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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수 Oct 31. 2023

<나의 트랜지션 일기> 12장: 성별이분법을 위반하다

가혹한 위반의 대가

[12장: 성별이분법을 위반하다]


나의 성별정체성에 대해 고민을 하고, 정체화를 하고, 내가 원하는 모습대로 살고자 하는 과정은 끝없는 투쟁의 연속이다. 이 사회에서 규정해놓은 틀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려고 하는 순간 무수한 차별과 억압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학교에서 ‘튀지 않기’를 배운다. 규정에 따라 머리길이와 복장 등의 외형이 획일화 되고, 조금이라도 남들과 다르거나 두드러지는게 있으면 주의를 받기도 하고, 또래들로부터 따돌림을 받기도 한다. 운동장 조회 시간에는 수백명의 학생들이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일률적으로 줄을 맞춰야 하고, 체육시간에는 체조에 구호붙이는 것을 한 명이라도 틀리면 ‘쟤 한 명 때문에 다시 한다’ 라면서 그 틀린 한 사람을 탓하게 끔 배운다. 이것이 학교 밖 사회에서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 같다. 내가 해외생활은 해보지 않아서 다른 나라는 어떤지 모르겠는데, 우리 사회는 남의 눈치를 너무 많이보고 남들과 조금이라도 다른 모습을 갖는걸 두려워한다. 특히나 성(sexuality)과 관련된 부분은 훨씬 더 엄격하고 보수적이다. 남자는 남자답게 이러이러해야 하고, 여자는 여자답게 이러이러해야 한다 라는게 매우 강하다. 물론 요즘 시대는 (여전히 성차별이 공고하다는 것과 별개로) 과거에 비해 성역할 고정관념이 많이 무너지긴 했다.

이제는 누군가가 “여자는 조신하게 집안일이나 해” 라는 말을 사람들 앞에서 대놓고 한다면 싸늘한 시선을 받게될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남성성과 여성성에 있어서 무너지지 않은 벽이 있다. 바로 남자 혹은 남자로 보이는 사람이 치마를 입는 것이다. 복장에 있어서 남성이 입는 옷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개 그냥 ‘사람이 입는 옷’ 으로 분류되고, 따라서 여성이 입어도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기껏해야 ‘조금 보이쉬하게 입었네’ 정도일 것이다. 그러나 여성의 옷으로 분류되는 옷들의 경우는 다르다. 여성의 옷은 ‘사람’이 입는 옷이 아니라 ‘여성’이 입는 옷이다. 굉장히 성별화가 되어있다. 브래지어,원피스,블라우스,치마,스타킹 등을 떠올려보라. 이런 옷을 남성이 입을 수 있는가? 남성이 입는 경우를 본 적이 있는가? 대개 미디어에서 남성이 소위 ‘여장’을 하고서 과장된 여성성을 수행하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이고자 하는 경우를 빼고는, 일상에서 ‘치마 입는 남자’를 볼 일이 거의 없을 것이다. 애초에 치마를 입고자하는 남성이 잘 없긴 하겠지만 있어도 시도하기가 매우 어려울 것이다. 당장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공중화장실 픽토그램만 봐도, 그냥 ‘사람’을 그려놓은 그림이 있는게 ‘남자’화장실 이고, 그 사람에게 치마를 입혀놓은 그림이 있는게 ‘여자’화장실이지 않은가. 이렇게 치마입은 사람 = 여자라고 학습시키는 사회에서, 개인이 혼자 그 규범을 깨는건 어려운 일일 수밖에 없다.

근데 그 어려운걸 내가 해봤다. 물론 ‘여자옷’을 입고서 사진도 찍어보고 했지만, 그냥 외출 시에도 입은채로 돌아다녀보고 싶었다. 그냥 내가 입고싶은 옷을 입고 다니겠다는데 무슨 상관일까 싶었다. 그런데 상관이 있더라.     


우리 사회에서 성별이분법이 가장 강하게 작동하는 공간인 공중화장실. 치마=여성이라는 규범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와중에 여자는 허리도 잘록하게 그려놨다.

그 당시 다니던 교회 청년부에서 mt로 어디 놀러간 적이 있었다. 당시에는 호르몬치료 받기 전이었고, 투블럭 머리스타일에 안경을 낀, 그냥 평범한 남성의 외형이었다. 그런데 예배도 아니고 놀러가는 거니까 좋아하는 옷을 입고 싶었다. 화장을 하고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서 집을 나섰다. 외적으로만 보면 남자가 ‘여장’을 한 모습이었다. 길거리나 대중교통에서도 흘끗거리는 시선들이 느껴지긴 했다. 청년부원들이랑 만나서 월미도 놀이동산을 갔다. 당시 청넌부원들에게는 미리 커밍아웃을 해둬서 문제될게 없었고, 나로서는 일행이 있으니 마음이 놓이기도 했다.

그런데 문제는 일행들이 다 놀이기구 타러가고 나 혼자 남아있을 때 발생했다. 청소년으로 보이는 5~6명의 남자무리들이 혼자있는 나를 보고서

“저 사람 봐봐, 여장했어!”


라고 큰 소리로 손가락질을 하며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당시의 나는 화가 나거나 불쾌하기보단 무서웠다. 남성집단에서 여성이나 ‘여성적’인 남성에 대한 멸시와 혐오가 심하다는 것을 모르는 바가 아니었기에, 혼자있던 나는 괜히 해코지를 당할까봐 무서웠다. 그래서 신속히 그 자리를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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