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준이의 단도직입

아이들과 떠난 여행

by 예빈 예준 엄마

예준이는 어릴 때부터 특별한 친구와 함께 지냈습니다. 그 친구는 바로 보들보들하고 가볍고 포근한 초록색 이불, 가족들은 그것을 **‘그린 이불’**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린 이불은 언제나 예준이 곁에 있었습니다. 아기였을 때에는 침대 위에 깔아 편안히 잠을 재워 주었고, 걸음마를 시작했을 때에는 집안 곳곳을 끌고 다니는 소중한 친구가 되어 주었습니다. 마루에서 장난감을 가지고 놀 때에도, 소파 위에서 텔레비전을 볼 때에도, 낮잠을 잘 때에도 언제나 그린 이불과 함께했지요. 예준이와 그린 이불은 서로 떨어질 수 없는 한 몸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누나 예빈이는 그린 이불을 맡아 보더니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습니다.

“이상하다? 왜 이불에서 꼬릿꼬릿한 냄새가 나지?”

할머니도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며칠 전에 분명 깨끗하게 빨아 놓은 이불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유는 곧 밝혀졌습니다. 예준이가 이불 끝자락을 입에 넣고 질겅질겅 씹는 버릇이 있었던 것입니다.

“예준아, 이건 먹는 게 아니란다. 입에 넣으면 병에 걸릴 수도 있어요. 배가 아야 아야 할 수도 있단다.”

할머니는 여러 번 타일렀지만, 그 버릇은 쉽게 고쳐지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린 이불의 모서리는 실이 한 올 한 올 풀려 너덜너덜해졌습니다. 그래도 예준이는 늘 그린 이불을 꼭 끌어안고 말했습니다.

“할머니, 이거 또 꼬매 주세요…”

할머니는 잠시 고민했지만 결국 이불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예준이가 얼마나 이 이불을 사랑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할머니는 정성스럽게 다시 꼬매 주셨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예준이는 열 살이 되었습니다. 여전히 그린 이불을 꼭 끌어안고 잠드는 버릇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한겨울에는 따뜻하고 좋았지만 한여름에는 정말 큰일이었습니다. 이불이 너무 따뜻한 재질이라 땀이 비 오듯 흐를 뿐 아니라, 옆에서 자는 엄마 아빠까지 더워 숨이 막힐 정도였지요.

그래서 아빠는 가끔 장난처럼 말하곤 했습니다.

“예준아, 그린 이불이랑 이제는 헤어질 때가 된 것 같은데?”
“너 학교 간 사이에 아빠가 몰래 갖다 버릴지도 몰라~?”

물론 진심은 아니었지만, 예준이는 그 말이 들릴 때마다 이불을 꽉 끌어안았답니다.

어제, 예준이는 학교를 다녀온 뒤 정말 바쁜 하루를 보냈습니다. 엄마가 내준 숙제와 QT를 하고, 저녁에는 시카고 라켓 소년단과 배드민턴 연습까지 다녀오느라 몸도 마음도 피곤했지요.

집에 돌아와 씻고 잠자리에 들 시간이 되었을 때, 예준이는 큰 이상함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닌텐도를 하며 느긋하게 잠을 준비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엄마가 말했습니다.

“어? 오늘은 그린 이불 안 가져왔네?”

예준이는 “그냥 없이 잘까?” 하며 눈을 감았지만, 2분쯤 지났을 때 갑자기 눈을 번쩍 뜨고 앉았습니다. 그리고 진지한 표정으로 아빠를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아빠, 저… 아빠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볼 말이 있어요.”

그 말투가 너무 비장해서 엄마와 아빠는 깜짝 놀랐습니다. 미국에서 태어나 자란 아이가 어디서 이런 어른스러운 말을 배웠는지 웃음이 절로 나기도 했습니다.

아빠는 장난스럽게 눈을 크게 뜨며 대답했습니다.

“오? 그래, 말해봐. 뭘 물어보려고 그러지? 아빠도 정말 궁금한데?”

그러자 예준이는 잠시 숨을 고르고 조심스럽지만 분명한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혹시… 아빠, 내 그린 이불 가져다가 버렸어요?”

엄마와 아빠는 순간 놀라 서로를 바라보았습니다. 아빠는 황급히 손사래를 쳤습니다.

“아니야! 아빠 안 버렸어. 진짜야.”

하지만 예준이의 눈에는 벌써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기 시작했습니다.

“정말요? 진짜 버린 거 아니죠…?”

엄마는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습니다.

“여보, 정말 버린 거 아니지? 어디 있을 거야 예준아?”

“정말 아니라니까! 나 안 버렸어!” 아빠는 억울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엄마는 예준이에게 말했습니다.

“예준아, 아빠가 안 버렸대. 우선 네 방이나 누나 방에 있는지 한번 찾아보자.”

예준이는 벌떡 일어나 방으로 뛰어갔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포근한 초록빛을 품은 그린 이불을 꼭 끌어안고 다시 돌아왔습니다.

“흑… 찾았다…”

예준이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울컥했습니다. 아빠도 긴장을 풀며 웃으며 말했습니다.

“거봐, 아빠가 안 버렸지?”

엄마는 조용히 말했습니다.

“예준아, 아빠가 아니라고 말했는데도 의심하고 화낸 건 잘못이야. 사과해야 하지 않을까?”

예준이는 고개를 떨군 채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눈물을 꾹 참으며 말했습니다.

“…아빠, 의심해서 미안해요.”

아빠는 미소 지으며 예준이를 꼭 안았습니다.

“괜찮아, 예준아. 하지만 하나 꼭 기억해. 아빠는 비겁하게 너 없을 때 몰래 이불을 버리거나 하지 않아. 만약 그린 이불을 보내줘야 할 날이 온다면… 그건 네가 준비되었을 때, 네 곁에서 같이 결정할 거야. 알겠지?”

예준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그린 이불을 꼭 끌어안았습니다. 그날 밤도 이불 속은 언제나처럼 따뜻하고 포근했습니다.

아직도 예준이에게는 그린 이불이 작은 친구처럼 소중합니다.
그린 이불이 언제까지 예준이 곁에 있을지는 모르지만,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그 이불 속에는 사랑과 추억, 그리고 함께 자란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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