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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수 Nov 06. 2023

<나의 트랜지션 일기> 16장: 젠더 디스포리아

신체라는 감옥

[16장: 젠더 디스포리아]



우리 모두는 태어났을 때, 우리의 의지와 무관하게 성 염색체와 생식기에 따라 남성이나 여성으로 지정받는다. 그런데 트랜스젠더는 이렇게 지정받은 성별 자신이 정체화한 성별이 불일치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불일치로 인해 트랜스젠더들이 신체적·정신적·사회적으로 겪는 고통을 젠더 디스포리아 내지 성별불쾌감이라고 부른다.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건 신체적 디스포리아일 것이다. 트랜스여성은 ‘몸은 남자인데 정신은 여자’ 혹은 ‘남자 몸에 갇힌 여자’ 라는 수식어로 묘사되는데, 자신의 ‘남성스러운 몸’ 때문에 고통을 호소하는 이야기들이 많이 알려져서 그런 것 같다. 자신의 몸과 불화한다는 것. 이것은 단순히 ‘외모 불만족’ 과는 좀 다르다. ‘내 몸이 좀 더 어땠으면 좋겠다’ 의 정도를 넘어선, ‘나의 존재자체’ 의 문제라고나 할까. 죽어버리고 (내가 원하는 성별로) 다시 태어나고 싶다고 느끼기도 한다. 트랜스젠더가 겪는 디스포리아와 고통, 억압에 대해서는 매우 할 말이 많지만 천천히 하도록 하고, 우선 내가 셩확정 수술(SRS)을 하기전까지 느꼈던 신체적 디스포리아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도록 하겠다.     


치마를 입어보기 시작하면서 가장 거슬렸던건 다리털이었다. 나는 여성들의 하얗고 가늘 매끈한 다리를 동경했었고, 그런 다리라인이 부각되는 짧고 달라붙는 치마를 좋아했다. 그런 치마를 입기 위해서는 날씬하기도 해야겠지만 우선 다리털부터 없애야 했다. 내 종아리에 수북한 다리털이 몹시 흉하게 느껴졌다. 그냥 면도칼로 밀기만 하면 다시 금방 자라나기에 레이저제모를 받게 되었다. 나는 본디 체격이 크거나 살집이 아주 많은 편은 아니었기에, 털을 다 없애버리니 그래도 그럭저럭 ‘여자 다리’처럼 보였다. 다리털과 더불어 또 없애야 할 중요한 털은 얼굴털이었다.

인중쪽과 턱쪽에 계속해서 수염이 자라나기에 나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하루에 한 번 혹은 이틀에 한번씩 면도를 하고 있었다. 그 당시엔 별 생각이 없었지만 내 정체성을 찾은후부터는

매우 거슬렸다. 하루하루 면도를 할때마다 회의감과 자괴감이 들었다. 화장을 할 때 수염자국이 의식되는 기분도 싫었다. 그래서 다리털 제모 이후에는 수염도 제모를 받았다. 완전히 안나는건 아니지만 확실히 양이 줄어서 만족스러웠다.     


다리 제모한 직후 사진 



털 이외에는 아무래도 여성을 상징하는 두 부위에 대한 디스포리아가 심했다. 다른 여성들처럼 가슴과 음부를 갖고싶었다. 성기에 대해서는 여성기가 없다는 것보다 남성기가 있다는 것이 괴로움의 핵심이었다. 매일매일 가랑이 사이가 의식이 될 때마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불쾌감이 엄습했다. 겉모습은 여성으로 패싱된다고 하더라도, 아직은 몸이 갖춰지지 않았으므로 공중화장실 사용할 때는 사람들을 속이는거 같아서 마음이 불편했다. 특히나 남자들이 여자화장실 들어가서 범죄를 저질렀다는 뉴스를 접할때가 제일 힘들었다. 내가 나를 여성으로 정체화했어도 어쨌든 법적으로는 남성인거니까, 행여 내가 그런 (남성)범죄자들처럼 보일까봐, 내가 다른 여성들한테 민폐를 끼칠까봐 두려웠다. 

내 신체가 그대로라면 사람들이 봤을때는 그냥 ‘여장남자’ 일뿐이라는 사실이 괴로웠다.



안티페미남성들과 키배뜨던 시절, 정체성과 관련하여 무수한 공격을 받았었다.



 빨리 몸을 바꾸고 싶었다. 그 괴로움과 압박이 얼마나 컸으면 성기수술을 하고난 직후 눈을 딱 뜨자마자 든 생각이 ‘이제 나는 떳떳하다’ 라는 것이었다. 더 이상 속이거나 숨긴다는 죄책감 없이 세상에 떳떳해질 수 있다는 해방감이 있었다.

흉물스럽게 느껴지던 남성기를 제거한 뒤 내 시선은 상체로 향했다. 거울을 볼때마다 밋밋한 내 상체가 자꾸 남자몸처럼 느껴져서 디스포리아가 있었다. 내 몸에 곡선을 갖고 싶었다. 허리-골반으로 떨어지는 잘록한 라인은 어떻게 할 수 없다고 치더라도, 가슴은 인위적으로 만들 수 있으니까. 과도하게 큰거는 바라지 않지만 옷을 입었을 때 가슴이 있는 티가 나는 정도이길 바랐다. 몸이 충분히 회복되고 난 후 가슴수술을 했다. 이렇게 위아래 수술을 마친 뒤 거울에 비친 내 몸을 봤다. 100% 만족스럽진 않더라도 그래도 썩 ‘여자 몸’ 같이 보였다. 그렇게 신체적 디스포리아가 많이 해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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