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딩드레스 한번 입기 위해 돌이켜보는 나의 몸무게 변천사
나는 늘 '다이어트' 혹은 '통통한 나'에 대한 경각심이 있는 사람이었다. 서른을 넘겨 내 몸이 편해지기 전까지는. 사실 내 몸이 편해진 이후에도 내가 유지하던 평균 몸무게 이상의 살이 붙으면 원래 입던 예쁜 옷들을 입지 못한다는 아쉬움에 '살이 쪘다'를 입에 달고 살았지만, 과거의 나보다는 훨씬 더 너그러워진 부분이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십수년 전, 고등학교 때 나는 키 161cm에 여름엔 몸무게 52kg 그리고 겨울엔 57kg 사이를 왔다갔다 했었다. 당시 내가 살던 곳은 우크라이나였는데, 워낙 추웠던 곳인 동시 아무리 좋은 집에 살아도 한국 같은 난방을 기대하긴 어려워 겨울에 살이 찌는 것은 불가피했고, 열량 높은 음식을 먹으며 영하 20도-30도 사이를 왔다갔다 하는 그 곳의 겨울을 버텼던 것 같다. 그 당시에는 나 혼자 친구들 사이에서 동양인이었기에, 내가 얼마나 말랐는지 혹은 뚱뚱한지, 내 체형이 어떤지에 대한 가늠을 하기 어려웠다. 그냥 나는 그들과 다른 아이였으니.
그리고 대학교 진학 후, 14살 이후 처음으로 한국 친구들과 놀기 시작하며 나는 새로운 많은 것들을 배우고 접하게 되었다. 그 중 하나는 외모와 체형에 대한 사회적 통념이었다. 당시 한국에서는 원더걸스 같은 여자 아이돌이 나오기 시작할 무렵이었고, 모두 누구의 다리가 어쩌고 몸매가 어쩌네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남자 선배들은 몸평과 얼평을 쉽사리 했고, 그 대상이 되는 사람들은 우쭐하기도 또 우울해하기도 했다. 그 때 나는 처음으로 한국에서는 '마른 여자'가 예쁘다는 것, 옷은 당연히 '2' 사이즈를 입어야 한다는 식의 사회의 고정관념을 접했고, 나는 공부 외에도 '한국 친구들 사이에서 적응하기'라는 어려운 나만의 태스크를 수행해야 했다.
하지만 그 것은 생각만큼 녹록치 않았다. 쿠키 한 개에 칼로리가 몇 칼로리인지 인지 조차 하지 못하는 아이가 처음 부모의 곁을 떠나 접한 다양한 밀가루 음식 덕에 나는 알러지, 생리불순 (생리를 한 달에 세 번까지 하게 되었다), 원래의 몸무게 보다 약 8kg이 늘은 체중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식이장애까지 만나게 되었다.
유학생활의 외로움은 지천에 널려있는 아이스크림과 빵 등으로 채워지기 바빴고, 다소 강도가 높았던 학업 (내가 졸업한 학교를 비롯한 캐나다의 많은 학교는, 일정 성적이 넘지 못하면 쉽게 잘리며 한 해에 반 정도의 학생이 사라진다. 그래서 1학년 때 친구들의 80%가 대학교 졸업할 때 보면 없다)에 졸지에 감투를 쓴 동아리 활동에 인턴 생활까지 잘 챙기려니 여러모로 미숙했던 내가 살아남기엔 버거웠다.
그 때의 내게는 말라야 한다는 강박이 외부로부터 주입되어 생겼는데, 공부는 어렵고 동시에 우울하고 외롭고의 연속이었던 것 같다. 캐나다 친구들이나 외국인 친구들이 말하는 'You are beautiful'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으며, 내가 얼마나 살이 쪘는지 평가를 하는, 지금 생각하면 중요하지도 않은 남자 선배들의 우스갯소리를 듣고 있었다.
