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어느 마을 남자에 대한 이야기

소는 알고 사람은 모르는.

by 김나은



내 할머니 임순이 살던 마을. 마을 언덕배기 위에 한 남자가 살았다. 오래 그 마을에서 살았다. 그 남자는 삼 남매의 장남으로 어머니, 아내와 함께 살았다. 그 집안 남자들의 성격은 마을에서 유명했다. 괴팍하고 불끈한 성질을 참지 못했다. (임순: 그 집 아들들은 영 못 쓴다) 둘째 아들은 도시로 나가 연락을 끊고 살았다. 막내 아들은 경찰이 되었다. 막내 아들은 집 안에서 가장 점잖았다. 장남은 어머니를 모시며 아내와 살았다. 가난한 집에서 시집왔던 장남의 아내는 아들 딸 낳고 시집에서 살았다. 매일 같이 담벼락이 부서질 듯 고함이 오갔고 살림살이가 남아나지 않았다. 마을 사람 모두가 알고 있었다. 저 집 장남은 어머니한테도 아내에게도 몹쓸 자식노릇을 하고, 전혀 자랑할 만한 생활을 못하고 있다는 걸. 하지만 어머니가 다음날 아침이면 늘 사람들에게 아들이 자신에게 무얼 해줬는지, 얼마나 잘해주는지를 말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밤에 세간살이가 다 박살난 뒤에 어머니는 나와 며느리가 자신을 얼마나 받드는지, 아들은 얼마나 든든한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아침 인사처럼 말했다. 임순은 그 인사를 자주 받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농사일 같은 게 있으면 먼저 나서서 자기가 하겠다고 하고, 뚝뚝허니 오며가며 지내기에 사람은 괜찮았다.”


장남은 틈만 나면 아내를 잡도리질했다. 네 년이 날 무시한다고, 날 떠나려고 마음만 먹으면 때려죽여버리겠다고 가만 두지 않았다. 아내는 매일 맞았다. 온갖 걸로. 그래도 그녀는 아들 딸을 먹이고 키웠다. 눈을 희번뜩하게 뜨고 있는 남편 때문에 도망갈 수도 없었다. 어느 날 장남은 미친듯이 화를 냈다. 이 여편네를 잡아 죽여버리겠다고 난리 법석을 떨었다. 장남은 아내의 머리채를 질질 끌고 마당으로 나왔다. 내팽겨쳐놓고 외양간에서 소를 꺼내 왔다. 너 이 빌어먹을 년이 날 흘겨봤지. 날 무시했지. 장남은 소를 농사일 할 때 쓰는 구루마에 묶었다. 그러고는 노끈을 가져와 땅바닥에 패대기쳐진 아내의 손과 발을 꽁꽁 묶었다. 노끈의 끝을 구루마 밑에 연결했다. 너 오늘 죽어봐라. 장남은 소를 앞으로 가라고 밀었다. 소는 뭔가 이상한 낌새를 챘는지 엉덩이를 씰룩이며 다시 외양간으로 들어가고 싶어했다.


“소도 다 안다. 즤 챙겨주는 사람이 아이고 아이고 하믄서 꽁꽁 묶여 있는디 그걸 끌고 앞으로 가겄니, 걔가? 아이, 이건 아니다. 생각혀서 안 갈라고 발 딱 대고 코를 푸릉푸릉 혔지.”


이노무 소 새끼가 왜 말을 안 들어. 장남은 코뚜레를 잡아 당기고 엉덩이를 차며 소를 잡아 끌었다. 소는 마지못해 못 내키는 걸음을 내디뎠다. 그마저도 빨리 가지 못하고 주저하며 천천히 움직였다. 아내는 뒤에 묶여 그대로 질질 끌려갔다. 아이고 아이고. 아내는 죽는 소리를 냈다 .너 이새끼 빨리 안 가. 장남은 소를 마구잡이로 끌고 갔다. 아내는 고개 너머까지 그대로 묶여서 끌려갔다. 마을 사람 아무도 아는 체 하지 않았다.

언덕 위에 와서 장남은 아는 사람의 집으로 들어가 막걸리를 달라고 호통을 쳤다. 에이, 망할놈의 여편네. 술이나 주쇼. 장남은 그 집 마루에 앉아 막걸리를 한 사발 얻어 마셨다. 그 사이 아내는 보란듯이 길목에 던져져 있었다. 소는 먼저 구루마 앞에 서서 아내가 길가에 안 보이게 뒤로 슬쩍슬쩍 밀었다.


“소도 다 안다. 밥 주는 사럼이 그런 꼴로 있으믄 안 되는 거 알고 앞에 나서서 뒤로 숨겨준 것이지. 넘들 보지 말라구. 아주 영험한 동물이다. 마음도 다 알구 속도 깊다.”

아내는 소의 뒤에서 너덜너덜해진 노끈을 어떻게든 손목에서 풀어냈다. 발목의 끈도 풀었다. 온 몸이 엉망이었다. 아내는 허둥지둥 언덕을 달려내려갔다.


“아주 쏜살같이 도망가버렸지.”

“어디로 갔대요?”

“그 여자가 워딜 간다니. 집으루 갔지.”


장남이 아내를 소 뒤에 묶어서 짐승처럼 질질 끌고 다녔던 날. 마을 사람들은 모두가 모른 척 하던 날. 그 다음 날에도 장남의 어머니는 아들이 자기에게 얼마나 잘해주고 며느리가 얼마나 예의바른지 사람들에게 말했다. 수십 년 뒤에 장남은 다리 수술이 실패한 뒤 농약을 먹고 죽었다. 둘째 아들은 어느 날 번쩍 마을 안에 돌아와 이장 일을 시작했다. 막내 아들은 고향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아흔이 넘은 어머니는 지금도 살아있다. 장남의 아내는 시어머니를 수발하며 계속 그 마을에서 산다.


“잔인하네요.”

“그러고 살었지. 너는 모른다.”

임순은 냉이나물을 씹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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