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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자책봉 Aug 08. 2022

주말마다 비가 와서 급발진으로 다녀온 트래킹

서해랑길 65번 코스-(2)

푸른 여름의 무성한 녹색지대를 지나야 한다.




주변은 온통 녹색으로 가득했다. 무성한 나뭇잎과 풀들, 양옆으로 펼쳐진 넓은 논에 줄 세워져 자라고 있는 짙은 녹색의 벼는 한동안 나의 벗이 되어 주었다. 서른 살을 지나고 있는 나의 모습과 그들의 모습은 분명 서로 닮아 있었다. 지금 곧게 뻗은 그들의 모습은 앞으로 점차 고개를 숙일 것이고, 누군가를 위해 결실을 맺어 줄 것이다. 나의 계절 또한 여름을 지나고 있다. 최고의 성장기인 지금의 시기를 지나 언젠가 그 기운이 점차 줄어들고 가을에 접어들면 몸을 구부리게 될 터. 그리고 결과를 만들어 내야 할 것이다. 가장 걱정되는 건 이 부분이다. 과연 내가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그러나 자연의 순리대로 따가운 햇빛과 더운 바람을 맞다 보면 계절이 변하고 결과는 제 스스로 따라올 지니. 쓸데없는 고민 하지 말고 정진하라! 그러면 결과는 따라올 것이다. 오늘도 자연에게 한 수 배웠다. 비가 점점 그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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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 벗들과의 대화는 청포대 해수욕장 근처에 와서야 끝이 났다. 얼마 전에 구매한 트래킹화에는 점점 흙이 아닌 모래알이 밟히기 시작했다. 겨우 두 번째 사용하는데 비를 이렇게나 맞고 다닌다고?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지만, 무릇 모든 것은 쓸모가 있을 때 가치를 발하는 것이니, “그래 그렇게 아끼면서 다닐 거면 비싼 걸 무엇하러 사냐” 약간은 다른 의미인 무소유의 심정으로 마음을 달랬다. 이제 길 옆으로는 해송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여기저기 바닥에 떨어진 나뭇가지들을 보고 있자니 순간 울컥한 마음이 들었다. 그것은 비록 바닷바람과 맞서 싸우다 바닥으로 떨어져 더 이상 나무로써, 바람막이의 역할을 하지 못하지만 이내 자연으로 돌아가 다음 생명을 위한 땅의 양분이 되려는 숭고한 희생이었다. 참으로 초연한 모습이었다. 불어오는 바닷바람이 쓸쓸함을 더했다.


주욱 늘어선 해송들 아래로 떨어져 있는 수많은 나뭇가지들




본격적으로 해변이 눈앞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어느덧 비는 완전히 그쳤고 더운 습기만이 주위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청포대 해수욕장 중간에 있는 편의점에 들러 재정비를 했다. 12km를 걸어오면서 이미 다 마셔버린 물 한 병을 새로 구매하고, 발가락 테이핑을 다시 했다. 다행히 아직 발은 멀쩡했다. 역시 신발이 좋은 탓이다. 오 분간의 달콤한 휴식 후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시계는 오후 5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몽산포 해수욕장까지 남은 거리는 4km. 해변을 따라 걷는 길은 평탄했지만 트래킹 막바지의 날 선 피곤함이 몸을 채우고 있었다.


비가 그친 뒤 고요한 청산포 해변




해변길 중간중간에는 캠핑을 즐기는 이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설치해놓은 텐트를 비롯해 꺼내놓은 장비들을 보니 다들 한 캠핑하는 솜씨였다. 늦은 오후의 휴식을 여유로이 즐기고 있는 그들의 모습을 보니 입가에 절로 미소가 뗬다. 때로는 아이들과, 때로는 연인과, 때로는 반려동물과. 얼마나 평온한 오후인지, 비 온다고 집 안에 박혀 있었으면 절대 느낄 수 없는 종류의 즐거운 감정이었다. 그런데 하필 캠핑장을 지나는 시간이 저녁시간이 아니던가. 여기저기 풍겨오는 저녁식사 냄새가 정말 압권이었다. 특히 삼겹살 냄새는 정말…. 이곳에 스파이가 있는 게 분명했다. 누군가 나를 홀려 길에서 이탈시키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던 게 틀림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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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6시 10분. 드디어 몽산포 해변에 도착했다. 코스 완주를 축하하듯 점점 맑아지는 회색 구름 사이로 내리는 햇빛이 서해바다를 반짝 비추고 있었다. 계단에 털썩 주저앉아 완주를 만끽했다. 비록 온몸은 비와 땀으로 젖고, 새로 산 신발은 중고가 되었지만 잃은 것보다는 얻은 게 많은 트래킹이었다. 15.3km를 걷는 동안은 오로지 나를 마주 할 수 있던 순간이었다. 그동안 나의 내면에서는 그간 얽매여 있던 감정들이 풀어지고 다시 매듭지어지길 반복하며 인생의 항로에 요동치던 거대한 파도가 잠시나마 고요해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삶의 방향과 인생에 대해 고민이 많은 요즘, 오늘의 트래킹으로 얻은 분명한 한 가지는 모든 것은 자연의 이치대로 흘러간다는 것이다. 서두르지 말고 자신의 위치에서 정진하면 결과는 따라올 것이다.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 하는 것. 이것이 바로 내가 해야 할 일이다. 이제 집에 갈 일만 남았다. 버스로 출발했으니, 버스로 돌아갈 차례다. 서해랑길 65코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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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을 마친다.  끝.


주말마다 비가 와서 급발진으로 다녀온 트래킹 - 서해랑길 65번 코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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