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자아 물주기

일한지 10년, 되돌아 보는 나

by Nara Days

올 해로 일한지 10년이 되었다.


나는 나의 여러 자아 중, 일하는 자아를 매우 좋아하는 편이다. 기본적으로 일 자체를 좋아하는 편이기도 하고, 사람들과 일을 맞춰 나가며 팀플레잉을 하는 것도 적성에 잘 맞는다. 팀 매니징은 5년 째, 진로를 바꾼지는 2년 째인데 여전히 모든 것이 신기하고 재미있고, 매일 마주하는 사람들과 일을 통해 조금씩 성장해 나가는 것도 여전히 즐겁다.


내가 하나 자부할 수 있는 것은, 나와 일을 한 상사, 파트너사 혹은 클라이언트 중 많은 분들이 나중에 스카웃 차 연락을 많이 주는 편이다. 사람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누군가의 기억 속에 내가 쓸모 있는 사람으로 각인 되어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이다. "나라랑 일할 때가 내 인생 제일 즐거운 시절이었어" 등의 식의 피드백을 듣는 것은 언제나 짜릿하다. 외부 칭찬에 기대지 않으려고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부끄럽지만 내가 롤모델이라며 나를 서포트 해주는 후배들의 이런저런 질문을 듣는 것도 감개무량하다.


어젯밤은 또 그런 밤이었다. 역시나 커리어에 욕심이 없지 않은 후배가, 나에게 이런저런 팁을 물어보며 어떻게 10년을 보냈는지에 대해 물어보았다. 사실 "라떼는~" 하며 나의 과거의 경험을 토대로 이야기 하기에 시대는 너무 빠르게 변하고, 그러한 질문을 하는 후배 마저 나보다 뛰어난 면이 너무 많은 친구인지라 이야기를 하긴 조심스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스펙이나 커리어 패스를 따지자면 사회에는 나보다 뛰어난 사람이 너무 많지만, 평범한 인문계를 졸업하고 또 역시 평범한 회사를 다니면서 적어도 내가 있는 자리에서 인정을 받고 "쓸모있는 일꾼"으로 기억에 남는다는 것 만으로도 나에게는 충분히 감사하고 행복한 일인지라 별 것 아닌 팁들을 어제 나누었다.


1. 성장욕구


나는 성장욕구가 강한 편이다. 성장욕구에도 나의 내면에 집중하는 건강한 성장욕구가 있고, 타인과 비교를 하고 경쟁심이 발동 되는 건강하지 않은 인정욕구 토대의 성장욕구가 있는데, 내 성장욕구는 전자인 것 같다. 나는 내 발에 걸린 돌부리나, 내 볼을 스치는 바람에서도 배우는게 많은 편이다. 내가 마주하는 모든 사람들 - 그게 가령 일터에서 만난 사람들이 아닐지라도 - 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려고 한다.


사회초년생 때 나는 마주치는 상사, 기자, 파트너사분들이 하나같이 너무 재미있고 매력적으로 느껴져 매일밤 일기장에 각각의 사람으로부터 배울 점을 적었던 기억이난다. 또한, 크고 작게 마주한 상황들을 돌이켜보며 내가 그 연차라면, 혹은 그 사람이었다면 어떤 것을 어떻게 다르게 행동했을지에 대해 정리했던 기억이 난다.


나는 나의 일하는 자아에 매일의 경험을 토대로 양분과 물을 주지만, 그 외적으로도 물 주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다. 그래서 업무 관련한 공부도 띄엄띄엄 하고, 주말 아침마다 업계 사람들과 하는 스터디에도 갔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사실 어렸을 때도 학원 다니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는데 커서 뭐 얼마나 더 성실히 다닐까. 패스트캠*스 등 다양한 플랫폼에 적잖이 기부를 했다고 생각을 한다. 하지만 그런 클래스들을 가는 것은 단순 배우는 것 뿐만 아니라 내가 잘 모르는 업계의 다른 사람들을 만나게 해주는 좋은 곳들이기도 하다.


