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괜찮다고, 괜찮아
벌써 1분기가 지나 2분기가 되었다. 병원은 주기적으로 방문하였으나,
벚꽃이 피고 푸르른 봄이 올 때까지 계절감각이 둔해질정도로 무기력이 심해졌었다.
가끔 달력을 보면 내가 겨울잠을 잤었나 싶기도하다. 분명 2월까지 일을 했고, 글도 쓰고, 이래저래 한 일이 많았는데도, 3월달에 찾아온 무기력이 너무 여파가 심해 시간낭비를 하고있는 걸 알면서도 침대에서 벗어나질 못했었다. 2월까지 재직했던 직장의 계약기간이 끝나서 전공을 해서 좋아서 하는 일이지만 여러 직장을 거치는동안 일하는 업계에 회의감이 온건지 인간관계에 회의감이 온건지 구분을 할 수가 없어서 일이든 대인관계든 돈이든 모든 부정적인 상황에서 탈피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냥 3월을 도피하듯이 보냈었다.
그냥 반려견과 산책하고 쉬고 먹고싶으면 뭘 먹고, 자고 본능적으로만 살았던 것 같다. 반려견에 대한 책임감마저 없었으면 외출도 안하고 살았을 것 같다. (그나마 그기간에 외출하고 산책은 빼먹지않고 꾸준히 나가게해준 내 반려견에게 새삼 고맙다.) 여튼 이런 생활을 지내다보니 당연히 청결부분은 박살이 나버렸고, 시간개념은 갖다버리고 밤낮이 바뀌고 하루에 20시간을 잔 적도 종종있었다. 무기력이 심해졌을때는 병원에 가서 할 얘기도 없어서 어떤지 모르겠다. 솔직히 잠만자고싶다. 그냥 내가 뭘위해, 뭘하고자 사는 지 잘 모르겠다. 그런 얘기를 많이했었다. 너무 깊은 우울은 아닌데 또 마냥 살고싶다 생각은 안드는 그런 우울에서 허우적거리는 시간을 보내며, 대인관계도 연락을 내가 꺼리게 되어 정말 고립감이 들었던 그런 1분기를 보냈다.
그러면서 친구들도 만나고 이래저래 얘기를 하다가 내나이쯤 이래저래 사람들이 많이 방황하구나 싶었었다.
실제로 내 상황도 지금 일하는 직종을 계속 하는 게 맞는지, 전환점을 틀어 다른 도전을 하는게 맞는지 그런 고민을 많이 할 쯤이어서 생각이 좀 깊어졌었다. 그러다보니 현실적인 문제도 생각하고, 앞으로 정말 어떻게 장기적으로 살아가야할지 인생의 기로도 생각을 해보고, 내가 과거에 왜 연연해하는지, 왜 아직도 좋은기억이든 나쁜기억이든 예전에서 못벗어나는지, 내가 지금당장 처한 현실은 어떤지, 정말 내가 좋아서 하고있는일이 맞는지, 이것으로 내가 확실한 능력이 있는지, 생각만하다보니 겁이 많아서 재다보니 실행을 제대로 안하는 나자신에 대해서도 바라보고 여러 관점에서 바라보았다. 솔직히 내자신을 똑바로 쳐다보는게 무서웠다. 바닥인게 보이고, 능력은 없으면서 열등감덩어리고, 항상 생각만 하고 그런 모습이 내가봐도 싫어서 외면을 많이해왔었는데, 다방면에서 쳐다보지않으면 장기적으로 개선되지가 않겠구나 싶었었다. 그래서 그무렵부터 사소하게 일기를 썼다. 그날이 하루종일 잔 날이든, 돌아다니면서 쉬는 날이었든 상관없이 어떠한 감정을 느꼈는지, 생각을 하는지에 대해서 기록을 했다. 쓰고보니 가관이었다. 정~말 불평, 불만, 짜증 내가봐도 싫었다.
모아서 읽다보니 직관적으로 내 모습이 보였다. 내가 사람을 굉장히 무서워하는 것과, 새로운 도전을 너무 무서워하는 것, 내가 익숙한일이 아니면 다른 일은 도전도 못해보는 것이 확실히 보였다. 그래서 내 일과 관련도 없는 일을 신청했다. 제일 빠르게 도전할 수 있는 단기 알바들을 신청했다. 쿠팡, 배민B마트, 당근에 올라오는 물량재고 및 정리 등의 누구나 할 수 있으며 일단 안해본직종인만큼 도전하기에 딱이라 생각이들었다.