여하튼 나는 더욱 더 살이 쪄 궁극적으로 65kg라는 최대 몸무게를 찍은 후 더 이상 캐나다에 있을 동안 내 몸무게의 앞자리에서 5라는 숫자를 맞이할 수 없게 되었다. 당시 나의 외모와 몸무게는 늘 스트레스였으나 동시에 옷 욕심과 개성 있고 싶은 욕구는 많아 밴쿠버 내에 여러 빈티지 스토어와 당시 유행하던 아메리칸 어패럴에서 나만의 스타일을 구축하려 부단히도 노력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늘 친구들 사이에서 "특이하고 포스있는 언니"였다. 아마 내가 소위 말하는 '마른 몸'이었다면 유독 개성이 강했던 스타일을 조금 놓았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스물 다섯, 한국으로 들어온 해에 나는 약 60kg 정도였던 것 같다. 사람의 마음이란게 참으로 신기한게 가족과 시간을 보내니 외로움으로 비롯된 먹는 습관이 사라지고 자연스레 붓기가 사라졌다. 대학시절 내내 먹은 밀가루 덕에 생긴 알러지 탓에 빵을 보면 구역질이 나고, 먹으면 도돌도돌한 알러지가 생기는 부작용이 있었지만, 자연스레 변하는 몸이 좋았다.
스물 다섯의 나는 PT를 끊고, 운이 좋게 참 멋진 직장에서 회사 생활을 시작했다. 그렇게 자연스레 살이 빠지고, 근육이 붙으며 내 몸매가 나쁘지 않은 몸매 (부끄럽지만 나는 내 몸의 선을 좋아한다)라는 것도 그제서야 알게 되었다. 꾸준한 운동과 엄마의 건강한 집밥 덕에 나는 몇 년 사이에 50-51kg 사이를 찍었다. 물론 회사 동료들이 준 팁인 다이어트 약, 카복시 등을 접했지만 다이어트 약을 먹고 오장육부 뒤집어지게 토를 하고 카복시를 하다 고통에 황천길을 갈뻔하여 10회 결제를 하고 2번 밖에 못간 쫄보기에 그런 친구들의 도움을 받지는 못했다.
나의 기억이 미화된 것일 수도 있지만, 그리고 나의 과한 자기애 덕일 수 있지만 모쪼록 평범한 범주여도 당시 작지만 동그란 나의 가슴, 탄탄한 허벅지 근육과 당시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했던 잘록한 허리, 건강한 골반과 탱탱한 엉덩이, 그리고 직각 어깨 등에 대한 칭찬을 들으며 나름 자부심도 많아 거울을 종종 보았던 것 같다.
그 때에는 체지방률 역시 20%대 초반을 유지하며 언제 식이장애와 몸무게로 고생을 했었냐는 듯이 입고 싶었던 옷을 잔뜩 입으며 십여년 만에 찾은 '날씬한 몸'을 즐겼던 것 같다.
그러는 동시에 나에게는 '예쁜 몸과 예쁜 외모'를 유지해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이 있었다. 워낙 맛있는 것을 좋아하는 탓에 음식을 포기하기보단 하루에 2시간씩 운동을 하는 방법을 택했고, 러닝, PT, 필라테스 1:1 등을 통해 내가 원하는 몸을 열심히 유지를 했다. 당시에는 먹는 모든 음식의 칼로리를 달달 외울 정도로 나의 뇌구조 한켠에는 '다이어트'가 늘 존재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나도 모르는 족쇄를 스스로 채우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나는 서른 무렵, 독립을 하며 '술'의 세계에 빠지게 된다. 아, 자유의 맛이란 너무나도 달콤했다! 본가에서 살 때 맥주 한두잔을 마시고 집에 들어가는 것과 달리 집에 들어가야 하는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아 2차 3차까지 가고 동교도 삼거리에 있는 원룸으로 복귀했다.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안주가 많다니, 세상에 소주가 이렇게 맛있는 것이였다니! 라고 감탄을 하던 나는 마침 공교롭게도 출장도, 미팅도 잦은 업의 팀장 포지션으로 이직을 하게 되었다.
