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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수 Nov 14. 2023

<나의 트랜지션 일기> 22장: 법적 성별정정(1)

당신의 성별은 무엇입니까

[22장: 법적 성별정정(1)]



트랜스젠더들이 대표적으로 겪는 어려움 중 하나는 바로 자신의 실제 성별과 법적 성별의 불일치이다. 보통의 사람들이야 딱히 불편할 일이 없고 신경쓸 일도 없겠지만 불일치가 있는 사람들은 일상에서 여간 불편하고 힘든게 아니다. 우선 내 입장에서는 병원 문제가 가장 컸다. 병원에서는 환자들의 주민번호를 전부 가지고 있으니까, 접수할 때나 진료를 볼 때나 처방전을 받을 때, 마지막으로 약 봉지를 받을 때까지 이 모든 과정에서 내 성별이 ‘남’ 으로 적혀있는걸 봐야하는건 꽤나 스트레스였다. 내 외모와 법적 성별이 달라서 의사가 대놓고 놀란 티를 내며 간호사랑 쑥덕거린 적도 있었다. 만약 통원치료가 아닌 입원을 하게 된다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법적인 성별에 따라 병실이 정해지기 때문이다. 예전에 어떤 다큐에서, 성별정정을 하지 못한 어떤 트랜스젠더가 응급실에 실려가는 와중에도 성별이 적힌 표지를 떼어내려고 했다는 걸 본 기억이 있다. 나 역시도 내가 남성용 병실에 들어간다는건 끔찍한 일이라, 성별정정이 되기 전에는 SRS를 제외하고는 입원할 일을 최대한 만들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했다. 왜 ‘결심’이라고 표현하냐면, 나는 종종 자해충동에 시달리곤 했는데, 못 죽고 애매하게 다쳐서 남자병실에 입원하는 대참사를 일으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실제 성별과 법적 성별의 불일치로 인한 고통은 병원 이외에도 많다. 성별이분법은 우리 사회 모든 곳에서 작동하고 있으며, 행정적으로는 다 법적인 성별로 구분하여 처리하기 때문이다. 등본,신분증,면허증,자격증과 같은 자신을 증명하는 증서들 뿐 아니라 은행과 관련된 업무를 할 때, 어느 단체나 홈페이지에 회원가입을 할 때, 인터넷으로 물건을 살 때, 하다못해 사소한 설문조사를 할 때 조차도, 법적 성별은 우리 일상의 거의 모든 영역과 결부되어 있다. 여기서 오는 불일치로 인하여 겪는 온갖 행정적인 제약과 차별, 정신적인 고통이 상당하다. 그 밖에도 타인들로부터 겪는 아웃팅과 혐오적 시선의 위협도 감수해야 한다. 나같은 경우는 위에서 언급한 모든 고통과 불편함이 다 있었고, 남들은 잘 모를 수 있는 사소한 불편함으로는 술집을 가거나 편의점에서 술을 살 때 제약이 있었다. 종종 신분증 검사를 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주민번호 뒷자리는 어찌어찌 가린다고 쳐도, 신분증 사진이 트랜지션 하기 전 사진이었다. 신분증 검사를 당할때면 내 현재 외모와 신분증상 외모가 너무 달라서 정말 본인 맞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받아야 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성별정정 전까지는 신분증 검사당할 일을 최대한 피하기 위해 술도 맘편히 못 마셨다. 적고 보니까 ‘사소한’ 건 아닌거 같다.

또 생각나는건 한창 코로나 유행 당시, 보건소에서 코로나 검사를 받을 때다. 의료진에게 신분증을 제시했더니 사진이 달라서 그런지 본인 맞냐고 세 번 넘게 물어봤다. 이러한 불일치로 인해 많은 트랜스젠더들이 다양한 차별과 고통을 감내하고 있을 것이다.           



언제나, 가장 맨 앞에서, 불필요하지만 필수적으로 물어보는 성별 질문. 왜 성별을 꼭 알아야 하는가? 나는 이러한 성별이분법에 반대한다.

성확정 수술 직후에는 몸이 워낙 아프니까 성별정정을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대략 5~6개월 지났을 즈음부터 조금씩 알아보고 준비하기 시작했다. 법적 성별정정을 위해서는 시간도 꽤 걸리고 필요한 서류도 많았다. 당시 내가 알아보고 준비한 서류만 해도 10개가 넘었다. 등록부정정허가신청서, 기본증명서, 가족관계증명서, 주민등록등·초본, 정신과 전문의 진단서, 산부인과 전문의 진단서, 성전환시술 전문의 진단서 및 소견서, 수술확인서, 부모동의서, 인우보증서가 그것이었다. 물론 내가 해야되고 하고싶어서 하는거긴 하지만 알아보고 준비하는 과정이 좀 번거롭고 힘들게 느껴졌다. 뒷자리 숫자 하나 바꾸는게 뭐 이리 힘들고 복잡하나.


당시 내가 준비했었던 서류 목록. 준비하느라 꽤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들었다.


우선 각종 진단서나 소견서를 받기위해 병원들을 다시 찾아가야 했다. 수술했던 병원은 물론이거니와, 내가 생식능력이 없음을 증명해야 하기 때문에 그걸 확인하고 판단해줄 산부인과 전문의 진단서도 필요했다. 트랜스젠더의 법적 성별정정은 mtf와 ftm의 두 경우 모두 ‘생식능력을 상실했을 것’을 중요한 조건으로 본다. 각각 남성과 여성으로서의 생식능력이 잔존한채로 정정을 하게 된다면 이 사회에 혼란을 야기하게 될 거라는 뭐 그런 이유일 것이다. 그래서 트랜스남성의 경우는 보통 자궁적출수술을 요구하고, 나같은 트랜스여성에 대해서는 기존의 남성기와 고환을 모두 제거할 것과 여성기 재건을 요구한다. 물론 극히 드물게 예외적인 사례도 존재하긴 하지만 보통은 그렇다. 당시의 나는 성별정정을 위한 의료적 조건은 다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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