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ley Cyrus < Endless Summer Vacation >
변신에는 유통기한이 따른다.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이 명제에 마일리 사이러스가 내린 결론은 자극이 둔감해질 즘 가면을 바꿔 기한을 갱신하는 방식이었다. 비록 배우자에게 이혼을 요구받고, 하루아침에 산불로 집이 전소한 데다, 준비한 프로젝트가 팬데믹으로 일순간에 무산될지라도 경극은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겹친 악재를 헤쳐 나갈 타개책 역시 변신밖에 없다는 듯 더더욱 레트로에 천착하고 록의 격정성에 심취하며 새로운 페르소나인 '강인한 인조 심장(Plastic Hearts)'을 빚어내는 데 몰두할 뿐이었다.
3년 만의 복귀작 < Endless Summer Vacation >이 어딘가 이질적인 이유다. 말괄량이 팝스타, 극성 파티 중독자, 레트로 마니아. 수많은 장르 세계를 경유하며 전투적으로 수식어를 해금하던 행보와 달리 그 어떠한 스티커조차 붙이기 힘들 만큼 매끈하고 평범한 본연 자체의 팝을 들고나왔다. 완전한 '마일리 사이러스' 파업이다. 기약 없이 불현듯 시작된 여름휴가, 이제 손끝에서 입력되는 목적지는 불모의 미개척지가 아닌 지친 마음에 평안을 가져다줄 한적한 휴양지다.
해리 스타일스의 < Harry's House >의 공동 작업자 키드 하푼과 타일러 존슨을 초빙해 '해방'에 대한 단서를 구했다. < Bangerz >의 오랜 조력자 마이크 윌과 현 애인인 음악가 막스 모란도 같은 주변인의 도움도 마다하지 않았다. 친근한 이들과 떠나는 로드트립. 덤덤한 감정선을 고수하는 'Flowers'에서 필요한 짐만을 간소하게 싸는 모습이, 잔향의 뿌연 안개 사이 강직한 드럼에 의지하며 전진하는 'Jaded'에서 눈물을 겨우 참으며 문을 박차고 나가는 광경이 그려진다. 따스하고 정적인 작풍 아래 낙관적 태도를 암시하는 'Rose Colored Lenses'는 앨범의 주제와 가장 밀접하게 닿아있다. 희망을 얻은 주인공이 고속도로로 접어드는 오프닝 장면이 절로 떠오른다.
'오전'과 '오후'를 떠올리며 만들었다는 인터뷰 발언처럼, 초반부는 정돈된 사운드를 중심으로 관계에 대한 회고와 자립 의지를 설파하는 작업이다. 이내 그라임스를 닮은 전자적 색채를 포용하며 흥을 돋우는 중간 지점의 'Handstand'를 기점으로 작품은 만취 상태의 캠프파이어 현장으로 바뀐다. 몽롱한 신시사이저가 사방에서 흘러나오고 적나라한 비유와 애정 표현이 스스럼없이 오간다. 애시드 하우스를 적극 표방한 댄스 넘버 'River'와 역동적인 멜로디 속 범성애 시그널을 교묘히 흘리는 'Violet Chemistry'는 회한을 흘려보내고 오롯이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고 즐기겠다는 의지다.
그럼에도 앞서 말한 그 이질감에는 무언가 다른 내막이 자리 잡는다. 겉보기에는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을 순수한 힐링 테라피처럼 보이지만, 문득 이 '내려놓음'조차 설계가 아닐까 싶을 만큼 인공적으로 주입된 연출과 서사가 원인이다. 차라리 빠르게 분위기를 반전하며 장을 나누는 구간은 이해 가능한 범주다. 다만 자기애와 인생 예찬을 통해 해방을 만끽하던 와중 난데없이 목청을 긁으며 분노하고('Muddy Feet') 혹시 내가 길을 잃고 좌초된 건지 의구하다('Island') 마지막으로 강인한 어머니처럼 되고 싶다는 은은한 고백을 표하며('Wonder Woman') 급하게 당위를 부여하려는 일련의 전개는 생경함을 낳는다.
결국 < Endless Summer Vacation >는 명쾌한 쉼표보다도 느슨하게 이어진 물결표에 가깝다. 모든 구속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이 쌓아 올린 면면 중 그 어디에도 속하기를 거부했지만, 동시에 관성을 버리지 못한 탓에 이 또한 무수한 가면의 일부로 다가오고 만다. 건재한 퍼포먼스부터 곡의 평균 퀄리티도 대체로 우수하기에 미련이 남는다. 단순 캐릭터뿐만 아니라 설득력 있는 메시지와 완성도라는 부담에서도 과감히 탈피할 수 있는, 해독을 거친 < Bangerz >를 기대한다 해도 무리는 아니었을 것이다. 지금의 마일리는 보편과 평범에 안주해도 충분히 매력적인 인물이지 않나.
6/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