생전 먹어보지도 못했던 미슐랭 코스의 음식들을 접하고, 맛있는 것을 먹기 위해 돈을 쓰는 것을 배우는 동시 비싼 와인까지 접하게 되어 지갑은 얇아지고 반면 날씬했던 몸은 조금씩 통통해져갔다. 그 후에 스핀오프 스타트업의 대표직을 맡게 되며, 더 이상 날씬한 몸을 유지하는 것은 나에게 사치였고 그래도 53-54kg대의 몸을 유지하며 (아마 체지방률은 훨씬 더 높아졌을 것이다) 쓰러지지 않게 약을 처방 받고 링겔을 맞으며 일을 하는 것이 최우선이었다.
그 때 내가 만난 것이 요가였다. 사실 요가는 대학교 때도 비크람 요가를 간간히 다니며 꾸준히 해왔지만, 정말 '요가의 맛'은 당시 직장 동료를 따라 갔던 요가원에서 제대로 만나게 되었고, 또 다른 동료이자 나의 친구인 민경을 따라갔던 강남에 있는 요가원에서 - 지금도 내가 감사한 인연으로 꼽는 부진 선생님을 만나게 되며 단순 다이어트로서의 요가가 아닌 요가의 재미에 빠지게 되었다. 당시 나는 격무와 드라마틱한 연애의 끝으로 매우 시니컬한 상태였는데, 그 때 내가 마주한 요가는 단순 운동의 개념이 아니라 나의 삶의 전환기를 맞이하기 전 감사한 친구처럼 다가왔다.
그 후 2-3년간은 몸무게에 연연하지 않고 요가를 통해 나의 마음과 생각, 그리고 몸의 근육을 키우며 매트에 집중하는데 힘을 썼던 것 같다. 아마 몸무게는 51-54kg 사이를 왔다갔다 했었던 것 같은데, 살이 조금 붙어도, 혹은 빠져도 크게 상관이 없어졌다. 그냥 매트 위에서 움직이는 내 자신이 기특했고, 움직이는 모습이 좋았으며, 움직임 자체가 감사했다. 그러한 와중 나는 내가 나의 본성을 찾아 들어갔던 전직장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였고, 매우 달라진 업무로드 덕에 마음이 편해진 동시 다녔던 요가원들도 다들 멀어져 운동을 조금씩 놓기 시작했다.
그러한 와중 나는 현재의 애인을 만났다. 나에게 아마 세상 최고의 안락함과 '나다울 수 있음'을 선사해 주는 사람인 이 사람을 만난 덕에,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 '맛있는 것 먹이고', '좋은 곳을 보여주러 놀러가고', '늘 데리러 오고 데려다주는' 것인 사람 덕에, 나는 운동을 비롯한 많은 것을 놓고 사랑, 먹는 것, 안락함 등에 취하게 되었다.
그리고 애인과 함께 한 지난 일년 반이 넘는 연애 기간 동안 나의 몸무게는 최대 57.8kg, 그리고 체지방률은 생전 처음보는 34%를 달성하게 된다. 내가 서른이 넘어 대략적으로 유지하던 평균 몸무게 보다는 약 6kg, 체지방률은 9%가 증가한 셈이다. 내가 먹는 모습을 좋아해 연애 초부터 우스갯소리로 '나라를 열심히 찌워야지'했던 이 사람도 몰랐을 것이다. 내가 이렇게 정직하게 곧이 곧대로 살이 잘 찔줄은.