가기전까지 가지말까, 아프다고 취소할까, 저거한다고 뭐 얼마나 내가 달라진다고, 내 일에 관련된 직무 관련한 외주를 받는게 이시간에 더 효율적이지 않나? 이런생각을 했지만 그냥 일단 가보기라도 하자 싶어서 출근을 했고 일을 했다. 당연히 단기알바고, 어느 일이든 안힘든 것 없지만 안해본 일이라 단순노동이어도 힘들었다. 근데 내가 다른 일을 할 수 있구나, 막상 해보니 별거아니네 라는 생각이 들어서 내심 좀 뿌듯했었다.
다음날 일어나서 집을 둘러보니 정리할게 쌓여있어서 설거지와 분리수거를 하러 나가고, 빨래도 돌리고 반려견과 약속한시간에 산책을 나갔다가 돌아오니 땀이나서 샤워를 했다. 그러고 퇴사하고 잘 안건드리던 컴퓨터 앞에 일단 앉아 유튜브로 노래를 틀어놓고 책을 가볍게 읽었다. 이상하게 그날은 뭔가 감사했다.
활짝 핀 벚꽃 탓인지, 산책하면서 내 반려견이 예쁨을 많이 받아서인지, 커피가 맛이 좋았던건지 그냥 일상스러운게 고마웠다. 돈도 별로 없고, 해결해야할 게 산더미고, 직장도 없지만 그래도 낮에 햇빛을 보는 것이, 내가 반려견과 같이 붙어있는 것이, 커피마시며 책을 읽을 수 있는 것이, 집에 가만히 있을 수있는것이 그냥 그것들이 감사했다. 그래서 짤막한 감사일기를 썼다. 그렇게 사소롭게 감사일기를 쓰는 며칠을 보내다가 일에 대해서 전환점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프리랜서 위주로 구직지원들을 넣고, 여러 외주사이트에 게시글을 올려두었다. 사실 아직 이렇다 할 생산적인 변화가 있지 않지만, 전보다는 나아진 모습에 어느정도 감사한다.
죽음에 대한 생각이 아예안나진 않지만 그냥 가끔 생각나는 것에, 가끔 우울함이 심해져도 너무 깊게빠져들지 않음에, 무기력하지 않음에, 날이 좋아 반려견이랑 산책하기 좋은 날씨에, 내 반려견이 건강함에, 일에 대해 강박관념이 있어 이 일이 아니면 나는 의미없다 생각했었는데 반려견으로인해 새로운 전환점이 생긴 것에, 편안한 집에서 쉴 수 있음에, 내가 읽고싶은 책과 영상들을 찾아볼 수 있음에, 서로 바빠 연락을 자주못하는 고향친구가 가끔 내생각이 난다며 이상하고 귀여운 소품을 찍어보내 내생각을 해주는 것에 그냥 사소한것에 어느정도 감사하다고 느끼고 있다. 사실 아직도 무기력이 너무나 심하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려면 수십수백번을 고민하다가 실행하고, 무기력함이 또 찾아오면 안그럴 거라는 보장이 없지만. 그냥 감사함을 느끼고, 새로운 일에 도전할 수 있구나 같은 생각이 드는 것부터 하나의 변화라고 보아서 지난주 상담예약이 잡혀있던 날 선생님께 이런얘기를 했었는데 좋은변화가 보이는 것 같아 정말 다행이라고 하셨다.
가끔 내가 이런 글을 써도 되는 걸까 혹은 목적성에 맞는 글일까 싶은데, 다른 환우분들이 이걸로 그냥 공감만 하더라도 만족하니까 꾸준히 그냥 써보고자 한다. 정말 푹쉬어도 괜찮고, 우울에 잠겨있어도 괜찮다고, 그런생각 하는 건 전혀 잘못된 거 아니라고, 그러다가 괜찮고 싶은 날엔 괜찮은거고, 아닌 날엔 아니어도 상관없다. 오늘 변화가 없어도, 내일 변화가 없어도, 그냥 괜찮다. 그냥 그대로 있어도 정말 별 일 없고, 괜찮다고 말해주고싶다. 내가 가장 듣고싶었던 말들로 끝맺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