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모스> / 칼 세이건
※ 1980년에 출간된 대중과학서적으로 인류의 역사와 우주, 천문학 등 우주 과학을 폭넓게 다루는 책입니다. 과학서적임에도 불구하고, 인문학적인 내용까지 겸비된 훌륭한 책임에 틀림없습니다. 모든 분들께 추천합니다.
우리도 코스모스의 일부이다. 이것은 결코 시적 수사가 아니다. 인간과 우주는 가장 근본적인 의미에서 연결되어 있다. 인류는 코스모스에서 태어났으며 인류의 장차 운명도 코스모스와 깊게 관련돼 있다. 인류 진화의 역사에 있었던 대사건들뿐 아니라 아주 사소하고 하찮은 일들까지도 따지고 보면 하나같이 우리를 둘러싼 우주의 기원에 그 뿌리가 닿아 있다. 독자들은 이 책에서 우주적 관점에서 본 인간의 본질과 만나게 될 것이다.
- 칼 세이건(저자)
1장. 코스모스의 바닷가에서
2장. 우주 생명의 푸가
3장. 지상과 천상의 하모니
4장. 천국과 지옥
5장. 붉은 행성을 위한 블루스
6장. 여행자가 들려준 이야기
7장. 밤하늘의 등뼈
8장. 시간과 공간을 가르는 여행
9장. 별들의 삶과 죽음
10장. 영원의 벼랑 끝
11장. 미래로 띄운 편지
12장. 은하 대백과사전
13장. 누가 우리 지구를 대변해 줄까?
1934년 미국 뉴욕 브루클린에서 우크라이나 이민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시카고 대학교에서 인문학 학사, 물리학 석사, 천문학 및 천체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스탠퍼드 대학교 의과대학 유전학 조교수, 하버드 대학교 천문학 조교수, 코넬 대학교의 행성연구소 소장, 데이비드 던컨 천문학 및 우주과학 교수, 캘리포니아 공과대학 특별 초빙 연구원, 행성협회의 공동 설립자 겸 회장 등을 역임했다. NASA의 자문 위원으로 보이저, 바이킹 등 무인 우주 탐사 계획에 참여했고 과학의 대중화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여 세계적인 지성으로 주목받았다. 행성 탐사의 난제 해결과 핵전쟁의 영향에 대한 연구로 NASA 훈장, NASA 아폴로 공로상, 소련 우주항공연맹의 콘스탄틴 치올코프스키 훈장, 미국 천문학회의 마수르스키 상, 미국 국립과학원의 최고상인 공공복지 훈장 등을 받았다. 대표 저서로는 가장 많이 판매된 <코스모스>와 퓰리쳐상을 받은 <에덴의 용>이 있고, 영화화된 소설 <콘택트>가 있다. 이 외에도 <우주의 지적 생명>, <화성과 인간의 마음>, <브로카의 뇌>, <잊혀진 조상의 그림자>, <창백한 푸른 점>,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에필로그> 등을 썼다.
돌이켜보면 살면서 코스모스를 읽을 기회가 몇 번이나 있었다. 유년시절에 자주 다녔던 평생학습관의 중앙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2층에 신문실이 있었다. 신문실에는 그날에 발행된 여러 개의 신문뿐만 아니라 그 주 혹은 그 달에 출판된 잡지들도 있었는데, 나는 그중에 특히 Newton 과학잡지를 자주 읽었다. 이 말인즉슨 나는 공부를 하러 가서 딴짓을 주로 했다는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했기 때문에 나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을 꽤 어린 나이에 접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과학잡지의 전면 혹은 후면에 들어가는 광고에 주로 등장했던 게 바로 코스모스였다. 명확하지는 않지만, '과학잡지 1위'라는 홍보문구가 들어갔던 기억이 어렴풋이 있다.
그 당시 내가 코스모스를 봤을까? 그렇다. 봤다. 평생학습관은 본디 도서관이었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책을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첫 페이지를 봤다. '음'. 다시 책을 덮고 원래 있던 책장 안으로 밀어 넣었다. 첫 장부터 깨알같이 쓰여있는 글로 가득한 책은 그 당시의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들었고, 이는 무엇보다 흥미가 확 사라지게 만드는 요인이었다. 그 당시 나에게는 화려한 이미지와 함께 친절한 설명이 있는 과학잡지 정도가 수준에 딱 맞았다. 그렇게 첫 번째 기회는 지나갔다.
두 번째 기회는 대학시절에 있었다. 대학시절 밤이 되면 5층에 있는 원룸 자취방에 모여 같이 술을 마시던 친구의 집에 있는 유일한 책이 바로 코스모스였다. 평소 책과 거리가 먼 친구였지만, 평소 책과 거리가 먼 친구의 집에도 있는 책이라는 점이 나를 다시 한번 코스모스로 이끌었다. 그날도 우리는 라면을 하나 끓여놓고는 친구의 어머니가 만들어주신 김치와 함께 소주를 먹고 있었다. 한 병이 두 병이 되고, 두 병이 세 병이 되며 자정이 가까워졌다. 친구는 먼저 취해서 잠이 들었고, 나는 컴퓨터에 틀어놓은 영화 '타짜'를 보며 밤의 여운을 즐기고 있었다. 그런데 문득 코스모스를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다시 한번 책을 펼쳤다. 책이 접혀있는 모양을 보니, 친구는 이미 절반쯤 본 모양이었다. 첫 페이지, 두 번째 페이지, 세 번째... 그렇게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다음날 아침이었다. 책은 어젯밤의 취기를 간직한 듯 머리맡에 고요히 있을 뿐이었다.
