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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수 Nov 07. 2023

<나의 트랜지션 일기> 17장: 성확정 수술(1)

sex reassignment surgery

[17장: 성확정 수술(1)]



처음부터 성확정 수술을 할 생각이 있던건 아니었다. 돈도 많이 들고,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니까. 트랜스젠더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에서 수술이 꼭 필수가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런데 뭐랄까, 호르몬치료를 진행하면서 ‘여성의 몸’을 갈망하는 마음이 점점 커저갔다. 근육이 빠지면서 몸이 좀 더 부드러워진거 같긴한데, 아무래도 그 부위가 계속 걸렸다. 안드로쿨을 먹기 시작한 뒤로 성기가 수축되고 발기가 잘 안되게 된건 만족스러웠지만, 그래도 있다는 것 자체가 싫었다. 어차피 나에게 있어 페니스는 소변보는 것 외에는 의미가 없는데..그럼 없어도 되지않나 싶었다. 나에게 있어서 쓸모도 없고 걸리적거리기만 하는 흉측한 부위 하나 때문에 계속 남성으로 취급받아야 한다는게 너무나도 싫었다. 물론 여성기를 갖고싶은 마음도 당연히 있었으나 굳이 따지자면 여성기를 갖고싶은 마음보다 페니스를 없애고 싶다는 마음이 훨씬 컸다.   


보통은 가슴수술을 먼저 하고 밑에를 한다는데 순서가 뭐 중요한가. 가슴수술은 일단 제쳐두고 우선 성확정 수술을 하기로 결심했다. 차분히 병원과 비용, 수술방법 등 수술과 관련된 정보에 대해서 찾아보았다. 태국이 잘하기로 유명해서 보통은 태국을 많이 간다고들 하는데, 찾아보니 예전 시대와 달리 요즘은 우리나라도 이쪽으로 의학이 많이 발달했다고 했다. 기능이나 디자인(?)면에서는 여전히 태국이 더 뛰어나긴 했지만 한국에서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얘기들이 있었다. 솔직히 나는 이렇게 큰 수술을, 말도 안 통하는 낯선 나라에 혼자 가서 받는다는 게 겁이나고 무서웠다. 태국에서 받는다면 이것저것 알아봐야 할 것도 더 많을 것이고, 통역해줄 사람과 케어해줄 사람도 필요할텐데 엄두가 안 났다. 그래서 태국보다 약간 부족하더라도 마음 편하게 한국에서 받기로 했다. 긴장된 마음으로 병원에 전화를 걸어 상담을 받았다. 비용과 절차에 대해 안내받고, 대략적으로 계획을 세워보았다. 가장 큰 이슈는 당연히 비용이었다. 약 2천만원이 넘어가는 수술비가 당시 내 수중에는 없었고, 그 비용을 마련하려면 꽤나 시간이 걸릴 터였다. 그래서 급한대로 대출을 받기로 하였다. 내가 대출까지 받게될거라고는 생각을 못해봤는데 당시엔 마음이 너무나 간절했고 급박했다. 고정적인 직장이 있는 상태였기에 대출을 받을 자격은 되었다. 은행에서 사유를 물어보길래 자세히는 말 못하고 ‘건강상의 이유로 수술’ 이라고만 했다. 대출을 받고나서는 병원에 가서 수술날짜를 잡았다. 아무래도 워낙 큰 수술이다보니 몇 개월간은 일정이 꽉 차 있었다. 대략 n개월 후로 날짜가 잡혔다. 몇 월 며 칠이라고 날짜가 적힌 종이를 보니 수술이 실감이 되었다. 아, 드디어 하게 되는구나. 캘린더에 적어놓고 그 날만을 기다렸다. 시간이 매우 더디게 느껴졌다.

회사에서는 미리 사정을 설명하고 그 시기에 병가를 쓰는 것을 허락 받아뒀다.  

      


수술전에 해야될 검사도 많았다.

수술 전에 필요한 검사를 받고, 수술과 관련하여 이러저러한 안내를 받았다. 입원은 약 1주일로, 월요일에 입원하여 수요일에 수술한 뒤 그 다음주 월요일에 퇴원하는 일정이었다. ‘아니 그렇게 큰 수술인데 입원기간이 너무 짧은거 아닌가?’ 싶었다. 알아보니 일주일이면 ‘걸을 수는 있게된다’ 고 하더라. 그리고 병원에서는 병실에 대한 안내도 해주었다. 어쨌든 당시는 내가 법적으로 남성이었기 때문에 남자병실을 써야 하는데 괜찮으시겠냐는 거였다. 뭐 그건 어쩔 수 없겠다 싶어서 알겠다고 했다. 뒤에서도 얘기하겠지만 이게 트랜스젠더들에게 법적성별정정이 필요한 이유 중 하나다. 그렇게 입원 날짜가 하루하루 다가오고 있었다. d-5, d-4, d-3, d-2, 하루 전 날 밤에는 가슴이 엄청 콩닥거렸다. 그리고 마침내, 입원 당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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