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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칙칙폭폭 Aug 26. 2021

고양이에게 그런 건 중요치 않아

라이언 갠더(Ryan Gander) <변화율>전시 리뷰

코오롱에서 운영하는 문화예술 공간 Space K에서 영국 미술가 라이언 갠더(Ryan Gander)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2021.06.24- 2020.07.17)


내가 이 작가에 대해서 알게 된 건 2017년 현대갤러리에서 전시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 초콜릿이 한 꺼풀 코팅된 아이스크림인 매그넘이 바닥에 떨어져 있는 작업을 전시했고, 나는 그것이 마치 내가 아이스크림을 먹다 떨어뜨린 양 사진을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렸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몇 명이 그 글에 낚여서 즐거웠고, 해시태그로 #ryangander라고 했더니, 작가가 좋아요를 누르는 바람에 내 인상에 오래 기억에 남았다.

2017년에 보았던 라이언 갠더의 작품. ‘앗… 나의 매그넘!’으로 몇 명 속였다.

이번엔 어떤 재밌는 작업을 전시할까 싶어 가보았더니 전시장 안에  고양이들이 곳곳에 누워있다. 2층에 상영되는 작가의 인터뷰에선 작가가 고양이에 대해 제법 진지하게 '고양이는 정치적 동물이다'라고 얘기하는 것도 진지함에 유머가 섞인 것이 라이언 갠더스럽다. 고양이들이 누워있는 곳을 자세히 보면, 그곳엔 석고 좌대가 함께한다. 석고 좌대들은 조각사에 있어 굵직굵직한 역할을  현대 예술가들의 결과물인데 고양이들은  알쏘냐 편히 쉬고 계신다. (물론 진짜 고양이는 아닙니다)고양이의 입장에서 보면 그게 뭐가 중요하겠나. 사실 조각사나 현대미술을 모르는 사람이 봐도 마찬가지다.(한국 근현대 미술사 전공인 나도 마찬가지고...)


<따듯하니 노곤하다, 또는 불법 거주자들>(2009)
<현존의 여파 또는 불법 거주자들>
<제목 사이에 혼선 초래 또는 불법 거주자들>

그렇다고 이 작품이 '나를 이해하기 위해선 현대 조각사를 다 공부하고 오시오!'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고양이의 입장처럼 관람객들에게 예술작품을 저마다의 방식으로 즐기라는 것이다. 작가가 인터뷰에서도 '축구는 모두가 쉽게 즐길 수 있는데 반해 예술을 그렇지 않다'며, 자신은 그 점이 싫다고 말한다. 누군가 '예술은 모두를 위해 열려 있어야 하지만 모두를 위한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고 한다. 라이언 갠더는 모두를 위할 순 없겠지만 한 명이라도 더 쉽게 즐길 수 있기를 바라는 듯하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의 작품은 기호학적 관심에서 출발한다. 앞서 좌대는 현대 예술가 누구의 작품이고, 그 작품은 기존의 조각의 역사와 상징 등을 바탕으로 혁신적인 메시지를 던져 나름의 의미를 갖게 된 작품이다. 즉, 미술작품의 기호적인 측면에 주목한 것이다. 그리고 기호에는 관습적 기호(conventional sign)와 자연적 기호(natural sign)로 나눌 수 있는데, 관습적 기호는 말 그대로, 인간이 소통을 위해 약속으로/의도적으로 기호에 상징을 입힌 것이고, 자연적 기호는 의도는 없지만 자연스럽게 무언가를 뜻하게 되는 것이다. 앞서 미술품인 좌대는 관습적 기호 그리고 고양이는 자연적 기호가 되는데, 이 둘이 라이언 갠더의 작품에서 교차점을 이루면서 관객이 나름의 창의성을 펼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든다. (앗, 나의 매그넘! 처럼..)

이번에도 아이스크림이 있다…!
자매품 ‘앗! 내 풍선…!’도 있습니다.


모든 이가 예술을 즐길 수 있었으면 하는 라이언 갠더의 바람의 바탕에는 모든 이에게 창의성이 있다는 믿음이 있다. 그는 아침에 옷을 입는 것, 아침 식사를 하는 것(아마도 식단을 짜는 것? 혹은 예쁘게 데코레이션을 해서 먹는 것?), 차에 스티커를 붙이는 것을 예로 들며 모두에게 창의성이 있다고 말한다. 모두가 저마다의 창의성으로 예술작품(기호)을 즐긴다면 전시를 잘 즐긴 게 아닐까.



글에 언급한 내용은 전시 팸플릿, 전시 2층에 상영되는 작가의 인터뷰를 참고로 작성했습니다.


작가가 아주 알기 쉽게 차근차근 자신의 이론을 잘 설명해주기 때문에 작가의 의도나 전시에 대한 깊은 이해를 원하시는 분들은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작품에 고양이가 많이 등장하는 이유나 제목을 짓는 방법 등 흥미로운 내용을 말합니다)


각 작품마다 QR코드로 설명이 제공되어 들어봐도 좋습니다


옥상 작품도 놓치지 말고 즐기세요 :) (외부 계단으로 올라가야 해서 전 까먹을 뻔했거든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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