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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수 Nov 22. 2023

<나의 트랜지션 일기> 28장: 커밍아웃 스토리(2)

오늘 늦어

[28장: 커밍아웃 스토리(2)]


※ 이 글은 자살에 관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 후에 한동안은 ‘티’를 안 내고 지냈다. 집에서도 힘들었지만 길거리, 대중교통, 단체행사, 교회, sns 등 온갖 곳들에서 나에게 쏟아내는 혐오를 감당하는것도 지쳤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동안 억누르고 있다가, 취업을 하고나서 본격적으로 정신과 진단을 받고 트랜지션을 하나씩 진행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외모도 조금씩 변해갔지만 부모한테는 따로 설명하지 않았다. 어차피 이해하거나 받아들이지 않을거라 생각했으니까. 그리고 받아들이든 말든 내 삶이고 내가 다 감당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밀어붙였다. 호르몬 약 같은것도 굳이 숨기지 않았고. 부모도 알고는 있었겠지만 별 말은 없었다. 분명히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고는 생각했을 것이다.      


성소수자들이 가족에게 커밍아웃을 하거나 혹은 아웃팅을 당했을 때 어떤 일을 겪는지는 많이 들어봤다. 트랜스젠더 방송인들이 가족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는걸 들을때면 참 아찔해진다. 자식이 트랜스젠더라고 하면 “절대로 너를 딸(아들)로 인정할 수 없다”며 폭력을 행사하거나 자식과 의절을 하는 경우들이 많다. 그 정도가 아니더라도 트랜스젠더는 우선 외형이 변화하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부모들은 그 과정을 보기 힘들어한다. 나 역시 머리를 기르고 라섹을 하며 눈에 띄는 변화가 있을 수 밖에 없었다. 내 앞에서 별 말은 안했지만 부모는 속으로 무슨 생각을 했을지, 나 없을 때 둘이서 무슨 대화를 주고받았을지 알 길은 없지만 알고싶지는 않다.        

트랜스젠더가 어떤 삶을 사는지, 어떤 차별과 혐오를 겪는지 모르는 바가 아니었지만, ‘나 자신과 불화하느니 세상과 불화하는 게 낫다’ 라는 마음으로, 그 모든걸 감당할 작정으로 나를 찾는 여정에 내 몸을 던졌고 그 선택의 대가는 참으로 가혹했다. 호르몬치료로 인해 감정기복에 취약한 와중에 가까이 지내던 남성으로부터 성추행 피해를 당했다. 분명 이전까지는 나를 사심없이 대했는데, 내가 트랜지션을 시작한 이후부터 나를 대하는 태도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하더니, 어느날은 느닷없이 나한테 좋아한다고 고백을 하면서 내 동의없이 내 몸에 손을 대었다. 친한 사이였던만큼 충격과 배신감이 컸다. 솔직하게 잘못을 인정하고 제대로 사과했더라면 이전처럼 지내는것까진 힘들어도 용서는 할 수 있었을텐데, 가해자는 계속 뻔뻔하게 변명과 회피로 일관했다. 너무 괘씸해서 온갖 증거들을 가지고 강제추행으로 고소를 하였으나 가해자가 끝까지 부인하는 바람에 결국 증거불충분으로 불기소가 나왔다. 가해자가 자기 잘못을 인정하는 대화내용과 당시 상황을 목격한 증인도 있었으나 cctv 영상 같은 직접 증거가 없다는 것과, 피해자인 내가 피해 직후에 바로 신고를 하지 않았다는 점이 불리한 정황으로 작용하였다. 

성추행 피해와 결과, 그리고 그 밖에 인간관계에서 겪었던 여러 상처들 때문에 도저히 온전한 정신상태를 유지할 수가 없었다. 


평범한 여자로 살고싶었으나 여자도, 남자도 될 수 없었던 나는 그저 평범한 괴물이었다. 안 그래도 사회에서 오는 온갖 차별과 혐오를 감당해야 하는데 힘든 일들까지 연속으로 터지니 도저히 견딜수가 없었다. 나는 도저히 이 사회에 온전히 섞여들여 살 수 없는 이물질 같았다.

그렇게 몇 달 동안 우울,불안,분노,절망,무기력 등 극심한 정신적인 고통에 시달리다가 결국 나는 나라는 이물질을 ‘닦아내기로’ 결심했다.      

그 날은 2020년 11월 20일 금요일, 공교롭게도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이었다. 퇴근한 나는 집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엄마한테는 ‘오늘 늦어’ 라는 4글자만 보낸 뒤 핸드폰 전원을 껐다. 





당시 상황을 구체적으로 적기는 힘들지만..간단히 말하면 손목을 그었다. 아주 세게, 수십 번을 말이다. 근데 생각보단 손목그어서 죽는게 참 쉽지가 않았다. 피는 철철 흐르고 있는데 동맥이 끊어지거나 한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게 밤새 손목과 씨름하다가 결국 포기하고 아침에 응급실을 갔다. 그 피가 철철 흐르는 손목을 감싸쥔 채로. 흰 가운을 입은 의료진들이 무슨 일로 오셨냐, 어쩌다가 다치셨냐고 질문을 하는데 나는 대답할 말이 없어 어버버 했다. 응급실에서 보기엔 ‘티’가 났겠지. 나처럼 시도해서 온 사람이 한둘이겠나..라고 생각을 했는데 실제로 그 당시에 내 옆자리와 건너편 자리에 입원한 사람들도 다 자살시도 했다가 실패해서 온 사람들로 보였다. 시든 꽃처럼 공허한 표정의 환자와, “왜 그랬냐” 라며 흐느끼는 보호자의 목소리, 그리고 어딘가 심상치 않은 의료진들의 태도. 다들 각자 서 있던 자리가 어떠했길래 주저앉는 것도 모자라 여기서 이렇게 누워있게 되었을까.       

정신이 없는 상태로 침대에 누워 치료를 받았다. 의사는 나처럼 ‘고의적으로 스스로 다치게 한 경우’ 는 무조건 가족한테 연락이 간다고 했다. 어떻게 된건지 경찰도 왔다가고 사회복지사한테서도 전화가 왔다. 되게 부끄럽고 수치스러웠다. 조금 지나니 엄마가 응급실로 왔다. 엄마가 “어떻게 된 일이냐, 뭐가 그렇게 힘들었냐, 죽을거면 같이 죽지 왜 혼자 죽으려고 그랬냐” 하면서 울먹거렸다.

그 때 나는 처음으로, 입을 열어 엄마에게 내 이야기를 했다. 

“엄마, 나..여자로 살고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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