원래 입던 H라인 스커트보다는 고무줄 원피스를 많이 입게 되고, 상대적으로 편안한 옷들을 더 찾게 되었지만 괜찮았다. 나를 열심히 찌운 사람이 나보고 예쁘다고 하니까, 더 이상 누군가의 눈에 내가 어떻게 보일지에 대해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 되었으니까, 조금 불편하고 예쁜 옷을 입어 칭찬을 받는 것 보단 저녁 메뉴를 고민하는게 더욱 더 행복했으니까. 물론 사람들에겐 볼맨소리로 '몇 KG가 쪄서'를 입에 달았지만, 사실 그런 말버릇과 달리 나의 다이어트 의욕은 그리 크지 않았다. 물론 운동을 위해 PT를 끊고, 그룹 필라테스를 조금씩 다녔지만 예전의 운동량에 비하면 터무니 없이 낮았다.
그렇게 안일하게 안주했던, 안락했던 내가 생각보다 빠르게 결혼 준비를 하게 되었고 졸지에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빼야하지, 음식은 어떻게 줄이지를 고민했다. 나를 찌운 사람과 함께 50만원을 걸고 다이어트 내기를 시작했다. 다이어트를 준비하던 시점과 이직이 맞물려 새 회사에서는 점심을 어떻게 할까 고민을 하다 다행스럽게도 (?) 입사를 번복하며 일 외적인 것들에 집중을 할 수 있는 백수 생활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그래! 이 참에 운동을 많이 해보자! 라고 다짐을 했지만, 쉬웠던 결제와 달리 실제 헬스장으로 출근을 하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의지력을 요구했고, 애인이 늘 놀리는 것처럼 나는 세상에서 제일 바쁜 백수 생활을 보내고 있기에 생각처럼 운동에 집중을 하진 못했다. 그래서 나는 현재 너무 내 체력과 페이스에 오버되지 않게 주 2-3회 운동을 유지하며 살고 있다.
"너희는 결혼하면 뚱땡이 부부가 될 것 같아서 걱정돼"라는 엄마의 말씀에 나는 매일 매일 무엇을 먹었는지를 열심히 공유를 했고, 예전처럼 단호한 식단 관리는 못해도 하루에 적당량의 두끼를 먹으며 현재까지 3kg 남짓을 뺐다. 나의 목표 몸무게인 52kg까지 빼려면 2.7kg를 더 빼야하는데, 엄마는 이왕 드레스 입을 것 확실하게 예쁘도록 50kg까지 빼라고 압박을 넣으신다. 나는 보이는 것에 비해 몸무게가 더 나가는 편에 하체에 비해 상체가 말라 50kg가 되면 정말 얼굴밖에 없고 춥파춥스 같을텐데, 까짓거 웨딩드레스 평생 살면서 한 번 입는데 엄마 소원 들어드리자 싶으면서도 나름 덜 먹고 더 움직였다 생각했는데 그 다음날 체중계 바늘이 배신을 할 때면 그 숫자가 아득한 것이다.
결혼 준비라는 특권(?) 덕에 돈을 써서 스파에서 데콜테 관리를 받으니 조금 더 라인이 정리 되는 것 같기도 하고, 동그란 얼굴이 조금 갸름해 지는 것 같기도 하다. 여러모로 나이가 들고 근육이 줄어 신진대사가 느린 몸뚱이임에도 불구하고 원래의 몸이 조금씩 돌아오고 있음에 진심으로 감사하다. 며칠 전 촬영용 웨딩드레스를 입으며 나의 체형의 특징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알게 되었고, 오랜만에 몸매 칭찬을 받으니 기분도 참 좋았건만 지속 가능한 건강한 삶보다는 일생일대의 무엇을 위한 프로젝트성으로 살을 빼는 느낌이 없잖아 있다.
근본적으로는 어떤 몸무게의 나이든, 어떤 모습의 나이든, 어떤 몸매의 나이든 나 자신 자체로 사랑해주고 인정을 해주는게 중요하다고 생각을 하면서도 그래도 웨딩드레스 입었을 때는 날씬했으면 하는 솔직한 바람이다. 부디 이 기세를 오랜동안 몰아 지속가능한 건강한 삶을 사는데 내가 에너지를 쓸 수 있길, 또한 운동을 하는데 변덕을 부리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아무래도 50만원 내기는 내가 이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