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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칙칙폭폭 Feb 04. 2023

다큐멘터리 3일: 뮤지컬배우편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1열에서 보기

난 표를 잘 줍는다. 표를 줍는 건 당연하게도 능력으로 되지 않는다. 운과 성실함만 있다면 된다. 그런데 그날 따라 운이 많이 따랐나 보다, 1열 중앙블럭을 줍다니

내가 주운 1열 25번

지난 글에서도 썼지만, 그 주운 1열이 커튼콜데이에 당첨된 걸 보면… 연초인데 올해 운세를 다 쓴 게 아닌가 싶다.


다른 뮤지컬들도 1열에서 본 적이 있지만… <웨스트사이드스토리>를 공연하는 충무아트센터는 객석과 무대가 가깝고, 1열 눈높이가 배우들 신발에 맞는다.


이 뮤지컬은 화려한 군무가 많은 데다가, 무대 전체를 다 사용하며 가장 유명한 넘버인 “Tonight”은 2층 발코니에서 부른다. 심지어는 건물이 가까이 다가온다. 그 말인즉슨, 내 목은 꺾인다는 이야기이다.


인어공주가 우르술라에게 목소리와 인간다리를 바꾸듯, 내 목을 최애배우와 닿을 듯 가까운 거리에서 보는 즐거움과 바꾸는 것이다. 하지만 목 따위가 대수겠냐, 본 티켓팅에서도 구하지 못하는 1열을.


충무아트센터 웨스트사이드스토리 1열의 시야

그런데 또 다른 난관이 있다. 배우가 누우면 보이지 않는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길이 없다. 2열부터는 잘리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래도 좀처럼 구하기 힘든 자리니 망설일 이유는 없었다.


여러 번의 관극으로 극의 내용을 다 아는 사람들이 주로 가는 느낌이었는데, 가까이서 보는 만큼 뮤지컬이 극으로 다가오기보다 다큐멘터리 3일, 뮤지컬배우편을 보는 듯했다. 격렬한 춤… 대열을 만들기 위해 바삐 움직이는 팔과 다리들. 마이크에 잡히지 않는 앙상블들의 디테일한 연기소리들.


하지만 디테일한 소리들이, 대사를 쉐도잉 할 정도로 많이 본 사람에겐 새로운 정보로 흥미로울지라도, 큰 스토리라인을 따라가는 데에는 조금 방해요소로 느껴질지 모른다. 소품 주크박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소리가 과도하게 크게 나와서 오늘 공연의 실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가지 않을 이유는 없겠지만, 단 한 번의 관극이라면, 조금 물러나서 보는 것이 더 좋다. 특히나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특징인 군무를 잘 보기 위해선 말이다. 무대 양 쪽 끝에서 끝을 모두 사용하는 군무는 적당히 뒤라면 눈알만 굴려가며 볼 수 있겠지만 앞이라면 고개를 휙휙, 게다가 조금이라도 타이밍을 놓치면 어디를 봐야 할지 모르다가 놓칠지 모른다.


그래도 오페라글라스 없이 배우들을 볼 수 있고, 모두가 원하는 앞자리의 유혹을 무시하기란 쉽지 않다.

바로 이렇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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