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색 실몽당이
나는 하루 종일 글을 쓴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노트를 펼치고, 하루를 정리하며 잠들기 전에도 다시 펜을 든다. 책상 옆에는 빼곡한 노트들이 줄지어 있고, 랩탑에는 수많은 파일이 쌓여간다. 모닝 페이지, 일기장, 에세이, 불렛저널 등 쓰는 방식도, 내용도 각기 다르지만, 본질적으로 모든 글에는 나 자신이 담긴다.
특히 감정이 벅차오를 때면, 생각할 틈도 없이 손이 먼저 움직인다. 어떤 감정이든 간에 나는 그것을 글로 풀어낸다. 너무 지치고 힘들 때, 가슴이 답답할 때, 혹은 기쁨이 벅차오를 때. 감정이 흐르는 대로, 나는 쓴다.
나쁜 기억과 감정들은 종이에 내려놓는 순간, 비로소 그 감정들과 마주하게 된다. 그럼 내가 불편해하는 것이 무엇인지, 힘들어하는 지점이 어디인지 깨닫게 된다. 그렇게 정리하다 보면, 다음번 비슷한 상황이 왔을 때 조금 더 유연하게 대처할 힘이 생긴다.
반대로 좋은 감정들은 다시 한번 곱씹고 기록하며, 그 순간을 더 선명하게 내 안에 남긴다. 마치 그때의 따스한 공기와 빛을 글 속에 머금어두는 것처럼. 모든 감정은 양분이 된다. 그렇게 되새긴 감정은 다시 나를 따뜻하게 감싸주고, 또 다른 날을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되어준다.
우리는 글을 "쓴다"고도 하지만, "풀어낸다"라고도 한다. 풀어낸다는 것은 곧 엉킨 것을 푸는 일이다. 마음속에 복잡하게 얽힌 감정을 하나씩 꺼내어 정리하고, 더 이상 나를 옥죄지 않도록 해방하는 일.
엉켜 있는 실타래를 조심스레 풀어가듯, 글을 쓰는 과정도 그렇다. 그렇다고 모든 실타래가 쉽게 풀리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아무리 해도 매듭이 단단하게 묶여 도무지 움직이지 않을 때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절대 풀리지 않는 것은 아니다.
감정이 엉킨 채로 방치되면 점점 더 단단히 꼬여버리지만, 글로 하나씩 들여다보고 실마리를 찾아내다 보면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풀어지기도 한다.
감정은 피할게 아니라, 오히려 살며시 들여다보고, 천천히 말도 걸어보고, 살살 구슬려도 보아야 한다.
풀어낸 실타래를 모아 다시금 동그랗고 예쁜 실뭉치로 만드는 과정을 지나고 보면, 여러 색의 실몽당이들이 우리 마음속에 굴러다니겠지. 그러면 그 실로 모자를 떠보기도 하고, 양말을 짜보기도 하고, 옷을 지어보기도 하자. 그것들은 딱딱하고 무겁기만 한 갑옷이나 방패가 아니라, 부드럽지만 든든하게 감싸주는 온기 있는 존재다.
그렇게 만들어진 옷과 모자를 입은 우리는, 단단하지만 딱딱하지 않고, 부드럽지만 쉽게 무너지지 않는 사람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또 한 줄을 적어 내려간다. 실타래를 살며시 풀어보면서.
글쓴이의 말
오늘은 조금 늦게 글을 발행했습니다.
오늘 하루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글을 쓰고, 맛있는 것을 먹고, 조금 수다도 떨며 보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보내셨는지요.
며칠 전 일입니다. 문득 나는 왜 감정에 호소하는 글을 쓸까, 왜 감정이 벅차오를 때 글쓰기를 주체하지 못할까 하는 물음이 마음속에서 오갔습니다. 왜 그렇게 쏟아 내고 싶어 하는지, 어쩌면 저도 정확한 이유를 모르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곰곰이 들여다보니, 저는 꽤 예민한 사람이더라고요. 그래서 저에게 오는 모든 순간을 '전부' 받아들입니다.
자극들을 무시하려 애써도 잘 안되고, 역효과만 났습니다. 결국 인정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그런 자신을 의식하지 않고 자연스레 감정을 정리하는 방법을 찾았는데, 그게 바로 글쓰기였나 봅니다.
글을 쓰고 나면, 좋은 글이든, 좋지 않은 글이든 후련하기만 했습니다.
그렇게 과거의 나는 그 모든 자극을 정리하기 위해 글을 썼습니다.
현재의 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남을 위한 글보다도 나를 위한 글처럼 여겨져, 어디에 내놓지도 못하고 간직하는 글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근래에 지난 글들을 다시 돌아보면서, 혹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일요일은 가끔씩 이렇게 내가 느낀 것들을 나누는 글을 발행해 보면 어떨까 합니다.
한 분이라도 공감한다면 그것으로도 마음이 좋을 것 같습니다.
본문보다 길어질 것 같아, 이만 줄여봅니다.
오늘도 이 시간이 작은 치유가 되었으면 합니다.
(사진: 자주 가는 카페에서 발견한 빨간 실뭉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