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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수 Nov 08. 2023

<나의 트랜지션 일기> 18장: 성확정 수술(2)

수혈동의서에 서명하며

[18장: 성확정 수술(2)]



입원 당일. 지정된 시간에 맞춰 서울에 있는 국립중앙의료원에 도착하였다. 아니나다를까, 내 손목에는 내 이름과 법적성별이 적힌 팔찌가 채워졌다. 내가 남자병실을 쓸 수 밖에 없음이 확인사살되는 기분이었다. 입원절차를 마치고 병원복으로 갈아입었다. 내가 쓰게된 병실은 2인실이었는데, 옆자리 환자랑은 최대한 마주치지 않으려고 신경써서 퇴원할때까지는 한 번도 마주치지 않을 수 있었다. 

문제는 역시 또 화장실이었는데, 당시에 나는 이미 여자화장실을 쓰고있을때였지만 ‘남자’라고 적힌 팔찌를 차고 ‘남자’병실에 입원한 것이므로 남자화장실을 써야할 것 같았다. 수술 전날 소변을 보러 화장실을 들어가다가 어떤 할아버지랑 마주쳤다. 당황하시면서 “남자 분..맞으세요??;;” 라고 하셨던게 기억이 난다. ‘어차피 이제 수술하니까. 내 인생의 마지막 남자화장실이다’ 라고 생각하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수요일이 수술인데 수술 전 대장내시경을 위해 공복을 유지해야 했다. 월요일은 굶고 화요일에 대장내시경을 했다. 안그래도 수술을 앞두고 긴장되는데, 아무것도 못먹고 내시경을 위한 이상한 액체만 마시고 있으니 꽤나 고역이었다. 화요일은 대장내시경 이외에도 수술에 대한 설명을 듣는 날이었다. 의사가 수술에 대한 설명을 하고, 수술 시 출혈이 많이 발생하므로 중간에 수혈이 필요할 수도 있다면서 ‘수혈동의서’ 라는 것을 내밀었다. 사실 나는 수술전까지 수술에 대해서 최소한의 정보만 알아보고, 통증이나 부작용이나 위험성에 대해서는 일부러 찾아보지 않았었다. 어차피 할건데 괜히 지레 겁먹기 싫어서다. 그런데 수혈동의서에 서명을 하고 있자니 그제서야 새삼 두려워졌다. 아 이게 굉장히 크고 위험한 수술이긴 하구나 싶어서. 그러고나서는 의료진들이 우루루 다가와 내 앞에 서서 인사를 하였다. 워낙 큰 수술이다보니 여러 분과들의 의사가 필요한 것이다. 그 분들은 정해진 업무적 절차일 뿐이었겠지만 내 입장에서는 수혈동의서와 같은 맥락에서 또 다시 겁이 났다. 그렇게 화요일 밤이 되었다. 병실에 우두커니 누워 SNS를 뒤적거렸다. 잘 못먹은 데다가 긴장한 탓인지 컨디션이 그다지 좋지않게 느껴졌지만 친구들과 지인들이 응원해주고 있어서 그나마 힘이 되었다.      


긴장되어서 잠을 잘 못 잤다.


정확한 시간은 잘 기억이 안 나지만, 꽤나 이른 아침이었다. 6시 쯤 되었을까? 자고있는데 간호사님들이 와서 나를 깨웠다.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는 동안 간호사님들이 내 침대를 끌고 수술실로 들어갔다. 그 때는 분명 여름이었는데도 수술실은 추웠던게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 나는 누워있던 병상에서 수술용 침대로 옮겨졌다. 수술용 침대는 딱딱하고 차가운 쇳덩이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래서 더 추웠나보다. 가만히 누워있으니 여러 의료진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며 대화를 하는 소리가 들렸다. 내 몸에는 알 수 없는 이상한 장비들이 하나둘씩 붙었다. 그것도 차가웠다.

의료적 절차인거 같은데, 의료진이 내 이름과 생년월일을 한번 더 질문하고 확인하였다. 그래서 새삼 더 비장하게 느껴졌다. 그리고는 내 얼굴에 산소호흡기 같은게 씌워졌다. “자 환자분, 이제 자고 일어나면 다 끝나있을거에요.” 라는 말이 들렸다. 그래, 이제 나는 더 이상 할 게 없다. 그냥 자고 일어나기만 하면 된다.. 그렇게 생각하며 잠이 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그러고나서 다시 눈을 떴을때는 정말로 모든게 끝나있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무슨 상황이었는지는 정확히 기억은 잘 안 난다. 다만 확실했던건 그 때 너무 아팠다는 것이다. 단순히 아팠다는 말로는 많이 부족한데..직관적으로 표현하자면 누가 아랫도리를 칼로 난도질 해놓은 느낌이었다. ‘아, 끝났구나. 정말 수술을 했구나’ 또렷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병실에 옮겨진 나는 우선 시간부터 확인했다. 내가 수술실에 들어간 지 대략 8~9시간은 지나있었다. 진짜진짜 큰 수술이었다는 것이 다시 한 번 실감났다. 사실 ‘수술하다가 잘못되어서 죽어도 상관없다’는 마음으로 감행한 것인데 어찌됐건 죽지 않고 깨어났으니 해냈다는 성취감이 몰려왔다. 내가 해냈다. 끔찍한 통증이라는 토양 위에 내가 해냈다는 성취감과 뿌듯함이 단단하게 뿌리내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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