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생활의 마음가짐

11년의 직장생활, 변하지 않은 것이라면

by Nara Days

올 해로 직장생활을 한지 만 11년이 되었다.


어느덧 나는 그 어떤 것도 대단히 놀랍지 않고, 대부분 다 겪어본, 그래서 어떤 부분에서는 "여유롭지만" 또 많은 부분에 있어서는 "심드렁한" 30대 중후반의 직장인이 되었다. 게다가 직장 짬밥을 먹으며 모두가 그렇듯 어느 부분에 있어서는 구렁이 혹은 여우가 되기도 한다. 뭐 그게 나쁜건가 싶지만)


많은 부분에 있어서 심드렁한 것은 내가 삶에서 지향하는 바가 아니기에 매일 마주하는 상황을 새로이 여기고 호기심을 가지며 더욱 더 배우려 노력을 하고 있다.


사실 부끄럽지만 나는 사회초년생 때 딱히 목표가 없었다. 요즘 친구들을 보면 몇년 뒤에는 자기 공간을 갖고 싶다거나, 사업을 하고 싶다는 등의 포부가 있던데 나는 서른이 좀 넘기까지 그냥 '열심히 내가 맡은 바를 하는 것'이 나의 매일매일이었고, 당장 5년, 10년 뒤가 어떨지 예측할 수 없었으며 예측을 하지도 않았다.


나는 사람이 좋아 심리학을 전공했다. 사람에 대해서는 여러모로 관심도 많고 기질적인 장점, 그리고 경험을 통한 일가견이 있다 믿었는데, 사람이라는 대상 혹은 분야가 누군가가 '유독 잘 하는' 분야라 말하기엔 어려우며 굉장히 가변적, 그리고 조심스럽고 주관적인 무엇이겠지만 적어도 성장기에 겪었던 다채로운 경험들과, 여러 사람들 속에서 가졌던 의문증에 대해서는 답을 해줄 수 있겠거니 했다.


고등학교 때에는 막연하게 잡지 에디터를 꿈꿨으나 아쉽게도 진학한 대학교의 학부 전공에는 커뮤니케이션이 없었고, 당시에 내가 다니던 대학교의 심리학부가 전세계 10위권 안에 든다는 것을 알게 된 후 그래 이왕이면 알아주는 전공, 내가 잘할 수 있는 전공을 하자! 라고 해서 '사람'에 대한 근본적인 관심 토대로 심리학을 전공을 했다. 내가 졸업한 학교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것은 현재 나에게 자부심을 주는 무엇이면서도, 동시에 나의 GPA를 보면 심리학은 내 길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에게 높은 점수를 준 과목들은 공교롭게도 여성학과 미술사학이었다.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일을 시작했을 때만해도 해외유학파들이 이력서를 잡포털에 올리면 헤드헌터들이 연락을 많이 했던 시점이었다. 지금은 아이비리그나 서연고 대학을 나와도 취업난을 피하긴 어렵다고 하던데, 요즘 친구들을 보면 참 안쓰럽다.


나의 이력서 및 여러 아르바이트 경력, 그리고 자기소개서를 읽은 헤드헌터분들이 이야기 했다. "PR이랑 진짜 어울릴 것 같은데, 어떠세요?"


