 간단한 의견은 현 한국 사회 속 여성의 권리라는 거대하고 복잡한 문제와 엮여 있었고, 긴 머리와 치마는 그냥 편한 옷이 아니라 더 많은 걸 함의하고 있었다. 내가 전혀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짧은 머리와 바지가 페미니스트 의지를 보여준다면 내 긴 머리와 엄마에게서 얻어온 롱치마는 무엇을 보여주는걸까? 나는 그냥 여자인걸까? 불타는 페미니즘 논의의 장에서 물러나 혼자 조용히 생각할 시간을 갖고 싶다면 난 여성 인권과 정치에 무관심한, 생각없는 사람이 되는 걸까? 여행 내내 A가 즐겨 말한대로, 한남의 후장에 불닭소스를 들이붓는 일이 전혀 내키지 않는다면 나는 내 팀원들과 다른 편에 서 있는 사람이 되는 건가?


나는 간편하게 집단 정신에 휩쓸려 주변 친구들이 화낼 때 같이 화내고 같은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나는 여성의 권리가 무조건 우선시되며 다른 인권보다도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여성이 성공한 인생을 살려면 스펙을 쌓고 보란듯이 파이 싸움에서 이겨 위로 올라가자는 야망을 갖지도 않았다. 그 해 나는 화장실 거울에 벗은 몸을 비춰보면서 궁금해 했다. 나는 여성이 확실할까?(그런거 같다) 그러면 나도 사회 흐름에 맞춰 분노하고, 뭔가를 해야만 ‘진짜’ 이십대 여성인 거 아닐까? 여자라는 사실이 별로 대수롭게 느껴지지 않으면 난 명예 남성인가? 나는 (모든 젠더 차별에 반대한다는 입장에서) 페미니스트인걸까, 아니면 (별로 행동하지 않는 인간이란 점에서) 페미니스트가 아닌걸까? 그런데 내가 어떤 종류의 사람인지를 타인이 대신 명칭(너는 명예 남성이야!)해줄 수 있는건가? 그해 나는 페미니즘이 어떤 윤리성의 기준인 것 같이 느꼈고, 도덕적으로 흠결 없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바람과 사실은 뭐가 정말 옳고 그른지 모르겠다는 혼란 속에서 인터넷 세상을 탐닉했다. 거기에 놀랍도록 나를 각성시키거나, 내가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 알려주는 글이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어떤 글도 근원적인 내 욕망을 이길 수 없었으므로 이 시도는 흐지부지 끝났다.

나는 아무것도 되고 싶지 않았다. 무엇으로도 나를 정체화하고 싶지 않았다. 타인이 나를 무언가로 지칭하기 전까지(학생, 청년, 아가씨…) 나는 나라는 육체와 정신을 가진 한 존재일 뿐이었다. 그렇게 무엇으로도 나를 정체화하지 않을 때 가장 자유로웠다. 그 불확실한 영역에선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었다. 여성과 페미니즘이 나를 구성하는 다양한 삶의 조건과 경험 중 하나일 뿐이며 총합인 나는 그저 알 수 없는 무언가로서의 ‘나’일 뿐이라는, 이 비대한 자의식을 꺾을 도리가 없다는 걸 깨달았을 즈음에 나는 SNS 창을 껐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심심할 때 여성주의 책을 읽고, 정희진의 강의를 종종 찾아듣는 것으로.


A가 여전히 불닭 소스에 매력을 느끼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2년 사이 페미니즘 논의의 장도 여러모로 변화했을 것이다. 당시 숙대 트랜스 젠더 입학에 대한 지지 성명 책이 출판되는가 하면 인터넷 페미니즘의 양상을 정리한 책들도 몇 권 나왔다. 인터넷 글을 찾아 읽는 것보다 훨씬 속도가 느린 게 마음에 든다.

난 엄마에 대해 글쓰고, 할머니에 대해 쓰고, 나에 대해 쓰지만 이게 내가 하는 전부다. 이들에 대해 쓸 때 난 그저 한 인간에 대해 쓴다고 생각하면서 쓴다. 삶은 그게 아닐지도 모르지만…누가 글쓰고 있는 내게 손전등을 들이밀고 당신은 이십대 페미니스트가 맞나요!라고 물으면 무척 당황하고 말 거다. 내가 두 집단 어디에도 속한다고 느낀 적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여성에 대해 생각하라는 주제를 받게 되면, 나는 어느새 2년 전으로 돌아가 분노하고, 조소하고, 괴로워하던 여성들 틈에 같이 앉아 내가 느꼈던 불안과 동요, 기대, 힘을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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