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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수 Nov 16. 2023

<나의 트랜지션 일기> 24장: 성장환경 진술서

위와 같은 진술은 틀림이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끝.

[24장: 성장환경 진술서]




가정법원에서 날아온 보정명령.


1. 사건본인의 시기별 사회생활     

본인의 유아기 시절은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기억나는건 유치원 다닐 적부터 체구가 작고 마음이 여려 자주 울었던 것입니다. 초등학교 다닐때에도 그랬습니다. 남자애들 무리로부터 자주 장난과 괴롭힘을 당해왔고 여자애같다고 놀림을 받으며 자랐습니다. 내심 여자아이들과 어울리고 싶었지만 더 놀림받을까봐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 후 남자 중학교로 진학을 하여 남자들만 있는 곳에서 지내면서, 남자들 무리에서 살아남기 위해 혹독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중학교 1학년 입학 당시에 키가 143cm로 또래 남자아이들 중에서 거의 가장 작은 키에 속하였었고 그 후 키가 조금씩 자라긴 했어도 여전히 거의 가장 작은 축에 속하였습니다. 그렇다고 딱히 힘이 세거나, 운동을 잘하거나, 성격이 거칠거나 활달하지도 못하였기에 순동하고 만만한 이미지로 지내왔습니다. 종종 무시와 괴롭힘을 당하며 ‘아 나는 남자인데도 왜 이러지’ 하는 자괴감과 자기비하에 시달리며 괴로운 시절을 보냈습니다. 남중,남고 시절을 보내는 내내 그러하였는데 성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특히 군대 시절을 보내며 내가 남성으로서 결함이 있다는 생각을 많이 하였는데, 군 시절은 차마 떠올리기 괴로울 정도로 힘든 시간이었기 때문에 이 정도로만 적겠습니다. 

대인관계는 성인이 되어 대학시절에는 여자학우들과 더 편하게 어울렸으며 거기에서 더 많은 소속감과 동질감을 느꼈습니다. 여학생과 연애를 해보긴 하였으나 제가 주도적으로 관계를 이끌지 못하였고 수동적으로 끌려다니며 지냈습니다. 상대는 저를 이성으로서 좋아하였는데 저는 단순히 친구 이상의 감정을 넘어서지 못하였다는 것이 컸고, 무엇보다도 성적인 면에서 고충을 겪었습니다. 여자친구는 저에게 남자로서의 성역할을 원하였지만 저는 스킨십에서 상대방의 욕구를 충족시켜줄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더 성별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더 많이 하게 된 것 같습니다. 


2. 사건본인이 성전환수술을 받기 전      

본인은 자신에 대한 고민과 결정을 마친 후 병원에서 진단을 받아 호르몬치료를 

시작하였습니다. 호르몬치료를 받으며 생기는 몸의 변화들이 저에게는 큰 설렘과 기쁨으로 다가왔습니다. 저에게는 남성기가 성별불쾌감을 느끼는 가장 큰 요소였기에 발기가 안되게 되었으므로 제 성기를 덜 인식하게 되어서 그것이 만족감을 주었습니다. 또한 신체적으로 털이 가늘어진다던가, 몸이 부드러워진다던가, 가슴이 조금씩 자란다던가 하는 변화들도 저에게 만족감을 주었습니다. 감정적.정서적 측면에서는 눈물도 많아지게 되고 더욱더 감성적인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소한 일로도 감정이 오르락내리락 하며 마음이 조금 더 여려졌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종합적으로 봤을 때 신체적,정신적으로 여성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느낌에 기뻤습니다. 

그리고 머리도 계속 기르고 있었기에 어깨길이까지 자라게 되었을때는 외관상으로도 여성으로 보이게 되어 스스로 만족감도 있었으나 공중화장실 사용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여성으로 보인다는 것은 기뻤지만 그렇기 때문에 남자화장실을 사용하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조금만 더 참아서 수술 이후에 떳떳하게 쓰자라는 마음으로 그 시기를 버텼습니다.     


3. 사건본인이 성전환수술을 받은 이후     

본인이 성전환수술을 받은 직후에는 ‘드디어 내가 해냈다’ 라는 커다란 성취감이 들었습니다.

사실 수술 이후에 통증은 어마어마합니다. 

2주 정도는 아파서 잠도 잘 못자고, 한달 정도는 거의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자잘한 통증은 거의 3개월 가까이 지속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크고 지속적인 통증에도 불구하고 단 1초도 후회되지 않을 정도로 제가 여성의 신체를 가졌다는 만족감이 정말 엄청나게 컸습니다.

드디어 본인에게 달려있던 저주스런 남성기를 제거하고 여성기를 갖게됨으로써 좀 더 온전한 여성이 되었다는 것이 너무 기쁘고, 이제는 나 자신과 사회에게 훨씬 더 떳떳할 수 있게 되어 행복합니다.

머리를 기르고 화장을 하고, 내가 원하는 옷을 입으며 원하는 사람들과 원하는 관계를 맺으며 여성으로 인정받고 여성으로 살아가는 이 삶에 큰 행복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제 저의 여정도 마지막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저의 그간의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 신분증이 남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법적 성별이 남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일상에서 겪는 불편감과 고통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판사님, 부디 저의 성별정정을 허가하여 주 시어 앞으로 제가 여성으로서 온전히 나아갈 수 있게 지지하여 주십시오.

위와 같은 진술은 틀림이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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