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 - 현실적인 준비 전 준비 해야 할 것들
결혼이라는 단어가 잘 어울리지 않는 내가 결혼을 준비 하게 되었다.
사실 애인과 둘이서는 꽤 전부터 결혼 이야기를 해왔지만, 실제 준비를 시작하니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모두 "이렇게 갑자기"이다.
심지어 나의 결혼 소식에 친한 남동생 J는 "나라팀장님이 결혼이라니, 진짜 이런 일이 있다니"라며 놀란다. 아니.. 그 정도로 놀랄 무엇이야?
비혼주의를 강경하게 외치던 30대 초반의 내 모습이 민망하게 지금의 나는 지금 "신부님" 소리를 들으며 이런저런 준비를 하기 바쁘고, 누군가와 함께 저녁밥상을 차리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일만큼 이 생활에 만족을 하며 지내고 있다. 결혼 준비에 바쁜 이 시기에 잠깐 일을 쉬는 것도 정말 탁월한 선택인 것 같다. 애인은 보고 있으면 딱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매일 너무 바빠 둘 중에 하나라도 단기적 널널함을 만끽하는 것이 다행이다.
나 뿐만 아니라 애인의 결혼 소식에 "너는 평생 결혼 안 하고 연애만 하고 살 줄 알았다" "40대 되어서야 철 들어서 뒤늦게 갈 줄 알았다"가 친구들 다수의 피드백인 것을 보면, 애인의 결혼 소식 역시 사람들에게 그렇게 당연스러운 소식은 아닌 것 같다.
여하간 앞으로 나의 부족한 글 솜씨로 (부디 나의 끈기가 허락을 해준다면) 브런치라는 공간에서 내게 아이의 백일과 돌의 차이가 무엇인지 몇 번이나 묻는 남자와, 결혼의 ㄱ자만 들어도 지루함을 내비췄던, 특히나 '결혼식'은 클리셰야! 라고 막연한 거부반응을 일으켰던 여자가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에 있어 실제 이것저것을 알아보며 얻은 정보들과 겪은 것들을 써보려고 한다. 이유는? 나 같은 사람이 또 어딘가에서 검색을 해서 추후에 도움이 될 수도 있으니까.
여담이지만 우리는 처음에 어떤 대단한 스파크가 있어 결혼을 하게 된 것도 아니고, 나이가 찼다고 어떠한 사명감에 만난 것도 아니다. 오늘도 나와 나이가 비슷한 하지만 연애 햇수는 나보다 많은 전 직장 동료이자 친구가 결심과 변화의 과정에 대해 물었을 때, 나의 답은 "그냥 모든게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어" 였다.
정말 말 그대로 대단한 일은 없었지만, 결혼의 결심(?)으로 흘러간 과정은 우리의 연애처럼 사실 상당히 평범하고 자연스러웠다.
그제도 애인에게 이야기 했지만, 나는 연애 초 애인이 이상한 사람인 줄 알았다.
무어가 진담이고 농담인지 구분도 되지 않고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조차도 파악이 되지 않은 시절, 사귄지 일주일 좀 넘었을 때부터 그는 매일 나에게 같이 살자는 이야기를 하며 심지어 본인 어머니도 뵈러 가자고 했다.
그의 그러한 제스쳐들을 보며 프로진지러인 나는 방어기제가 잔뜩 올라와 '이 사람은 가벼운 냄비구나'라고 속단을 했었다. 어쩜 연애를 시작한 남자가 설레는 마음에 초창기에 하는 여러 말들 중 하나일텐데, 나는 또 한참 진지한 사람이니 이 사람이 "진짜 누군지" 혹은 저 말의 "저의가 무엇인지" 혼자 골똘히 고민하기 바빴던 것 같다.
하지만 몇 달 동안 지속되는 모습을 보고 그가 정말 밑도 끝도 없는 냄비는 아니라는 것을 (?) 깨달은 동시 코로나19로 인해 같이 집콕을 하는 상황이 많아지며 결혼생활이 어떨지 가늠을 해볼 수 있는 시간들을 보냈던 것 같다. (아마 그 시간동안 그는 놀러간 그의 집에서도 청소에 열과 성을 다 하는 나를 보며 후회를 하고 있었을 수도 있...)
그리고 만난지 반년이 좀 넘었을 무렵 나는 "그러면 당신의 부모님을 뵙기 전에 우리 부모님을 먼저 뵙자"라고 제안을 했다. 그는 곱게 양복을 입고 우리 엄마를 위한 꽃다발, 그리고 알이 큰 딸기를 한 팩을 사서 갔다. 그렇게 나의 부모님께 만나고 있는 그를 소개를 시켜드렸고 그 때부터 그는 우리 가족과 안면을 트고 간접적인 왕래가 생겼다. 부모님은 이미 만나기 몇달 전 추석 때 그가 집으로 보낸 한우 선물을 받으셨던지라 그의 존재에 대해서는 잘 알고 계셨고, 나 역시도 나름 긴장을 많이 했던 그 시간은 무난하고 화기애애하게 흘러갔다.
그 이후 또 반년 남짓이 흘러 전세 계약 연장을 할지, 새 집을 알아봐야 할지 결정하는 시간이 오자 애인은 "너랑 살거니까 큰 집으로 갈거야" 라고 의사 전달을 했고 (이렇게 활자로 적으니 밋밋하지만 사실 그 때는 그 말이 참 스윗했다), 우리는 그렇게 부동산이 심하게 과열되었을 때 신혼집 아닌 신혼집 알아보기를 시작했다.
