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움에 취하다
타오위안 국제공항에 들어서자 습기를 머금은 따뜻한 공기가 주위를 감쌌다. 우리나라와 묘하게 다른 바람냄새가 솔솔 느껴졌다. 비행으로 쌓인 피로를 기지개와 함께 날려 보냈다. 원래 일정대로라면 1시간이나 일찍 타오위안 공항에 도착했어야 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기상상황 악화로 인해 비행기가 연착되었고, 혹시나 해 남겨둔 시간적 여유는 사라지고 말았다. 입국수속을 마친 우리는 대만의 고속열차 HSR(High Speed Rail)을 타기 위해 서둘러 몸을 움직였다. 일단 인터넷에서 본 것처럼 트래블로그 카드를 사용해 공항에 있는 ATM기에서 돈을 인출했다. 대만은 우리나라와 달리 여섯 자리 비밀번호를 사용했다. 미리 공부한 대로 뒤에 00을 붙이니 기계는 지폐를 뱉어냈다. 주머니에 대충 욱여넣고는 택시를 잡으러 밖으로 향했다. 타오위안 공항에서 HSR역까지 가는 길은 전혀 막힘이 없었다. 짧은 순환도로를 잠깐 타는 느낌이랄까. 다행히 일부 막힘과 정체를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기차 출발시간보다 20분이나 빨리 도착할 수 있었다. 아마 이건 우리가 탔던 택시 기사님이 모든 차선의 차를 앞질러 나가는 능력을 가졌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지 않았을까 싶다. 이쯤 되면, 사실 이번 대만 출장과 나의 관계에는 택시라는 인연이 있었던 것 같았다. 인연이란 그렇지 않나. 서로 인연인지 모르고 지내다가 계속해서 겹치는 상황에 서로가 인연인 것을 알게 되는 그런 것 말이다. 끄응.
대만 HSR 열차를 이용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었다. HSR 공식 홈페이지(어플)로 직접 예매를 하거나, 대행사를 통해 예매를 하거나. 그중 우리는 할인율이 더 좋은 클룩(Klook) 어플을 활용하여 예매를 했는데, 이렇게 할 경우 예매한 표를 창구에서 현장 발권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하지만 창구 직원에게 예약내역이 담긴 스마트폰과 여권을 건네는 것으로 쉽게 발권이 가능한 걸 보니, 왜 클룩을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고 평점이 좋은지 이해할 수 있었다. 창구의 오른쪽에는 편의점이 있었다. 기내식을 먹은 터라 배가 많이 고픈 상태는 아니었지만 그냥 지나치기는 아쉬웠다. 어차피 비행기 연착으로 점심시간도 빼앗겼겠다,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서라도 무어라도 먹어야 할 것 같았다. 특이하게도 편의점에는 꽤 다양한 종류의 도시락이 있었다. 우리나라 편의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혜자 선생님이나 백 선생님 도시락은 아니고,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초밥, 주먹밥, 샌드위치 도시락이었다. 기차역보다는 학생이 많은 학교 근처에 도시락을 많이 비치해 두는 우리나라 편의점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검색해 보니 대만 지하철인 MRT에서는 취식이 불가능하지만, HSR에서는 취식이 가능해서 많은 사람들이 도시락을 구입한다고 했다. 나는 초밥 도시락을, 동료는 샌드위치를 골랐다. 초밥 생선 위에는 독특하게도 불그스름한 연어알인 척하는 칠리소스가 발려있었다. 그렇다. 영 입맛에 맞지 않았다. 앞으로 초밥에는 간장만 살짝 찍어서 먹는 걸로.
전 역인 타이베이역에서 출발한 HSR이 우리가 서있는 타오위안역으로 들어왔다. 매끈하게 도장이 잘 된 하얀색 몸체에 주황색으로 포인트를 준 HSR을 처음 본 소감은 그야말로 놀라웠다. 서울 역삼동에서 시험을 치르던 큰 누나를 따라 엄마와 같이 처음으로 KTX를 탔던 초등학교 3학년이 느꼈던 감정에는 못 미치겠지만, 확실한 건 여태껏 타 본 기차 중에는 가장 좋았다. 멀끔한 외관, 쾌적한 실내, 넓은 좌석, 그리고 무엇보다 기차 안은 무척이나 조용했는데, 정말이지 대만은 확실히 중국과는 다르다는 것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매고 있던 검은색 백팩을 좌석 위 선반에 올려놓고 자리에 앉자 긴장이 슬슬 풀렸다. 몸과 마음이 가벼워지는 느낌이랄까. 아마도 사실상 기차에 탑승한 것만으로도 목적지에 도착한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 비록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대만에 왔지만 낯선 땅에 발을 디딘 새로움은 우리를 상기시키기에 충분했다. 덕분에 우리는 목적지인 타이중으로 가는 내내 입을 열어 놓고는 여행의 목적은 온데간데없이, 우리는 각자의 소감을 이야기하느라 바빴다. 여행을 떠나는 이유에는 수 만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만약 그 이유에 단 하나의 귀결점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 여행을 하면서 새로움을 느끼기 위해서일 것이다. 새로움은 변함없는 일상의 지루함에 잠들어있는 세포를 깨워 활력을 불어넣어 주지 않던가. 또한 그것으로부터 우리는 진정한 자신을 발견할 수도 있다. '어? 나 이런 거 좋아하네?'. '어? 나 대만 좋아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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