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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수 Nov 02. 2023

<나의 트랜지션 일기> 14장: 트랜지션 진행

시작된 수술의 여정

[14장: 트랜지션 진행]


그러한 일들을 겪고나서, 한동안은 입고싶은 옷들을 미뤄뒀다. 의료적 트랜지션과 더불어 외형을 갖추는게 먼저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은 안경부터 벗기로 마음먹었다. 초등학교 3학년때부터 수십년 안경잡이 생활을 해온터라, 그전까지는 안경을 벗는다는 생각을 해보지 못했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안경을 계속 쓴 상태로는 내가 원하는 모습을 추구하는 데에 있어서 한계가 있을 것 같았다. 당장 화장을 할 때에도 안경이 불편했다. 물리적으로 불편한것도 그렇고, 화장을 다 해놔봐야 안경을 쓰면 가려져서 소용이 없어지는 것 같았다. 아, 이래서 여성 중에서 안경을 쓰는 사람이 남성에 비해서 압도적으로 적은걸까? 당연히 선천적으로 여성이 시력이 더 좋아서가 아니라 다들 렌즈를 끼거나 라식/라섹 수술을 해서 그렇겠지. 나도 렌즈는 시도해봤는데 눈알에 무언가를 넣는다는게 거부감 내지 두려움이 들어서 쉽지 않았다. 그리고 설령 익숙해진다고 해도 매번 뺏다꼈다 하는게 귀찮을 것 같아서 라섹수술을 하기로 결심했다. 일단 안경만 벗어도 외모에 큰 변화가 생기는거니까. 수술이 긴장되긴 했지만 잘 끝났고, 한 이틀간은 통증이 있었으나 차츰 가라앉았다. 와, 안경을 안 쓰니까 이렇게 편하구나. 씻을 때, 잘 때, 옷갈아입을 때, 김 서릴 때 등등의 상황에서 안경을 벗었다 썼다 할 일이 없으니까 너무 편했다. 그리고 외모적으로도 안경이 없으니 덜 답답한 느낌이고, 화장할 때도 편했다. 만족!


라섹수술을 하고 약 반년 후엔 성형수술을 했다. 소위 ‘안면 여성화’ 라고 불리는 수술이다.

사람의 얼굴에는 남상/여상을 결정짓는 요소가 있다. 그런게 어딨냐! 성 고정관념 아니냐! 라고 할 사람도 있겠지만 일단 사회에서는 그렇게 나눠놓고 있고, 실제로 우리들도 ‘남자같이 생겼다’ 혹은 ‘여자같이 생겼다’를 무의식중에 판단하지 않는가? 그 판단을 결정짓는 요소가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는 ‘T 존’ 이라고 불리는 부분이다. 얼굴에서 양 눈썹 가운데 T자 모양을 그리는 부분. 이 T존이 도드라져보이면 남상으로 분류된다. 그러니까 우리가 누군가의 얼굴을 보고 ‘남자답게 생겼다’ 라고 느낀다면 대개 이 T존이 발달되어 있는 사람인 것이다. 나 역시도 이 T존이 도드라져 보였고, 이게 거슬렸다. 인터넷으로 성형외과를 찾아보고, 어떤 다른 트랜스젠더 분이 수술을 받았다는 후기를 보고 나도 안도감이 들어 그 병원을 찾아갔다. 상담을 받고서 이마거상과 쌍수를 하기로 했다. 이마를 다듬어서 T존을 없애고, 쌍커풀수술을 해서 눈이 커보이게 하는 것. 사실 수술 직후엔 통증이 있어서 힘들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통증은 가라앉았고 부어있던 이마와 눈도 자리를 잡아갔다. 회복이 되고나니 확실히 수술 이전과 외형적으로 큰 차이가 있었다. T존이 흐릿해지고 눈은 크고 또렷해졌으니 확실히 조금 더 ‘여성스러운’ 얼굴이 되었다.      


그리고는 목소리도 바꾸고 싶었다. 나는 원래 남자 중에서도 중저음에 속했다. 종종 목소리가 멋지다는 칭찬도 들을 정도였다. 그래서 사실 나는 이전까지는 내 목소리를 좋아했지만 이제는 바꾸어야 했다. 찾아보니 ‘음성여성화 수술’ 이라는 것이 있었다. 성대를 잘라 짧게 만들어서, 높은 음역대의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만들어주는 수술이었다. 수술 후 성대회복기간이 필요해서 1개월은 아예 말을 못한다고 했다. 바로 이 문제 때문에 회사와의 관계에서 고민이 되었다.

당시에 회사에서는 직속상사와 대표한테만 커밍아웃을 한 상태였는데, 1개월이나 회사에서 묵언수행을 하게 되었으니 사정을 말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어차피 이미 내 외형도 변화하고 있었고, 회사 사람들에게도 언젠가 커밍아웃을 하려고는 했었다. 그래서 나는 어떠어떠한 사람이고, 그렇기에 어떠어떠한 수술을 받으려고 한다고 수술전에 모두에게 공개적으로 얘기했다. 별 반응이 없던 사람도 있었고 응원한다고 해준 사람도 있었다. 어쨌든 얘기하고나니 속은 편했다.


수술 내용과 당시 회사 카톡방에 커밍아웃 했었던 내용. 여러모로 신경쓸게 많았다.  


수술을 받고나서 회사에서 누구와 대화할 일이 있을때는 필담으로 소통했다. 내가 콜센터 같은 직종이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한 달이 지난 후에는 조금씩 말을 할 수 있게 되었고, 병원을 다니며 음성훈련을 받았다. 성대가 바뀌었다고 해서 목소리가 갑자기 드라마틱하게 바뀌는 것이 아니라 발성법도 바꾸어야 달라진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원래 말하던 방식으로 말하면 이전보다 약간 얇아진 허스키한 목소리가 나왔고, 병원에서 알려주는대로 의식해서 높게 말하면 여성음역대까지 올라오긴 했다. 하지만 굳이 계속 훈련을 받아서 억지로 더 바꾸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게 의식해서 높게 말하는게 힘들기도 했고, 나는 지금의 허스키한 중성적 목소리도 만족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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