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떠난 여행
예준이와 예빈이는 미국에서 태어나 자랐어요.
엄마가 일을 하느라 늘 바빴기 때문에, 두 아이는 할머니의 손에서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랐지요. 그래서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는 한국말을 더 잘하는 아이들이 되었답니다.
사람들은 우리 아이들을 처음 보면
꼭 이렇게 물어보곤 했어요.
“한국에서 온 지 얼마 안 되었나요?”
그만큼 우리 아이들의 모습과 말씨가 한국 아이들과
참 많이 닮아 있었던 거예요.
그런데 예준이가 유치원에 들어갈 무렵,
코로나가 세상에 퍼졌어요.
그래서 다른 아이들처럼 학교에서 뛰어놀지 못하고 집에서 줌으로 수업을 받게 되었지요.
배우는 영어 읽기와 쓰기가 쉽지 않았고, 화면 너머로 만나는 친구들은 금방 사라져 버려 친구도 없었어요.
그렇게 시간이 흘러 초등학교 1학년이 되었을 때,
예준이는 용감하게 학교에 갔답니다.
하지만 나중에야 알게 되었어요.
예준이가 5학년이 되어서야 털어놓았던 이야기.
“엄마, 나 1학년 때는 친구가 한 명도 없었어.
점심시간마다 혼자 놀았어.
아무도 나한테 말을 걸지 않아서, 나는 놀이터에서 달리기를 하며 혼자 뛰어다녔어.
어느 날은 너무 슬퍼서 울기도 했어.”
저는 그 말을 덤덤하게 하는 예준이를 보며
마음이 먹먹해졌어요.
아, 그래서 예준이가 지금 이렇게 친구들을
소중히 여기는구나.
혼자 있는 아이들을 보면 꼭 챙겨주는 것도, 바로 그때의 외로움을 기억하기 때문이겠구나 싶었지요.
실제로 3학년 때 일본에서 전학 온 유이와 레이라는
쌍둥이 자매가 있었어요.
영어가 서툰 아이들을 위해 예준이는 일본어를 배우고,
휴대폰에 번역기도 깔아 도와주었다고 했지요.
아무도 손 내밀어 주지 않던 그 시절의 자기 모습을
떠올렸기 때문일 거예요.
이번 학기에는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이 모두
다른 반이 되었어요.
예준이는 “이번 반편성 망했어” 하고 투덜거렸지만,
이내 말했어요.
“그래도 유이가 내 반이야. 내가 유이를 잘 챙겨야겠어.”
그 말을 들으며 저는 속으로 생각했어요.
‘아, 내 아이가 참 많이 컸구나.’
어제 저녁에도 우리 가족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어요.
그때 예빈이가 말했어요.
“엄마, 그거 알아? 예준이가 1학년 처음 갔을 때
친구가 한 명도 없었대.
한 달 동안 혼자 놀았대.”
말을 이어가는 예빈이의 두 눈에는 금세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습니다.
“엄마, 너무 슬퍼. 그런데 또 너무 웃겨.
예준이가 혼자 해맑게 놀이터에서 뛰어다니는
모습이 막 상상돼서…”
저도 그만 눈물이 고이고 말았지요.
옆에 있던 삼촌이 예빈이에게 물었어요.
“너 왜 울어? 너도 옛날 생각나서 그러는 거야? 너도 1학년 때 친구 없었지?”
예빈이는 곧장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어요.
“아니에요, 저 친구 있었어요!”
그러자 두 남매는 티격태격하며 장난을 치기 시작했답니다.
저는 그 모습을 보며 다시 한번 마음속으로 감사했어요.
예준이는 힘든 시기를 꿋꿋이 견뎌내고
학교를 다녀줘서 고맙고,
그 시절의 동생을 떠올리며 눈물 지어준
누나 예빈이도 참 고마웠습니다.
아이들이 엄마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잘 자라고 있음을 느끼며,
오늘도 마음 깊이 감사의 기도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