PR이라, 어디선가 들어는 보았는데 확실히 무언지 알 수가 없었다. 광고와 마케팅이랑 다른 것일까? 내 친구들 중 다수는 '마케팅'을 하고 싶다 했는데, 마케팅은 그럼 PR과 어떻게 다른 것일까? 그렇게 나는 첫 직장을 PR 에이전시로 택하게 되었다. 내가 들어간 곳은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당시에는 처우나 평판 등이 국내에서 제일 좋아 언론홍보 쪽을 전공한 친구들이 제일 가고 싶어하는 곳이었다. 그리고 스물다섯의 나는, 10년만에 온 한국도 낯선데 그렇게 조직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120명 남짓 되는 직원들이 일하고 있는 나의 첫 회사는 당시 주니어들에게 "PR 사관학교"라고 불리는 곳이었다. 나의 선배들은 대부분 절도있고, 깔끔하며, 무섭기도 하고, 예의 바르며, 꼼꼼했다. 프로페셔널 한데다 글도 잘 쓰고 말도 잘 하며 세련되기까지 했다. 당시의 나는 굉장히 덜렁거리던 사람이라 말도 안되는 실수를 자주 했고, 몇 달을 지나 조금 적응을 하며 <나는 PR을 하는 여성이야>에 조금씩 취하고 있었다. 그 쯔음 내 위에 경력직이 왔는데 여러모로 아쉬웠던 부분이 많았던 분이라, 시건방을 떨며 그녀를 가르치려 들어 나의 상사인 당시 부장님께 혼쭐이 났었던 적도 있다. 야근도 많고, 혼나기도 혼났지만 매일의 일이 너무 즐거웠다. 뉴스에 나오는 국가적으로 큰 사업의 일원 (이라고 하기엔 그 커다란 빙산의 발톱만한 일각이지만)이 된 듯한 느낌도, 해외에서 온 멋진 클라이언트들도, 녹취파일을 들으며 번역을 하고 클리핑을 하고 보도자료를 쓰는 그 모든게 참 재미있었다.


돌이켜보면 같은 회사 주니어 중 많은 사람들은 1년을 못채우거나 겨우 채우고 퇴사를 하기 바빴다. 그 친구들은 모두 나에게 "그 ㅇㅇ 대리님 무섭지 않아? 어떻게 버텨?"등을 물으며 본인들의 상사가 얼마나 비합리적인지, 부당한지, 쌀쌀맞은지에 대해 토로하며 직장을 무시무시한 곳으로 이야기 했는데, 나는 그 부분이 참 안타까웠다. 나는 꼼꼼하고 기획력이 번뜩이는 주니어보단, 씩씩하고 회복탄력성이 좋은 주니어였다. 분명 저 사람이 나보다 더 경력이 많을테니 나보다 보는게 많을테고, 그러하니 나에게 주는 피드백은 응당 합당할 것이라는 것을 베이스로 깔고 상사분들을 대하니 (나의 모든 답변이 예스는 아니었음에도) 관계는 대체적으로 좋았고, 나의 일적인 부족함 역시 그 분들의 피드백을 통해 서서히 채워져갔다. 뿐만 아니라, 지금 생각해도 내가 잘 했던 부분은 나는 함께 일하는 상사에 대한 흉을 다른 사람들에게 절대 보지 않았다. 지금 돌이켜보면 분명 순간순간 억울했던 포인트들도 있을법한데 싶기도 하지만, 그 때의 긍정적임은 누가 함께 일해도 전염될만한 초긍정적임이었다. 지난 일기들을 보면 각 상사와 나의 동료의 이름들을 나열하고 그 사람에게서 배울점을 써놓은 것을 보면 약간 소름돋기도 한다.


나 역시도 주니어들을 바라보며 나의 옛날을 곱씹는 연차가 되니, 확실히 사랑을 받거나 더 멀리갈 수 있는 주니어는 업무를 잘 하는 친구보다 애티튜드가 좋은 친구라는 생각을 한다. (일은 가르칠 수 있지만 인성은 가르치기 어려우니) 물론 업무도 잘 하는데, 애티튜드까지 좋으면 금상첨화고. 그래서 정말 똑똑한 친구들은 일을 잘 하면서도 본인의 좋은 애티튜드를 잘 지키는 것 같단 생각을 한다.


그렇게 주니어 시절을 보낸 후 대리직급을 달고 번아웃에 빠져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나는 총 4번의 이직을 했다. 정말 이건 아니다 싶어 3개월 다니고 뛰쳐나왔던 IT 기업을 제외하고는 (독재적인 대표 및 매일 나와 관계 없는 술자리에 끌고 다니던 상사, 춤을 추게 시키는 신입 장기자랑 등) 나름 3년 혹은 거의 3년을 채우고 다녔는데 각 단계마다 여러 성장을 했었던 것 같다. 무엇이 나의 원동력이었는지 돌이켜보면 사실 명확하진 않았다.


나는 그냥 일이 좋았다.


