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렐조카쥬 발레 <백조의 호수> 리뷰
나는 주로 음악을 “듣는” 공연을 봤다. 주변에는 현대무용, 발레 등을 즐기는 지인들이 있는데, 내가 모르는 예술을 아는 그들이 문득 멋져 보였다. 그래서 그 매력을 알고자 발레 공연을 보기도 하고, 몸을 사용하는 공연을 연달아 보는 중이다.
처음 발레를 보았을 때 크게 다가왔던 순간은 음악이 없는 순간에 바닥을 때리는 토슈즈 소리였다. 내가 보던 공연들은 음악 혹은 대사가 없는 순간이 거의 없었다. 둘 중 하나는 있었다. 그러나 언어 대신 몸으로 표현하는 공연들에는 이런 순간들이 있었는데 유독 생소하게 느껴졌다.
자리는 OP1열을 예매했다. 한이 있어서다. 내가 보고 싶어 하는 뮤지컬 배우의 극을 그렇게나 회전문을 돌아도 1열은 잘 보지 못한다. 해도 해도 늘지 않는 티켓팅 실력은 한탄스러울 뿐이다. 게다가 최근엔 “아님 말고”식의 티켓팅 암표 거래 혹은 대리티켓팅 등으로 더욱 힘겨운 상황이다. 그런데 어떻게 이 공연엔 저 자리가 딱 있더라. 전체적인 대형이라거나, 얼굴을 꼭 보지 않아도 되니 먼 자리에 앉아도 중앙즈음에서 보는 것도 나쁘지 않았겠지만 이럴 때라도 앉아보자 싶어서 예매했다.
그런데 오데뜨를 소화하는 배우가 너무 예뻐서 목이 부러지는 한이 있어도 1열에 앉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몸만 쓴다고 생각하면 오산이었던 것 같다. 몸을 쓰는 공연은 감정을 절제하고 몸의 움직임으로 감정을 표현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얼굴도 몸의 표정이고, 이 극은 특히 무용수들의 기합소리, 인사, 연기 등등의 소리가 포함되어 더욱 생동감 있었다. 중간에 “안냐세요”라고 귀엽게 인사하며 등장한 무용수도 있었다.
공연은 <백조의 호수>를 프렐조카쥬 버전으로 선보인다. 그렇지만 나는 처음이라 사실 원조 클래식 공연에선 어떻게 진행되는지 잘 모른다. 제공되는 프로그램북을 통해 보면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 음악을 90% 이용하고 나머지 10%는 다른 음악을 이용했다고 한다.
백조의 호수 스토리는 현대판으로 각색하여, 환경운동가 오데뜨와 도시개발건설업자인 지그프리트네 부모님과 그를 돕는 흑마법사 로트바르트가 등장한다. 오데뜨를 보고 반한 지그프리트에게 오데뜨와 닮은 로트바르크 딸이 등장해 유혹하고, 이 유혹에 넘어간 지그프리트 때문에 오데뜨는 죽어간다. 백조의 호수 이야기는 왠지 모르게 부분 부분이 마치 어디선가 본 듯한 전개들이다. 각색된 버전에서는 유혹에 넘어간 부분에서 개발로 인해 자연이 파괴되고 백조들이 죽고, 이 중 하나인 오데뜨도 죽게된다는 것이다.
프렐조카쥬 버전의 <백조의 호수>는 지크프리트의 부모님이 원작보다 도드라지게 등장한다. 아들에게 우호적이고 헌신적인 어머니와 도시개발 계획에 대한 의견충돌로 인해 적대적인 아버지가 안무상으로 충분히 표현된다. 가까이 본 덕분에 오데뜨만큼 무대에서 춤을 선보이는 지크프리트의 어머니 역할의 무용수는 매 씬마다 다른 역할로 끊임없이 안무를 소화해 냈는데 그저 감탄만 나올 뿐이었다.
가장 최근에 지어진 공연장인 만큼 내가 본 공연들에서는 최신의 기술력을 자랑하는 듯한 멋진 무대를 보여주었는데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무용수 앞에 뒤가 투영되는 매쉬 막을 쳐서 거기 빔을 쏘아 마법의 효과라던지, 분위기를 시각화시켜준다. 다양한 무대 연출은 뒤편의 영상을 통해서도 이루어진다.
이야기가 고조되어 가며 백조가 사는 자연에 공장과 건물이 들어서며 환경이 파괴되어 가는 장면에서는 백조들의 군무와 더불어 뒤편의 배경이 서사를 확실하게 전달해 준다.
그렇지만 가장 좋았던 것은 미니멀한 화면에 무용수들에게로 떨어지는 조명들이었다. 일상에서는 좀처럼 써보지 않을 근육으로 공간들을 찌르기도 하고 감싸기도 하며 표현하는데, 이 모습을 잘 받쳐줄 조명이면 연출은 더할 나위 없이 충분하다.
가장 인상이 남는 장면은 백조들의 군무와 오데뜨와 지크프리트가 서로의 애정을 확인하는 부분이다. 중간중간 현대적인 비트와 안무로 구성되어 있지만, 백조의 군무에서는 (보지 않았어도) 클래식이라는 느낌(알 수 없음)이 들었다. 그리고 인간의 모습으로 백조를 모사하는데 너무 그 느낌이 잘 살아나서 놀라웠다.
다음에 볼 발레공연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