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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수 Nov 15. 2023

<나의 트랜지션 일기> 23장: 법적 성별정정(2)

서류, 서류, 그리고 서류.

[23장: 법적 성별정정(2)]



등본이나 가족관계증명서 같은건 그냥 떼면 되는건데, 신경써야 할 것은 부모동의서인우보증서였다. 부모동의서는 말 그대로 부모한테 성별정정에 대한 동의를 받았다는 것을 확인하는 서류다. 트랜스젠더가 가족으로부터 지지받기란 굉장히 힘들고, 오회려 쫓겨나거나 의절당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 서류를 구비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을것 같다. 그래서 그런건지 2019년 이후로는 부모동의서가 필수에서 선택으로 바뀌었다. 정말 잘 된 일이다. 애초에 이건 부모의 동의를 받을 일이 아니다.

인우보증서는 ‘친구,친척,이웃 등 본인과 가까운 관계에 있는 사람들이 특정 사실을 증명하는 내용을 담은 문서’ 라는 뜻인데, 여기서는 성별정정을 하려고 하는 사람이 얼마나 자신이 정체화한 성별대로 잘 살고 있는지(?)를 증명해주는 서류를 말한다. 예를 들어 트랜스여성인 자신의 친구에 대해, “이 친구는 남성으로 태어났지만 여성으로 정체화하여 현재 여성으로 살아가고 있어요. 여자 맞아요. 여자 맞다니까요. 제가 보증할게요” 라는 식으로 써주는 것이다. 

자신의 성별에 대해서 확신이 없다거나, 거짓으로 꾸몄다거나, 혹은 사회적으로 패싱이 충분히 되지 않아서 ‘혼란’을 야기할 수 있는 사례를 막고자 함인걸까. 나의 존재와 나의 삶을 남이 대신 입증해줘야 한다니. 참으로 괴상하고 불쾌한 절차라고 생각했지만 일단은 가까운 친구한테 (무려 자필로) 받아놓긴 했다. 부모동의서와 인우보증서 모두 필수는 아니라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최대한 확실하게 하고 싶어서 둘 다 첨부했다. 그렇게 필요한 서류들을 다 모아서 가정법원으로 갔다.     


법적성별정정이란 엄밀히 말하면 ‘가족관계등록부 정정’ 이기 때문에, 본인이 거주하고 있는 주소지 관할 가정법원에 신청하면 된다. 등록부정정허가신청서에 ‘등록기준지 oo시 oo구 oo번지, 신청인 겸 사건본인의 가족관계등록부 중 신청인 겸 사건본인의 성별란에 “남”으로 기재된 것을 “여”로 정정함을 허가한다. 라는 결정을 구합니다.’ 라고 신청취지를 적고, 그 밑에 신청이유와 필요한 서류들을 주루룩 첨부하여 제출하면 된다. 떨리는 마음으로 가정법원의 해당 부서에 찾아가 준비해간 서류들을 제출하였는데, 예상치 못한 문제에 봉착했다. 담당자가 내 서류들을 이리저리 훑어보더니 몇 가지가 빠졌으니 서류를 보충하라고 했다. 그가 더 필요하다고 내밀있던 서류 목록을 훑어보니 참으로 황당했다.  


가정법원 등록부정정 담당자가 내밀었던 황당한 필요서류 목록.

아니 내가 인터넷으로 알아봤을때는 이런게 필요하다는 얘기는 전혀 못 들어봤었는데?

빨리 정정을 끝내고 싶은데다가 기껏 회사에 연차내고 갔던차라 마음이 더 초조했다. 제적등본은  가정법원 근처에 있는 주민센터로 가서 급하게 받아올 수 있었는데, 나머지 서류들은 내가 당장 그 날 준비할 수 있는게 아니었다. 출생신고서? 생활기록부? 이게 다 뭐람. 너무 어이가 없었다.

가정법원 담당자한테 "이런것까진 없어도 되는거로 알고있으니 그냥 처리해달라" 라고 하고 나왔다. 어차피 판사한테 넘어가면 판사가 보고 부족한게 있으면 다시 추가서류 요청을 할거라고 했다. 어떤 판사가 배정되어서 어떻게 판단을 할지, 조마조마하면서 결과를 기다렸다. 최소 3개월 이상은 걸린다고 했다. 어쨌든 수술요건은 다 갖췄으니 안되진 않겠지 싶었다.      


병원에서 받았던 소견서. 남성으로서의 생식능력 상실과 여성으로서의 성기를 재건했다는 것을 입증해준다.


서류제출한 지 한두달 쯤 지났을까? 법원에서 보정명령이 나왔다. 서류가 불충분하거나 하자가 있으니 추가 제출하라는 것이었다. 성장환경진술서를 내라고 했다. 그러니까 뭐 ‘어렸을 때부터 인형놀이와 분홍색을 좋아했고..’ 이런 내용이 들어가야 되겠지. 있는 사실에서 적당히 과장을 조금 더 보탰다. 최대한 진정성과 간절함을 어필해야 되니 말이다. 성장환경진술서도 필수가 아니라고 해서 안 냈던건데 판사가 요구했나보다. 얼른 성장환경진술서를 작성해서 내고 다시 기다렸다. 그러고 일정기간이 지나자 또 보정명령이 나왔다. 아니 대체 왜? 전화해서 물어보니 두 가지 하자가 있었는데 하나는 ‘성주체성 장애’ 라고 판단한 정신과 전문의 소견서에 ‘임상적 추론’ 이라고 체크가 되어 있는데 그게 아니라 ‘최종적 판단’ 이라고 체크 되어있는 소견서가 필요하다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산부인과 전문의 소견서에 ‘현재 생식능력이 없음’ 이라고 되어있는데, 그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앞으로도 생식능력이 발생할 가능성이 없음’ 이라는 문장이 필요하다고 했다. 아니 지금 없으면 앞으로도 없는거지 그걸 또 굳이 그렇게? 라는 의문이 들었지만 뭐 그러려니 하고 차분히 다시 서류 보완을 준비했다. 어쨌든 정정되는게 중요하니까.

그렇게 서류를 다시 제출하고 또 기다렸다. 홈페이지에 들어가 진행과정을 매일매일 확인했다. 접수가 되었는지, 처리가 되었는지, 반려되지는 않았는지..또 그렇게 몇 개월의 시간이 지나갔다. 보정명령의 2번이나 있었어서 조금 더 딜레이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마침내 서류가 통과되었고 판사의 심문기일이 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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