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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수 Nov 20. 2023

<나의 트랜지션 일기> 26장: 수술부위 잔혹사

2부의 시작 

[26장: 수술부위 잔혹사]



정신과 진단과 호르몬치료, 온갖 의료적 조치, 그리고 법적 성별정정까지. 이 모든 과정을 몇 년안에 정신없이 끝냈다. 많은걸 생각하지 않고 그저 절박한 마음 하나만으로 달려왔던 것 같다. 

내 에세이 제목에도 들어가있는 ‘트랜지션’이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다른 상태·조건으로의 이행(移行)’이다. 트랜스젠더가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기위해 자신의 상태와 조건을 바꾸어가는 과정이 다 트랜지션인 것이다. ‘성전환’이랑 같은말인거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성전환은 수술을 통해 성기를 바꾸는 것에만 국한되어 쓰였기 때문에 조금 더 본질적이고 포괄적인 의미를 드러내고자 영어 단어를 그대로 쓰게 되었다. 용어와 관련해서는 뒤에서 다시 또 얘기하도록 하겠다.  

아무튼 나는 지금까지 해왔던 의료적 트랜지션의 과정을 다 적었다. 여기까지 읽었을 때 독자분들이 어떤 생각을 하셨을지 모르겠다. 다소 낯설고 신선하게 느껴졌을 수도 있고, 잘 모르겠거나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있을수도 있고, 혹은 ‘수술도 하고 정정도 했으니 이제 다 끝났네’ 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다. 어느 경우에 해당하든 내 글을 계속 읽어주시길 바란다.

사실 내가 정말로 세상에 하고싶은 이야기는 이제부터 시작이기 때문이다.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수술 이후 한동안 성기는 나에게 있어서 수술부위에 불과했다. 일단은 너무 아팠기 때문도 있고, 또 낯설기 때문도 있다. 기존의 페니스는 외부적으로 한 눈에 볼 수 있는 형태였지만 여성기는 그런게 아니니까, 안쪽의 형태나 깊이 등이 어떻게 되어있는지 직접 보기도 힘들고 보려고 시도할 엄두도 잘 나지 않았다. 나중에 검사를 받았을땐 다행히도 별 문제는 없었지만, 당시에는 낯설음과 두려움이 있었다.     

사실 내가 그런 감정을 느끼게 된 데에는 한 가지 더 큰 이유가 있었다. 당시에는 잘 인지하지 못했는데 시간이 조금 지나고 나서 인지하게 된 부분이다. 나는 내 수술을 담당한 의사 A로부터 지속적으로 언어적 성희롱을 당했었다. 중년 남성인 A는 사실 수술 이전부터도 스스럼 없이 반말을 사용하며 언어사용이 거침이 없었다. ‘뭐 수술만 잘하면 됐지’ 하는 생각으로 다 넘겼는데 

수술 이후 치료를 받을 때 조금 힘든 상황들이 있었다.


“넌 왜 가슴이 짝짝이냐? 네 가슴보고 덮칠 사람은 없을 것 같다.”
“자, 네 앞에 송중기가 있다고 생각하고 벌려봐.”
“(무언가를 쑤셔넣으며)너는 첫경험 상대가 기계네?”
“너 이제 흑인 xx도 들어가겠다”


일단 기억나는건 이 정도고, 이런식의 발언이 많았다. A는 내 몸에 대해서 너무 쉽게 함부로 말을 했다. 아니 이거는 일반적인 여성들한테 해도 심각하게 문제되는 발언들 아닌가? 나도 만약에 남의 일이었다면, 다른 여성이 이런 일을 겪었다면 심각한 문제라고 인식하고 분노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안타깝게도 그러지 못했다.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는데, 첫 번째는 그 의사 A가 내 몸에 대한 절대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내가 그의 기분을 함부로 거스를 수가 없었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내가 나 스스로를 온전히 여성이라고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내가 나를 여성이라고 정체화한 것과는 별개로, '과연 남들도 여성으로 봐줄까? 내가 다른 여성들과 동등한 인격적 존엄성과 성적인 가치를 가질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스스로를 함부로 대해도 되는 대상, 성적인 수치심 내지 불쾌감을 느낄 자격도 없는 대상으로 비하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참 슬픈 일이다.     

수술하고 통증이 사그러진 뒤에도 나는 한동안 세척이나 관리 같은 불가피한 상황을 제외하고는 내 성기를 관찰하거나 만져보려고 할 생각을 못했다. 그때는 자각하지 못했는데, 지나고 생각해보니 의사한테 당했던 성희롱의 영향이 큰거 같다. 차가운 수술침대에 누워 다리를 벌린채로, 중년남성의 성희롱적인 말을 들으며 성기 진찰을 받는 상황이, 사실 꽤 공포스러웠다. 모든 치료가 잘 끝나고 이제 다시 그 병원을 가지 않아도 되어서 참 다행이다.     


수술을 해서 성기는 바뀌었지만, 내 몸은 아직 이전 성기를 기억하고 있는듯하다. 나는 가끔씩 꿈에서 페니스를 가진채 발기하고 사정을 한다. 이렇게 말하면 이상해보일 수도 있지만 꿈에서의 그 느낌 자체는 기분이 좋다. 디스포리아와는 별개로 사정 자체는 쾌감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꿈에서 깨고나면 아랫도리가 헛헛했다. 원래 자위에 대해 그렇게 관심이 있지는 않았지만 그럴때마다 손가락으로 문질러보고는 한다. 페니스의 귀두 끝을 만지는 것처럼 야릇한 느낌이 들면, 이 곳이 수술부위이기만 한게 아니라 성기이기도 하다는 자각을 하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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