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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수 Oct 30. 2023

<나의 트랜지션 일기> 11장: 프로기노바

여성호르몬을 삼키다

[11장: 프로기노바]


호르몬치료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약 복용과 주사. 보통 사람들은 호르몬치료라고 하면 주사를 더 많이 떠올리는 것 같다. 내가 보았던 트랜스젠더들도 주사로 하는 경우가 훨씬 많았다.

주사는 ‘에스트라디올 데포’ 라고 하는데 2주 간격으로 맞는다. 병원에 가서 맞거나 혹은 처방 받아서 집에서 자가로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근데 나는 약으로 하겠다고 했다. 주사 맞으러 2주에 한번씩 병원가는건 귀찮고 그렇다고 자가로 하기엔 겁이 났다. 약먹는게 편할 것 같았다.

약은 ‘프로기노바’ 라고 하는 여성호르몬제를 먹는 방식이다. 사람마다 먹는 양은 조금씩 다를텐데 나는 매일 2mg 짜리를 두 알씩 먹었다. 

약이든 주사든 여성호르몬제가 들어가면 신체적으로 변화가 생긴다고 한다. 대표적인 변화로는 몸이 더 부드러워지고, 가슴이 나오기 시작하고, 또 감정기복이 심해진다. 나는 이 모든걸 겪었다. 원래도 그다지 근육질이거나 투박한 몸은 아니긴 했는데. 그래도 뭔가 더 부드럽고 말랑해지는 느낌이 있긴했다. 가슴은 뭔가 몽우리진 느낌이 들면서 조금씩 나오기 시작했고 뛰거나 계단 내려올 때 통증이 조금 있었다. 가장 결정적으로는 감정기복이 심했는데, 이것 때문에 꽤 고생했다. 원래의 나는 감정변화가 잘 없고 무던한 편이었는데 프로기노바를 먹기 시작한 후에는 하루에 몇 번씩, 작은 일로도 몇 번씩 감정이 오르락내리락 널뛰기 했다. 누군가의 사소한 말 한 마디로도 기분이 좋아졌다 나빠졌다 웃었다 울었다. 나 자신도 이런 모습이 너무 낯설었다.

영화나 드라마 보면서 우는 일도 많아졌다. 이 부분은 내가 남성으로 사회화되면서 감정표현이 억눌려있었는데, 그것에서 해방되면서 오는 변화이기도 했을 것이다.      



안드로쿨과 프로기노바.

프로기노바와 또 한 가지 내가 먹었던 것은 ‘안드로쿨’ 이라고 하는 남성호르몬 억제제다.

사실 신체적 변화로만 치면 프로기노바보다 안드로쿨이 훨씬 강력하다.

무슨 변화냐고 하면 바로 ‘발기의 억제’ 이다. 이 부분이야말로 특히 mtf 트랜스젠더가 아니라면 알기 어려운 부분일 것이다. 남성으로 분류되는 신체를 가진 사람은 페니스의 발기를 자주 경험한다.

꼭 성적인 흥분을 했을 때 뿐만 아니라 아침에 일어났을 때나 아니면 그냥 무심결에 만지다가도 불쑥 발기가 되곤 한다. 불수의근(不隨意筋)이라서 내 의지대로 조절할 수가 없다. 나는 그래서 이 부분에서 디스포리아가 심했다. 내가 내 신체를 의식하고 싶지 않아도, 의도치 않게 발기가 될 때마다 내 신체를 의식하게 되고, 그 기분이 되게 비참했다. 그런데 안드로쿨을 먹기 시작하면서 발기가 억제되니까 그런 불편감이 많이 해소되었다. 


프로기노바와 안드로쿨은 시작한지 약 3개월 정도의 기간이 지나면 돌이킬 수 없게 된다고 한다.

돌이킬 수 없게 된다는건 생식능력을 상실하게 된다는 의미다. 

그러니까 호르몬치료를 시작해보고 나서 마음이 바뀌어서 중단하는 경우도 있는데. 일정기간이 지나면 중단해도 다시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으니 신중해야 한다고 의사가 그랬다. 

나야 뭐 워낙에 확고했으니 당연히 돌아갈 마음따윈 없었으나 개중에는 고민되거나 혼란스러운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호르몬치료를 비용이나 여러 현실적 문제 때문에 중단하는 사람도 있지만 마음이 바뀌어서 돌아가고자 하는 사람도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다. 다양한 경우가 존재하니, 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다양한 선택지가 처음부터 주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특정 성별로 살고싶을수도, 특정 성별이 아니라 그저 원하는 모습으로 살고 싶을수도, 아니면 내가 원하는게 성별의 문제인건지 아닌건지 알고싶을수도 있고 사람은 다양하다.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더 많이 더 치열하게 고민할 수 있는 선택지와 환경이 사회적으로 주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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