일을 하는 내가 좋았고, 일을 하며 스스로 발전하는 느낌이 좋았고, 바쁘게 보내는 하루의 느낌이 좋았으며 한 해가 끝나면 회고를 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는게 좋았다. 아쉽게도 이재에 밝지 않아 과거에 이직을 하는 과정 중 연봉을 중간에 내리기까지 한 사람이지만, 금전적인 보상은 나에게 우선순위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돌이켜보면 사내벤처를 시작했을 때 돈을 많이 벌어 내가 비싼 차를 몰게 해주겠다는 내부의 관계자분의 말씀도 내게는 너무나도 이질적이다 못해 몸 속에 여러 알러지반응이 났기도 했었다. 정말 사업가 마인드가 있는 사람이라면 그게 동기부여가 될 수 있었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사업가의 그릇의 사람이 아니었던 것 같다. 사실 돈을 안 좋아하는 사람은 어디있겠냐만서도, 어쩜 내 속에 금전적인 것에 대한 부정적인 관념 및 기제가 있었을 수도 있겠다 싶었단 생각을 최근에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도 직장을 선택할 때 돈이 우선순위가 아니다.


서른의 나이에 팀장 직급을 단 나는 정말 좌충우돌로 일을 했다. 처음에는 전형적인 '실무를 잘 했던 사람이 진급을 했을 때'의 행태를 보이며 올바른 팀 리딩을 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일을 했던 모든 팀원들과는 지금 굉장히 가까운 사이로 지내는데, 그런 것을 보면 나는 늘 나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어 나의 능력 이상으로 평가를 받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물론 모든 사람에게 환영 받지는 못했었다. 당시 작은 스타트업에 어린 내가 팀장으로 들어가게 되어 기존의 팀장으로 있었던 다른 팀 팀장님이 내가 어리고 다른 업계에서 왔으며 대표의 기대치가 높단 이유로 너무 견제하고 싫어해 매일 내가 출근하면 회의실에 불러 나의 아까운 한시간을 잡아먹으며 훈수를 두기 바빴다. 나는 다섯살이 많은 그녀가 왜 이리 내 앞에서 날카로운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나에게 늘 "나보다 더 산 사람은 나보다 경험이 많으니 더 현명하고 여유로워야 하지 않나"라는 고정관념이 있었기에. (분명 나 역시도 나보다 어린 사람들에게 그런 존재가 늘 되지 못한다는 것을 지금은 알면서도) 결국 그녀는 내가 입사하고 두세달이 지나 퇴사를 했으며, 업계에서 내 욕을 많이 하고 다녔다고 들었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회사생활은 일을 잘 하는 것보다 관계 형성이 중요하다는 아버지의 말씀은 맞았다. 그 연차 쯔음부터, 그 직급 즈음부터, 나는 그렇게 사람에게 비호감을 사는 편이 아니면서도, 간간히 이상한 구설이나 시기질투에 시달렸어야 했는데 나를 잘 아는 언니는 "너처럼 튀는 애는 구설 달고 살 수 밖에 없어"라고 표현을 했다.


정말 좋아했던 회사를 퇴사를 하게끔 만들었던 것 역시 많은 부분 차치하고 아주 짧게 정리하면 일부 사람들의 시기질투들에서 파생된 것들에서 오는 것이었고 (직접적인 원인보다, 나의 환경에 미치는 영향 등의 이유에 그로 인해 변한 내 마음으로) 나는 그 부분이 늘 피곤했다. 귀를 닫고 일을 하는데는 일가견이 있었지만, 어느 시점부터는 오해를 받거나 가스라이팅을 당하는 것도 참 지긋지긋 했다.


동료들의 시기질투는 안보이는 것처럼 하고 상대에게 내가 더 친절하게 행동하면 되었지만, 나보다 나이가 많고 높은 직급의 사람들이 조용하고 묵묵하게 일을 하고 있는 나를 굳이 그렇게 견제했다는게 사실은 실망스러웠고 그런 그룹에 속한 것이 어떤 부분으로서는 창피했다.


