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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자책봉 Jan 22. 2024

대만에서 가방 잃어버린 이야기-(1)

극적인 도착




스마트폰의 알람소리가 방 안을 가득 채우고 있던 공기를 좌우로 흔들었다. '때가 되었구나.' 침대 위에 누워있던 나는 알 수 없는 상쾌함과 함께 두 눈을 부릅 떴다. 2시간 잠을 잔 것 치고는 꽤나 컨디션이 좋은 듯했다. 기지개를 켜고 몸을 일으켜 세웠다. 시끄럽게 알람을 울려대는 기계의 화면은 지금이 새벽 4시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이상했다. '어라? 나는 분명히 1시 반에 알람을 맞춰놨었는데?'. 무언가 잘못되었다. 다음 순간 뇌리에는 한 장면이 스쳐갔다. 그것은 내가 제시간에 열심히 자기 할 일을 하던 스마트폰의 알림을 끄는 장면이었다. 잠결에. 그것도 두 번이나! 큰일이었다. 7시에 인천공항에 도착할 수 있게끔 예약했던 공항버스는 이미 출발한 지 오래였다. 나에게 남은 것은 앞으로 3시간 30분. '어쩌지?' 국제선 탑승수속을 위해서는 늦어도 7시 30분까지는 인천공항에 도착을 해야 했다. 부리나케 몸을 움직였다. 다행히 필요한 짐들은 전부 미리 싸둔 상태였고, 서둘러 외출복을 입고 여권과 지갑을 챙겼다. 머릿속에 드는 해결책은 단 한 가지였다. '어쩌긴 뭘 어째, 답은 택시다!' 나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카카오 택시의 도착지를 인천공항으로 바꾸고 택시를 찾았다. 요금 40만 원에 소요시간 3시간 30분. 좋다! 이 순간만큼은 금액 따위야 아무런 문제가 아니었다.


'띵~'. 1층에 도착함과 동시에 택시가 잡혔다. 곧바로 택시기사님께 전화를 걸었다. '기사님, 제가 너무 급해서 그런데 빨리 와주실 수 있으실까요?' 도착지를 보아하니 기사님도 눈치를 챈 모양이었다. '예. 제가 이 주변에서는 제일 빠릅니다'. 정말이지 나에게는 1초가 아쉬운 상황이었다. 트렁크에 빠르게 짐을 싣고 뒷좌석에 앉은 나는 다시 한번 기사님께 양해를 구했다. 그러자 기사님은 별 일 아니라는 듯 되려 나를 안심시켰다. '지금 시간은 차가 없는 시간이라 30분은 단축될낍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이소'. '고맙습니다'. 운명은 스스로 개척해 나가는 것이라 굳게 믿고 살던 나의 운명이 지금 이 순간만큼은 오로지 택시기사님에게 달려있었다. '역시, 정해진건 아무것도 없구나.' 택시가 고속도로에 올라타자, 나의 긴장도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문득 아메리카 남부 농장의 노예로 팔려가던 아프리카 원주민들이 떠올랐다. 그들과 비할 바는 아니지만, 자신의 처지를 자신이 결정짓지 못한다는 건 이런 느낌이었을까? 주체성을 잃고 타인에게 의존해야만 하는 현실에 대한 허탈감이 이런 것이었을까? 어찌 인간의 삶과 죽음의 문제를 단순히 시간이 늦고 빠르고의 문제와 비교하겠는가만, 때로는 시간의 늦음이 곧 죽음을 의미하기도 하는 작금의 시대적 배경을 감안한다면 반드시 견주지 못할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총 거리 300km에서 절반쯤 도착을 했으려나, 도착시간은 7시 2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택시에는 차량의 연식을 알려주는 엔진소리와 새벽잠을 깨우는 라디오 소리가 뒤섞여 울리고 있었다. 짧은 시간 너무 신경을 많이 쓴 탓일까, 노곤해진 나는 잠시간 정신을 잃고 깨기를 몇 번 반복했다. 7시가 되자 기사님은 졸고 있던 나를 깨웠다. 어느새 택시는 인천대교를 넘어 인천공항 터미널로 향하는 도로 위에 있었다. 그렇게 7시 10분, 나는 동료와 약속했던 시간에 인천공항 터미널에 도착할 수 있었다. 크게 내쉰 한숨에 눈물이 찔끔 나오는 걸 틀어막고는 기사님께 경의를 표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것은 본디 나의 운명이었을까, 운명의 장난이었을까. 잘 모르겠지만 일단 중요한 건 제시간에 도착을 했다는 것이지 않겠는가? 그야말로 축복이었다. '축복입니다 축복!'. 역시나 하고자 하면 안 되는 것은 없고, 못할 것도 없었다. 금전적인 손해는 꽤나 뼈아팠지만 이것은 어쨌거나 나의 실수에서 벌어진 일이니 감수하면 될 뿐. 나는 속으로 세상에 무한한 감사를 외쳐댔다. 앞으로 벌어질 또 하나의 사건을 알아채지 못한 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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