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리스트를 꿈꿨었다니, 비건을 외치는 삼겹살 러버와 같은 느낌이구나
정신 없는 12월을 보내고 있다.
결혼 준비 스케줄, 개인적인 일들, 커리어 관련 준비, 나름 열심히는 하나 너무나도 더딘 다이어트, 그리고 이 추운 12월에 신혼집으로의 이사까지 얹혀져 우선순위를 정리하기에 바쁜데 그 중 은근히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할애하게 되는 부분은 이사이다.
현재 살고 있는 신축 빌라에는 약 1년이 채 안되게 거주를 했다. 결혼으로 계약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나가는데 있어 집주인분이 많이 편의를 봐주신 동시에 가급적 빨리 나가주는 것이 더 편하다 하셔서 급하게 대출 조기 상환을 위해 연락이 쉽사리 닿지 않는 은행에도 연락을 하고, 여러모로 자금 등을 교통정리 하느라 바빴다. 심지어 스튜디오 촬영 바로 전날 이사인지라, 조금만 스트레스 받아도 뒤집어지는 개복치 피부가 제발 버텨주길 바랄 뿐이다.
서울과 꽤나 가까운 곳에 본가가 있었지만 20대 끝자락의 나에게는 "서울 사는 멋진 여자 어른"의 허세가 매우 심하게 있었다. 그 덕에 꽤 빨리 독립을 했었고, 경제적인 개념이 하나도 없어 전세자금대출의 '대출'이라는 단어만 듣고 겁을 먹어 말도 안되는 금액의 월세를 뿌리며 서울살이를 시작했었다. 그 사이 부모님은 더욱 더 먼 곳으로 이사를 가셨고, 몇 년 뒤 이른 독립이 가장 후회가 되는 일 중 하나였을 정도인 내게 돌아갈 곳은 없었다. (이미 내 방은 사라진지 오래)
그 와중 옷도, 책도, 문구도, 화장품도, 심지어 쓰잘데기 없는 추억 끌어안기까지 좋아했던 나의 세간살이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는데 결혼이라는 이 기회에 짐을 버리지 않으면 나는 정말 고쳐지지 않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짐을 하나씩 버리면서, 그 짐마다 담겨있는 추억을 읊고 더듬는 나를 보며 참 구제불능이라고 생각까지 했다. 이런 와중에 '미니멀리즘'에 대한 책까지 몇권 샀다니, 이건 그냥 정신병이 아닐까?
요 근래 여러 물건들을 하나둘씩 버리며 아주 가끔 당근마켓의 도움을 받기도 했지만, 내가 팔려고 하는 작은 소품이나 자질구레한 물건들은 나눔으로 올려도 반응이 시원찮았고, 그러다보니 꽤 인지도가 있는 브랜드의 옷들도 하나하나 찍어 올리기 귀찮아져 아깝지만 통으로 의류기부함 (이라 칭하지만, 사실은 개인이 구제 옷장사를 할 때 사용된다고 한다)에 전부 넣어버렸다.
많은 물건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가장 버리기 아쉬웠던 것은 지난 20여년간 내가 받았던 편지들과, 지난 사진들이 있는 박스였다. 인생의 반절 정도 외로운 타지 생활을 했던 내게 언제나 큰 양분이 되어주었던 편지들은 나의 학창시절, 외로운 캐나다 생활의 정서 등이 많이 담겨져있었는데 정말 이 편지들을 버리는데 있어 마음이 많이 무거웠다. 특히나 돌아가신 외할아버지가 한지에 써주신 편지나, 엄마가 유학생활 시 남아공에서 캐나다로 보내준 편지 등은 버릴 생각을 하니 아찔해서 따로 몇 개만 빼놓고 눈을 질끈 감고 박스를 버렸다.
엄마는 엄마의 옛날 기억을 더듬으시며 본인 역시 추억 상자를 버린 것이 많이 후회가 된다 하셨지만, 끌어안고 있다고 내가 얼마나 자주 들여다볼까 싶어 눈을 질끈 감고 버렸다 하니 잘 했다고, 신혼집에는 그런 것을 가지고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고 하셨다.
신혼집에는 아직 내가 이사를 제대로 들어가지는 않아 완전히 서로의 살림을 합치지는 않았지만, 조금씩 필요한 기물 등을 산지는 좀 되었다. 사실 우리의 집에는 새로이 살 가구나 가전이 별로 없다. 왠만한 것은 애인이 다 가지고 있어 침대, 스타일러, 로봇청소기 (이건 미리 샀는데 정말 찬양 중이다) 그리고 와인냉장고 정도만 사려고 하며 우리의 옷방을 위한 옷장 정도만 추가로 샀다.
그래서 우리는 "결혼 전에 짐이 뭐가 많지 않겠네 다행이다" 라고 생각을 했으나, 그건 우리의 착각이었다.
조금씩 늘어나는 그릇이나 책 따위를 보며, 짐을 합친다는 것은 정말 만만한 작업이 아니라고 생각이 들었다.
수납이나 정리정돈, 그리고 청소는 조금 아쉬워도 나보다는 짐이 훨씬 적은 애인은 내가 혼수로 사온 그릇, 장녀의 혜택으로 본가에서 잔뜩 가져온 좋은 잔과 그릇, 냄비, 후라이팬등을 보며 처음에는 좋아하며 "너가 장녀라 이걸 다 받으면 네 동생은 어떡하냐" "내가 사주겠다"고 너그럽고 듬직한 형부의 마음 씀씀이까지 보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유독 많은 그릇선물이 왔던 내 생일을 한번 치르고 참을 인을 몇 번 새기더니 어느 날 아침 다짜고짜 손가락을 내밀며 약속을 하나 하자고 했다. "더 이상 그릇은 선물도 받지 말고 사지도 말자"며. 애인에게 차마 말은 못했으나 아직 본가에서 실어갈 그릇 및 부엌 기물들은 꽤 있고, 애인이 자취할 때 쓰던 쿠팡에서 산 그릇만 버려도 다 채워넣을 수 있다고 혼자 생각 중에 있다. 오늘도 요리를 하며 "여기 있는 애들 다 버려버릴래ㅠㅠㅠㅠ"라며 뭐라 하는 그를 보며 수납을 잘 하겠다고 자신 없는 대답을 했다.
묵은 짐들을 들여다보며, 언젠가를 위해 혹은 아까워서 구석구석 잘 보관을 해두었던 짐들이 정말 그 어디에도 쓸모가 없고 잘 "보관만 되어있는 것"을 보며 여러 생각을 했다. 아, 난 참 돈지랄을 많이 했구나 같은 생각. 분명 캐나다에서 한국에 들어올 떄 LP와 CD, 책 등을 수백개를 정리하며 배웠던 것들이 있는데 인간은 정말 망각의 동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한동안은 아마 내가 "아껴두었던" 많은 것들을 열심히 활용하고, 나누고, 쓰는 시간을 보내려고 하고 있고 부디 새 신혼집에서는 수납부터 시작해서 세간살이 관리를 제발 지혜롭게 했으면 좋겠다고 스스로에게 되뇌이고 있다.
이 모든 변화와 과정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물건이든 무엇이든 과감하게 버리는 것인 것을 스스로가 잊지 말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