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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수 Nov 21. 2023

<나의 트랜지션 일기> 27장: 커밍아웃 스토리(1)

어디가 잘못된 아들 

[27장: 커밍아웃 스토리(1)]



세상엔 수많은 성소수자들이 있고, 그 숫자만큼의 ‘커밍아웃 스토리’ 가 있다. 성소수자들은 가족, 친척, 친구, 동료, 지인 등 자신의 주변인들에게 평생에 걸쳐 커밍아웃을 하거나 커밍아웃에 대한 고민을 한다. 보통은 아무래도 가족과 관련된 경우가 가장 심각한 편이다. 간혹 드물게 지지받는 경우도 있지만, 안타깝게도 많은 경우는 그렇지 못하다. 자신의 정체성을 커밍아웃하거나 혹은 원치않게 아웃팅을 당했을 때, 가족으로부터 온갖 폭언,욕설,혐오발언을 듣고 심한 경우엔 폭행을 당하거나 전환치료를 강요받거나 의절당하기도 한다. 나는 그런 극단적인 경우에 비해서는 운이 좋다고 할 수 있겠으나 나름대로의 우여곡절은 있었다.     


나는 외동이고, 부모랑 같이 살고 있다. 같이 살 정도는 되니 사이가 아주 안 좋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좋다고는 할 수 없어서 정말 필요한 일 없으면 거의 대화를 안 하고 지낸다. 

뒤에가서 다시 자세히 얘기하겠지만 어렸을때부터 부친으로부터 당했던 가정폭력과 정서학대 때문이다. 

원체 일상이나 고민 같은걸 나눠본 적이 없는데, 하물며 퀴어와 관련된 이야기를 할 리가 있나. 설령 사이가 좋고 많은걸 나누는 가족끼리도 얘기하기 힘든 주제인데 말이다.


그렇지만 내가 성별정체성에 대해서 고민을 하고 찾아가는 과정은, 말을 하지 않아도 겉으로 티가 날 수밖에 없었다. 언제부턴가 내 방에는 온갖 퀴어와 관련된 피켓, 굿즈, 책들이 쌓여갔고, 여기저기서 사거나 받은 화장품이나 친구한테서 빌린 ‘여자 옷’ 들도 한 귀퉁이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니 내 방 들락날락 하는 엄마가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나보다. 어느 날은 두 사람이 나를 불러서 앉혀놓고 심각하게 물어봤다. 너 요즘 뭐하고 다니는거냐, 네가 성소수자인거냐, 아니면 그냥 지지하는거냐고 말이다. 어차피 숨길 수 없는 부분이긴 하겠지만, 그래도 구구절절 설명하고 싶지는 않았다. 아니 내가 누구이고 어떤 삶을 살 것인지, 무슨 옷을 입고 무엇을 하던 그건 온전히 내 자유 아닌가. 내 인생 내가 알아서 할 거고 나름대로 열심히 살려고 하는거니까 신경쓰지 말라고 했다. 당시 아빠는 내가 ‘머리가 잘못된줄’ 알았다고 했다.

나는 그런게 아니라고, 나는 멀쩡하다고 열심히 항변을 하여 그 상황은 그냥 그렇게 흐지부지 넘어갔다. 


그런데 그 후에 또 문제가 생겼다. 발단은 내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이었다. 내가 여성가발 쓰고 화장하고 찍었던 셀카를 카톡 프사로 해놓은 적이 있었다. 물론 지금 시점에서 돌아보면 그다지 자연스러운(?) 사진은 아니긴 하지만 그 때는 서툴러도 이런저런 시도들이 나에게 큰 의미가 있었다. 그런데 아빠가 나를 부르더니 너 사진이 이게 뭐냐고, 남자가 왜 이러고 사진을 찍냐, (평소 복장을 언급하며) 남자가 왜 이러고 다니냐, (다른 남자 또래랑 비교하며) 좀 이렇게 깔끔하게 좀 하고 다녀라는 식으로 지적질을 해댔다. 그리고 친척 고모가 내 프사를 보고 아빠한테 전화걸어서 


“애가 왜 여장하고 다니냐, 어디 잘못된거 아니냐”



고 했단다. 그 때 그 상황은 나에게 너무나도 큰 스트레스와 디스포리아, 정신적 고통을 주었다. 아니 그 놈의 남자가 뭔데. 왜 남자는 머리가 길면 안되고 화장하면 안되고 치마 입으면 안되는건데? 왜 남자는 꼭 투박하고 우락부락하기만 해야되는건데? 왜 고작 옷차림 하나 가지고 이리도 온 세상이 호들갑인건데? 너무 답답하고 환멸났다. 아니 그리고 트랜스젠더라는게 존재하지 않는 세계관이라고 쳐도, 프로필 사진 정도야 내 맘대로 할 수 있는거 아닌가? 각자 자유롭게 개성을 표현하거나 만화캐릭터 코스프레도 하기도 하고 그러잖아? 그걸 가지고 그렇게 전화해서 애가 잘못되었다느니 어쩌니 할 일인가. 너무 화가나고 불쾌했다. 아빠한테는 성역할 고정관념이나 다양성, 성소수자인권 등에 대해 차분히 설명해보려 했지만 당연히 설득이 될 리는 없었다. 아빠는 전형적인 꽉막힌 가부장 꼰대 중년남성에, 정치적 성향도 완전 극우이고 심지어 크리스쳔이다.   

완전히 나랑은 정반대의 극단에 서 있다고 보면 된다. 세계관 자체가 아예 다르다. 설득은 포기하고 ‘내 삶이니 상관하지마라, 내 맘대로 하겠다’고 밀어붙이려고도 해봤지만 당시는 내가 취업하기 전인 상태라 경제적으로 힘이 없어서 강하게 나가지 못했다.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이 타협하고 한 수 접기로 했다. 마음속으로 울분을 삭이며 프사를 내리고, 집에 있던 ‘여자 옷’을 다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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