또한, 적은 돈으로 나의 시간을 가장 값지게 보내는 느낌이 들게 하는 (!) 취미인 독서를 꾸준히 하는 것도, 알음알음 나의 저변을 확대 해 주는데 기여를 하는 것 같다. 요즘은 북클럽부터 시작해서, 독서를 많이 하고 또 그런 독후감을 일목요연하고 멋있게 쓰시는 분들이 많아 그 옆에서 "나 책 좀 읽는다" 란 소리는 못하지만, 적어도 독서의 기회는 누구에게나 열려있고, 손 쉽게 만들어나갈 수 있는 취미이며,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나의 삶과 시야에 은근 많은 변화를 가지고 오는 좋은 행위라고 생각을 한다. 개인적으로 이동하는 상황에서는 오디오북도 많이 듣는 편이다. 물론 들으면서 종종 자기도 한다.


2. 업무 주인의식


사회초년생 때부터 아버지가 항상 나에게 강조했던 단어는 "주인의식"이었다. 항상 업무를 받으면, 혹은 내가 받지 않은 주변의 업무더라도 주인의식을 가지고 보며 행하면 많은 것들이 달라져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그 말을 잘 이해하지 못했던 아주 사회초년생 때는 받는 업무 곧이 곧대로 해내어 바보 같은 실수도 많이 했다만 (너무나도 사랑하는 나의 사수 ㄱㅁㅇ님 - 당시 대리님.. 그 땐 죄송했습니다) 어느 시점부터 일하는 자아가 형성이 되고, 내가 무엇을 하는지 조금 파악이 되면서 주인의식을 더더욱 가지고 많은 것을 했다. 지금도 스쳐 지나가는 텍스트에서 사소한 것을 고치는 나를 보며 팀원들은 "나라님은 진짜 꼼꼼한 것 같아요"라고 하지만, 사실 이 것은 꼼꼼함 보다 내 앞에 오는 모든 업무에 대한 관심 그리고 주인의식이다.


3. 나 혹은 타인에 대한 소문에 귀를 닫고 입 닫기


나는 타인 혹은 나에 대한 소문에 동요를 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타인에 대해 관심이 많은 척 하지만, 알고보면 없고, 또 없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불필요하게 말을 많이 하기도 한다. 나 역시도 팔자 때문에 (...) 본의 아니게 소문의 대상이 많이 되는 편이었던 것 같은데, 신경을 안 쓰려고 한다. 그리고 알기 시작하면 거슬리니까 알고 싶지도 않다. 사람이 어느 정도 머리수가 채워지면 분명 나를 미워하고 시기질투 하는 사람도 생길 것이고, 남자 여자 섞인 곳이면 엮어서 언급도 종종 될 수 밖에 없지만 나는 회사에 내 일을 잘 하고 돈을 벌기 위해 다닌다는 것 - 그래서 내가 목표하고 중요시 하는 것에 조금이라도 거슬리거나, 별로 도움이 안되는 것에 대해서는 오토 차단을 한다. 소문이 밥 먹여주나.


4. 명확하고 신속한 커뮤니케이션


나는 커뮤니케이션을 명확하게 하는게 좋다. 그냥 좋다. 상대방이 명확하게 하지 않으면 싫다. 말이 미사여구가 많이 달리거나, 일목요연하지 않으면 싫다. 포인트를 잡지 못하는 말도 싫다. 내가 이미 상대가 말하고 싶은 포인트를 간파를 했는데, 그걸 모르고 열두바퀴 에둘러서 말 하고 있으면 더 싫다. 이메일이 간결하지 않으면 싫다. 이건 어쩔 수 없다. 일머리를 떠나서 이건 내 성격이다. (...) 음.. 난 성격이 안 좋은 것 같다.


그리고 여담이지만 피드백 역시 너무 늦지 않게 전달을 하려고 한다.


5. 늘 내가 이 일을 왜 하는지 파악하기


이건 2번이랑 조금 연결 된 것인데, 어떤 태스크를 할 때든 "내가 이 일을 어떤 목적으로 하고 있지"를 생각한다. 과거에 여러 장표도 "클라이언트에게 보여주기 식 장표" "비딩을 따기 위한 장표" "내부 정리용 장표"등 여러가지가 있었을 것이다. 클라이언트에게 보여주기 식 장표는 팩트 기반이지만 적잖이 자랑질을 하는 장표였으며 (으쓱으쓱 어깨짤 같은) 그걸 발표할 나의 상사 얼굴을 생각해서 더더욱 예쁘게 기름칠을 했던 것 같고, 비딩을 따기 위한 장표는 나의 성실함과 열정을 피땀눈물로 갈아넣어 매 장표에 스며들게 했던 것 같다. (제발 저희를 간택 해 주세효.. 느낌..)