대망의 이사 전, 나는 애인의 부모님을 가서 찾아뵈었고 그 날 이 사람이 왜 이렇게 좋은 사람일 수 밖에 없는지 그의 부모님을 보고 느끼며 막연하게 긍정적으로 그리고 있던 그와의 결혼에 대한 나의 마음은 굳혀졌다. 그 전에도 애인의 어머니가 싸주신 반찬을 먹으며 "이런 음식을 먹고 자란 사람은 참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겠구나" 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고, 평소 그가 쓰는 언어나 작은 생활 습관들 그리고 심성들을 보며 마음이 따뜻하고 곱게 자랄 수 있게끔 해주신게 부모님 덕이 크단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직접 뵈니, 애인의 부모님은 생각했던 것 처럼, 아니 그 이상으로 정말 좋으셨다.
그렇게 그 만남이 자연스레 상견례로 이어지고, 상견례를 한 날 부모님들이 원하시는 결혼 시점이 나오고, 식장과 시기 등 모든 것을 다 나라가 하고 싶은 대로 하라는 예비 시어머님 말씀에 나는 상견례 당일 평소 신년운세를 보는 역술학자에게 연락을 해 바로 길일을 뽑고 예식장 투어를 잡았다. (나는 투두리스트의 항목을 빨리 체크하는게 중요한... 사람이다)
위드코로나가 시작 되며 결혼을 계속 늦추던 예비 부부들 러쉬로 인해 가용한 식장은 별로 없었고, 실제 뽑은 길일에 프라임타임에 남아있는 슬롯은 더더욱 없었다. 특히나 처음 우리가 생각했을 때 친구들과 함께 파티처럼 하는 스몰웨딩을 원했던 것과는 달리, 내가 입고 싶은 웨딩드레스가 비즈 웨딩드레스이기에 어두운 홀 쪽으로 알아보게 되었고, 결혼식 진행 후 앉은 자리에서 바로 어른들이 식사를 하실 수 있도록 동시예식을 할 수 있는 곳으로 알아보았는데, 그렇게 되면 호텔 혹은 호텔식 예식을 하는 몇 안되는 결혼식장 밖에 없었다. 이렇게 좁혀진 옵션 덕에 처음 본 식장으로 바로 계약을 하게 되어 나는 마음이 홀가분하지만, 내심 여러 홀을 보고 싶어했던 애인에겐 미안할 노릇이다.
여러모로 식장 뿐만 아니라 이번 결혼을 준비하며 느끼는 것은, 매사 원하는 것이 너무 명확하고 의사결정이 빠른 나는 스스로를 비롯하여 주변 사람들을 참 피곤하게 만드는데, 이 점이 이번에는 너무나도 긍정적으로 발휘가 되어 모든 진행상황에 도움이 매우 되고 있다고 생각이 든다. 다만, 플래닝부터 진행 상황까지 스프레드시트에 정리하고 하나씩 그어나가는 나를 보며 애인은 "너 안 설레? 너는 왜 이 것도 일 하는 것처럼 해?" 라고 물어본다.
나는 여전히 결혼식이 결혼생활의 축약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프로포즈도, 누군가가 나와 결혼을 하고 싶어한다는 것도 그 어떤 '훈장'도 아니다. 어떠한 결혼식을 하느냐가 우리의 결혼생활을 보장하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화려한 고백보다도 두 사람이 얼마나 같은 시간 속에서 서로 맞춰 나가며 마음을 서서히 포개는가, 그리고 앞으로도 잘 맞춰갈 것인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결혼생활이 언제나 꽃길만 가득할 것이라고, 우리는 매일 매일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매 순간이 단순히 "로맨스"로 가득 찰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의 애인은 집에서 둘이 함께 있는 시간이 너무너무 행복하다지만 (그리고 그가 그 말을 하면서 나를 꼬옥 안아주는게 내게도 최고의 행복이지만), 아마 부부가 되고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 사이엔 단순 남녀간의 사랑이라는 감정 외에도 의리, 결의, 정, 동지애 그리고 아마 가끔은 애증 따위도 추후에 붙을 수 있고 - 그 틈새에 여러 감정과 복잡다단한 관계의 모습들로 메꿔져 우리만의 모양새를 만들 것이다. 다만 나는 앞으로도 이 사람과 함께라면 삶에서 어떤 난제를 마주해도 함께 슬기롭게 헤쳐나가고, 서로 신뢰하고 지켜주며 지낼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지난 1년 반 동안의 연애기간 내내 그가 내게 보여줬던 모습이나, 그를 만나면 만날수록 느끼는 편안함, 그리고 그를 만나며 변해가는 모습이 점점 더 좋아져 나는 우리의 미래가 기대가 된다. 기꺼이 함께 손을 잡고 같은 곳으로 가고 싶다. 이 세상에 누가봐도 화려하고 멋진 사람은 많겠지만, 적어도 그는 나에게 있어 여러 연유로 태나라 맞춤형 훌륭한 사람이다. (물론 그에게도 멋진 면들은 많다!)
오늘 전 동료이자 친구가 물어본 '결심'에 대해서는 모든게 자연스러웠다며 다소 딱 떨어지지는 않는 답을 내놓았지만, 적어도 확실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은 나도 모르게 그 결심을 할 수 있게끔 현실적인 준비 전 준비 해야하는 것은 나에게 주어지는 것들을 인지하고 받아들이며 자연스러움을 빙자하여 다가오는 변화들을 기꺼이 수용하는 자세인 것 같다.
그래서 나는 그 자세와 마음의 준비를 마치고 최대한 많은 프로세스를 간소화한, 하지만 엑기스는 적어둔, 우리만의 실질적인 결혼식을 기록 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