이 책을 처음 읽어야지 했던 것이 벌써 15년 전의 일이다. 나는 왜 코스모스를 그때 읽지 않았을까. 이제야 이 책을 접하게 된 것이 심히 안타깝다. 그렇지만 이것도 운명이려니. 인생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해본 적 없던 시절이 지나가고 나자, 반대로 너무나 깊은 생각에 사로잡혀 삶의 어두운 면만을 바라보던 시기가 왔다. 그리고 이제는 그 시기도 지나갔다. 투박하던 해변의 모래가 파도에 휩쓸리며 점점 고와지듯, 삶이 한창 요동치고 나서야 모난 것 없이 차분해진 이 시기에 코스모스를 읽게 된 건, 마치 시간과 마음이 조화를 이룬 듯한 적절한 타이밍이 아니었나 싶다. 이것이 운명이 아니고서야 무엇이겠는가.
빅뱅? 점? 블랙홀? 가이아? 우주의 탄생에 대한 수많은 가설이 있지만, 아직까지도 그것을 비교적 잘 설명하기란 참 어려워 보인다. 근래에 가장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받는 인플레이션 우주론 역시 아직은 사고실험에 불과하지 않던가. 우주를 실험한다는 건 상상조차 어렵다. 실험적 증명이 가능한 것인지도 의문인데 애초에 우주의 근원 즉, 뿌리를 찾는 것은 더욱 불가능한 것이 아닌가 싶다.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의 대척점. 우주에 있는 4가지 힘 강력, 약력, 전자기력, 중력을 통합하여 단 하나의 이론으로 설명하려는 통일장 이론의 증명 한계점. 우주의 모든 것은 미세한 크기의 끈의 진동이 만들어낸 것이라고 설명하는 초끈이론의 증명에서 차원의 한계점. 이것들은 모두 인류가 아직 우주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인류가 우주에 대한 단 한 가지 확신을 가질 수 있다면 그것은 우주의 탄생이 없었다면 인류의 탄생이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점이다.
과거에 일어난 수많은 사건 중 단 하나의 사건이라도 다르게 벌어졌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높은 확률로 지금과 완전히 똑같은 현실을 마주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인류는 인과율에 묶여있기 때문이다. 시간을 조금 거슬러 올라가 보자. 6.25 전쟁에서 북한이 남한을 점령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조금 더 거슬러보자. 인류 역사상 단일국가로서 가장 넓은 영토를 차지한 칭기스 칸이 중병에 걸려 죽지 않고, 서유럽과 아프리카 대륙까지 통일을 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조금 더! 만약 나무 위에서 생활하던 인류의 선조들이 살던 시대에, 계속해서 지구 곳곳에는 나무가 무성해 땅으로 내려올 일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마지막이다. 어떻게 탄생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떻게든 태어난 우주가 시간이 흐르매 자리를 잡아가는 동안, 붉은빛을 내는 태양이 지금의 지구라는 행성 옆에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렇다.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며 생각할수록 우리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명확하다. 과거에 있던 모든 순간, 일련의 사건들이 어느 하나 빼놓지 않고 켜켜이 쌓여 지금 현실의 이 순간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이 사실은 인류에게 인류가 얼마나 어려운 확률을 뚫고 태어난 존재인지를, 그렇지 않다면 도대체 인류가 얼마나 소중하길래 세상이 인류를 탄생시킬 목적으로 흘러오게 된 것인지를 알려준다. 현재를 살아가는 인류는 멍청하게도 곧잘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상대를 멸시하고 또한 분노한다. 과거를 망각할 수 있는 능력은 인류의 오래된 생존방법으로 인류는 현재를 현재를 살아갈 수 있게 되었지만, 인류는 자신의 존재의 소중함마저 망각해 버리는 부작용을 낳았다.
우주론적 논리에 따르면 탄생과 함께 죽음을 향해 질주하는 인류에게는 사실 의미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주의 시간에서 기껏해야 인간 수명의 최대치인 100년은 찰나에 불과하거니와 의미가 있어봤자 인류에게 있는 것이지 우주에게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인류에게도 마찬가지다. 어차피 죽고 나면 그만인 것을. 평생을 가질 수도 없는 의미 따위야 무슨 소용이랴. 그런데, 우주적 관점에서 의미가 없다는 말은 또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 바로, 의미가 있는 것을 만들면 된다는 뜻이다. 타인에게 의미 있는 것이나 그럴싸해 보이는 것들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밤하늘의 별을 두 눈을 통해 온몸으로 마주하고 있는 당신에게 의미 있는 것 말이다.
인류는 존재하는 날까지 계속해서 망각하고, 방황할 것이다. 방황을 겪은 이들이 죽고 없어지면 새로운 이들이 방황을 할 것이다. 비록 시간이 흐르며 인류의 구성원은 계속해서 바뀔 것이 분명하지만, 지구가 태양 옆에 위치한 우주의 구성원으로서 존재하는 한 인류 탄생의 근본적 진실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우주가 있었기에 인류가 있었고, 태동이라고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삭막한 공허로 가득한 우주공간에서 인류는 인류가 가진 여러 감각기관을 통해 자연을 느끼고, 삶을 마주하고, 생의 변화를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우주가 인류에게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주었으니, 이제 남은 것은 인류가 그 무수한 갈래길 속에서 가능을 현실로 만들어내는 것일 테다.
인류를 대하는 우주의 모습은 마치 자식에게 모든 것을 주는 존재, 엄마와 같다. 고대 신화에서 태초에 지구를 만든 신을 창조의 여신이자 모든 것의 어머니를 뜻하는 가이아라고 표현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어머니가 품 안에 자식을 감싸듯 우주의 비호아래 인류는 무의미에서 의미를 찾아 일생을 여행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므로 인류는 이 땅에 두 발 딛고 서게 해 준 우주에 무한한 감사를 표해야 마땅하다. 칼 세이건의 책 <코스모스>를 적극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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