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년 전 본 사주풀이를 발견하다
"자기는 독신주의였어?"
퇴근 후 저녁을 먹으며 남편이 물어봤다. 내가 비혼주의자였다는 것을 알 텐데 새삼스레 그가 왜 물을까 싶었다.
"글쎄, 결혼 생각이 없었지?"라는 말에 그는 "왜?"하고 다시 물어보았다.
"음... 난 정말 일에 많이 매몰되었기도 했고, 너무 일을 사랑했었어. 그리고 그 당시 만나던 사람들과 결혼하고 싶단 생각도 안 들었었고 (보통 과거에 만나던 사람을 살짝이라도 언급하면 싫어하는 그가 아무 말 없이 내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들었다) 사실 엄마가 시집살이를 너무 심하게 겪은 것도 한몫했었어. 나는 엄마의 희생을 먹고 자랐지만, 엄마는 엄마가 되기 이전 정말 똑똑하고 멋진 그 여성 자체였는데 너무 포기한 게 많았어"라고.
나의 이야기를 유심히 듣던 남편의 콧평수가 갑자기 넓어지더니 으쓱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음, 이 모든 과정의 결론이 이상하게 귀결된 것 같다만.. 남편이 으쓱해하는 모습을 보니 귀여웠다. 그러더니 남편은 "나라 너를 만난 건 내 인생에 최고의 행운이라는 생각을 종종해"라고 이야기했다. 갑자기 난데없는 고백에 나는 물었다. "오빠 왜 그래?" (라고 하지만 나 역시도 남편과 결혼한 것이 잘한 일이라 생각을 한다)
지난 사진들을 찾다가 10여 년 전에 보았던 사주풀이를 발견했다. 당시 정말 유명한 분을 친척으로 두고 있는 (이 분의 이름은 웬만한 우리 또래의 사람들은 다 안다) 지인이 본인의 친척분을 비롯하여 본인 가족의 모든 것을 몇십 년째 봐주고 있는 분이라고 소개를 했었던 기억.
사실 사주 내용은 상세히 기억이 안 났는데 봉투 속 종이를 보니 그분이 그때 했던 말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당시 내게 서른여섯 살에 동종업계에서 만난 사람이나 외국인과 결혼을 한다고 했는데 실제 서른여섯 살에 사내연애로 만난 남자와 결혼을 해서 좀 신기했다. 그 외의 내용들은 아직 알 수 없는 미지수이지만 (아직은 그분이 말한 모습과 거리감이 있어 더 살아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당시 내게 결혼, 출산 등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 그분한테 정색하면서 "전 결혼을 안 할 건데요"라고 자신 있게 말했던 내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뭐 정말 이게 운명론적인 것인 것인지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겠다만, 나의 굳건한 믿음과 달리 결혼을 하고 출산을 준비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며 다시 한번 영원하거나 절대적인 것은 없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나를 잘 안다"라는 개념 자체가 얼마나 허상인지에 대해 새삼스레 느끼며 지금 이 순간의 내 생각이 내일 어떤 모습인지 알 수 없단 것, 그러니 마음조차도 믿을 수 없단 생각을 했다.
그러니 불필요한 고집을 부리지 말고 유연하게 사고하자라고 다시 한번 다짐을 했다. 그리고 믿거나 말거나의 사주풀이가 적힌 봉투는 다시 깊숙한 곳에 넣어두었다. 10년 뒤쯤 다시 우연히 만나게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