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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수 Nov 01. 2023

<나의 트랜지션 일기>13장: 성별이분법을 위반하다2

나를 찾기위한 투쟁

[성별이분법을 위반하다(2)]


한 시민단체 행사에 참가했을 때도 문제를 겪었다. 같이 다큐멘터리를 보고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였다. 그때도 역시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갔었다. 다큐가 끝나고 다음 코너 진행하기 전에 잠깐 쉬는시간을 가졌는데, 어떤 남성이 나에게 다가와서 인사를 하더니 나를 이상한 눈으로 훑어보면서

“근데..연극하세요? 왜 여장하셨어요?”


라고 하는게 아닌가. 그 때도 무서워서 자리를 피했다. 바로 주최즉에 말했더니 주최측은 행사 끝날때까지 그 남자와 마주치지 않게 해주었고, 그 남자에게 강력한 경고를 주었다고 했다. 주최측의 발빠른 대처 덕분에 안심할 수는 있었지만 그 남자에 대해서는 정말 의아하고 불쾌했다. 아니 그래, 신기할 수는 있다고 쳐. 그럼 마음속으로만 신기해하면 되지 초면인데도 왜 굳이 쫓아오면서 물어보지? 내가 입고싶은 옷 입겠다는데 무슨 상관이지? 남자가 치마 입으면 세상이 무너지기라도 하나?

그 일 직후, 한 여성활동가가 나와서 발언하는 순서가 있었다. 그 분도 역시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내 뒤쪽에서는 그 분의 지인으로 보이는 남성이 나지막히 “오 원피스~” 라고 하는 소리가 들렸다. ‘평소엔 치마 잘 안입는데 오늘은 이쁜옷 입고왔네’ 라는 듯한 늬앙스였다. 나는 순간 되게 아이러니함을 느꼈다. “오 원피스~” 라고 감탄을 내뱉는 그 말이 별로라는것과는 별개로, 내가 ‘여성’ 일 수 없음을, 내가 성별이분법 사회에서 이물질적인 존재임이 재확인 되는 순간이라 굉장히 기분이 비참했다. 왜 누군가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이, 때로는 칭송받기도 하는 일이, 왜 나에게는 경멸과 멸시와 혐오의 시선을 받는 일이 되어야 하는건가.



     

문제의 원피스. 너무나 많은 혐오를 당한 나머지 스트레스를 감당하지 못하여 칼로 찢어버렸다.

교회에서는, 그 청년부 mt 사건 이후에 목회자가 나를 따로 불렀다. 중년의 남성이었던 그는, 그 날 내가 원피스 차림으로 나온 것을 보고 아주 크게 당황했었는데, 아니나다를까 그 일 때문에 나를 따로 불렀다. 그는 내 손목에 대한 언급으로 대화의 서두를 깔았다. 당시 내 손목에는 자해흉터가 있었다.  

“너의 손목에 있는 흉터를 보았다, 그래, 네가 얼마나 힘든지는 안다. 하느님은 남자와 여자를 만들었고, 또 너와 같은 성소수자도 만들었다. 그러니 네가 기죽거나 죄책감 가질 필요 없이 떳떳하게 살면 된다” 는 말이었다. 사실 여기까지만 들었을때도 별로 느낌이 좋지 않긴 했다. ‘나는 너에게 편견이 없다’ 라며 인정해준다는 듯한, 묘하게 시혜적인 늬앙스. 그런데 본론은 그 다음부터였다. ”그런데 네가 성소수자인 것과는 별개로, 네가 티를 내고 다니면 불편해하는 사람들도 있으니 그 사람들을 생각해서 티는 내지 않았으면 좋겠다. 서로 배려하면 좋겠다“ 라는 말을 하더라. 아아 결국 이 말을 하고싶었던 거구나. ‘티를 내지 말라’ 라니. 그래, 내가 원피스 입은 모습을 보고 많이 당황했겠지. 그런데 뭐? 내가 그런것까지 ‘배려’ 해줘야 한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나는 그냥 나일 뿐이고,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살고자 하는 것 뿐인데, ‘배려’ 라니? 왜 내가 나를 감춰야 하지? 당신들은 그냥 당신들이 원하는대로 살잖아? 당신들은 당신들이 입는 옷에 일일이 타인의 허락을 구하나? 당신들의 무지와 편협함의 문제인 것을 왜 나한테 돌리지?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굳이 목회자와 말싸움 하고싶지는 않았다. 나는 그 날 이후로 그 교회를 떠났다.      


오프라인 뿐만 아니라 온라인 공간에서도 성별이분법을 위반한 대가를 나는 혹독하게 치러야 했다. 당시 페이스북에 성별정체성에 대한 고민이나 당시 찍었던 사진들을 올리곤 했었는데 물론 지지와 응원을 보내줬던 사람들도 많았지만 욕설이나 혐오발언, 모욕적인 질문에도 많이 노출되곤 했었다. 지금이야 누가 나를 어떻게 보던, 뭐라고 하던 크게 감흥이 없지만 당시에는 누군가의 한 마디 한 마디에도 크게 휘둘리곤 했다. 진정한 자신을 찾기 위해 애쓰는 나를 멋지다고 응원해주는 사람부터, 가벼운 호기심으로 쉽게 말을 던지거나 조롱하는 사람까지 주변 반응의 스펙트럼은 넓었다. 당시는 누가 나의 적이고 누가 나의 아군인지를 판별하느라 에너지를 많이 썼던 것 같다.       


익명질문을 하라고 했다가 이런 소리들을 들었다. 도대체 남의 가랑이 사정이 왜 그렇게 궁금한건지.

그 때의 모든 싸움을 견뎌낸 내 자신에게는 정말 수고했다는 말을 해주고 싶고, 나를 지지해줬던 사람들에게는 다시 한 번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지금의 나에게 있어서도 안전한 사람과 안전한 공간을 감지하고 분별하는건 매우 중요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과도하게 휘둘리느라 에너지를 낭비하고 싶지는 않다. 지금 이렇게 글을 쓰는 것처럼 내가 싸워왔던 경험들을 자원으로 삼아 앞으로 다른 사람들을 지지하고 다른 사람들의 고통에 연대하는 데에 쓰고싶다.


이렇게 귀한 지지의 말을 받기도 했다. 나도 누군가에게 이런 말을 건넬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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