6. 업무 우선순위화 및 큰 그림 보기


나는 모든 업무를 큰 그림으로 보며 거기에 맞춰서 해야하는 업무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을 좋아한다. 이걸 정리하는데 있어 최근 먼데이 (http://monday.com) 라는 툴의 도움을 받고 있지만, 사실 아날로그가 훨씬 편한 30대로서 제일 좋아하는 것은 펜을 들고 손으로 끄적끄적 하는 것이다. 헤헤.. 해야하는 업무를 월/주/일 단위로 쪼개서 보고, 거기에 맞춰서 전체 업무의 흐름을 보는 것은 나에게 큰 도움이 된다. 또한 각 업무의 타임라인을 고려하여 순서를 바꾸는 과정들 역시 재미있다.


7. 경청하기


회사에서 마주하는 모든 사람 (내부 직원, 관계 회사 직원, 클라이언트 등)가 내 앞에 있을 때 그 사람에게 집중하고, 충실하며, 그 사람의 말을 경청한다.


8. 반성하기


매일 매일을 되돌아보고, 내가 내일 더 잘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잘못한 것에 대해서는 절대 그 다음부터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다.


"나라 일 잘한다 나라 천재 아니야? 우쮸쮸 우쮸쮸" 이야기 등을 듣고 어깨에 힘이 들어갔던 입사 x달차, 나의 상사로 경력직 대리분이 들어왔다. 입사 첫 날부터 좀 특이하셔서 팀에서 여러모로 말이 많았었는데, 그 분이 번역을 하고 클라이언트에게 보내기 전 원래 업무를 하던 나에게 검수 차 이메일을 보냈던 적이 있다. 당시 이메일을 받아보고 "어떻게 나보다 네 살이나 많은 경력차 대리가 번역을 이렇게 하지" 싶어 답메일에 고친 부분을 붉은 색으로 다 표기해서 메일을 보내며 그 위상사인 부장님을 bcc 해서 보낸 적이 있다.


그 다음날 아침, 출근하자마자 나는 회의실에 불려가서 부장님과 면담을 했고 그 부분에 대해 "아무리 상대가 잘 하지 못해도, 새로 들어온 경력직 선배한테 그러는 것 아니다"라고 좋게 타이르는 부장님의 말씀이 너무 귀에 박히고 창피해서 엉엉 울었던 기억이 난다.


집에 가서 똑같은 이야기를 또 했다가 아버지한테는 더 큰 꾸지람을 들어 또 울었던 기억이 (....) 지금의 내가 돌이켜보면 어떻게 그런 하극상에 심지어 상사까지 bcc를 하는 근본없는 행동을 할까... 싶은 생각이 드는데, 사실 잘 한다 잘 한다하며 자만을 할 뻔 했던 순간 그런 일을 겪은게 다행이라고 생각을 했다.


이 일을 비롯하여 크고 작은 일들 포함 내가 잘못한게 있다면, 어떤 일이든 내가 겪은 상황 +@로 유사한 상황에서라도 절대 비슷한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한다.


하지만 그 대리님은 그 후 몇 주 뒤 퇴사했다. 조금 특이한 분은 맞았다.


반성과 되돌아보는 것의 일환으로, 여담이지만 나는 술을 마시면 기분이 업이 되어 수다를 쫑알쫑알 많이 하는 편인데, 말실수를 잘 하는 편이 아니라고 생각되면서도 혹여 술자리에서 나 혼자 너무 떠든게 아닌가 싶어 잔뜩 취해 집에 돌아가는 길에서도 생각 해 보며 "저만 너무 떠들었죠 죄송해요" 라는 말을 종종 보내는 편이다. 그리고 내 현 상사분이 말씀 주셨다. "그거 주사야..."


여튼 팁이라고 열거한 것도 사실 보잘 것 없고 이미 남들은 나 이상으로 잘 하고 있는 것들이겠다만, 이렇게 정리를 해보니 지난 10년의 기억에 조금 더 의기양양 한 느낌이다.


"일은 진짜 너무 재미있어!"를 외치는 나를 내 친구들은 참으로 신기해하지만, 매일 다섯시반 기상 해 회사 지하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고 출근을 하며 설레어하던 사회초년생의 나도, 일태기와 딜레마를 심하게 겪은 재작년의 나도, 그리고 지난 10년을 짚어보는 지금의 나도


결국 늘 감사하다.


일할 수 있는 사람으로 살 수 있어서. 일하는 자아에 계속 물을 줄 수 있어서. 그것도 즐겁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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