그 시기 많은 일들을 통해 내 연차에서의 직장생활은, 그리고 조직 속 "나"는 예전과 다르다라는 것, <맡은 일 잘 하고 사람들과 사이 좋게 지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것이 절실히 느껴졌다. 동시에 나 자신에 대해서도 점검을 해볼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퇴사를 한 회사 다음에 들어가려던 스타트업 역시 내부의 견제로 번복이 되며, 나를 어떻게든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모셔오겠다며' 진하게 공을 들이던 대표의 일처리 방식, 그리고 아직 오지도 않은 사람을 그렇게 견제하며 심지어 맞팔로우 상태라 내가 볼 수 있는 것을 알텐데 본인의 인스타그램 스토리로 저격을 하는 그 회사 임원의 (나에 대한 저격이 아니라, 본인 대표 보라고 올린거였던 것 같다 -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 들어와도 그 뛰어난 사람 위주로 조직이 짜여지면 조직은 산으로 간다 였나) 모습을 보고 가기도 전부터 그 곳 역시 나와 맞지 않는단 생각이 들었다. 얼마나 내부 소통이 안되면 인스타 스토리로 이럴까 싶기도 하며, 우습기까지 했다. 동시에 그 대표의 적극적인 구애에 드랍한 다른 기회들 때문에 속상했다.


사실 이 과정에서 가장 싫었던 것은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는 나" 그리고 "커진 나의 에고" 였다. 성향상 상황탓이나 남탓을 하기 싫어하지만, 몇 달동안 겪었던 것들은 단순히 내가 부족해서 라고 하기엔 맞지 않는 것들이 많았다. 에고가 팽창하여 혼자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다가, 궁극적으로 난 조직생활 자체에 안 맞나 싶었다.


경쟁도, 구설도, 사람들의 말도 참 싫었다. 누구나 어느 시점에 겪는 당연한 것일 수도 있는데 말이지. 어떻게 아버지는 한 조직에서 20년 이상 일을 했었지 싶을 정도로 연차가 하나하나 쌓일수록 주변의 잡음들은 피곤했다. 뿐만 아니라 이 연차에서는 (주니어도 시니어도 아닌 애매한 이 연차에서!) 나의 존재 자체가 누군가에게는 정말 거슬리는 위협이 될 수도 있다는게 놀랍기도 했다. 어차피 세금 떼면 다 고만고만한 월급 받는 사람들인데, 그 속에서 어떻게든 다른 사람을 밟고 앞으로 가겠다고 하는 것도 당시엔 의아했다. 프로는 그 모든 것을 즐긴다는데, 나는 그런 면에서 많이 부족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이 모든 경험을 할 수 있었던 것이 결국 더 맷집이 좋은 직장인으로 만들어준 과정인 것 같아 참 감사하다. 결국 그러한 경험들이 내가 지향하고 있는 것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해주었고, 아직 갈 길은 멀어도 마음 공부에 훌륭한 밑거름이 되어주는 것 같다. 결국 지금을 위해 경험했어야 하는 것들이란 생각도 들며, 과정에서 마주한 내가 몰랐던 나의 면들, 내가 어떤 것에 분개하는지, 어떤 부분에 미숙한지 역시 알게 되었다.


물론 일을 하는게 20대 때처럼 매일매일 즐겁진 않고, 가끔은 짜증나고 또 어쩔땐 권태롭기까지도 하지만 그래도 나는 스스로의 밥벌이를 하고 내 역할에 충실한 것이 참 좋다. 내가 옳다고 믿는 것을 지향하는 좋은 조직의 일원인 것이 참 좋다. 팀을 매니지하며 팀원분들을 보고 매일 새로운 과제를 함께 고민하며 더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참 많고, 매일매일 하루를 돌이켜보며 한뼘두뼘 자라있는 모습에 감사하다.


11년 동안 일을 하며 늘 내가 해야했던 업무나, 맡았던 역할은 달랐지만 변하지 않은 것은 딱 하나, 언제나 나의 마음가짐이었다. 배우려는 마음가짐, 배려하는 마음가짐, 겸손한 마음가짐 그리고 친절한 마음가짐. 이 부분만 쭈욱 가지고 있다면 십년, 이십년 뒤에도 이 직장생활이란 것 여러모로 피로해도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 (실제 그 때까지 할진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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