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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수 Nov 23. 2023

<나의 트랜지션 일기> 29장: 태어난 잘못  

미안

[29장: 태어난 잘못]



엄마는 다 알고 있었다고 했다. 물어보지 않고 내가 먼저 말하길 기다리고 있었다고, 자기도 받아들이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네가 그렇게 살기를 원하면 그렇게 살라고 했다. 또 눈물이 났다.

아빠도 응급실에 왔는데 아빠는 아무 말도 없었다. 그 후에도 내 정체성과 삶에 대해 아무런 간섭도 하지 않았다. 아빠는 더 이상 나를 바꾸거나 설득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자살에 실패한 삶은 그렇게 또 이어졌다. 손목은 인대가 끊어져서 이어주는 수술을 했다. 칼로 그을때는 아픈줄도 몰랐는데, 수술까지 할 정도로 크게 다쳤던 것이다. 그 후 한동안은 손목을 잘 구부리지 못했다. 물리치료도 받았었지만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손목이 가끔씩 욱씬거릴 때가 있다.

토요일 아침에 응급실에 입원하여 일요일에 수술을 하고, 손목에 깁스를 한 채로 월요일에 아무일 없다는 듯이 다시 출근을 했다. 사람들한테는 그냥 넘어졌다고 대충 둘러댔다. 지금 생각하면 그런 지경에서 어떻게 회사를 다녔는지 참 신기하다. 그래도 살아있으면 어떻게든 된다고 했던가. 하루하루가 지나며 손목도, 마음도 조금씩은 회복이 되어갔다.

 

그 해는 참 이래저래 수술을 많이 했던 해다. 라섹 수술, 성대 수술, 성형 수술, 손목 수술.. 1년 간 네 번이나 수술을 했다.

그렇게 또 시간이 흘러 성확정수술도 하게 되었고, 그때도 부모는 별 말이 없었다. 앉혀놓고 이것저것 물어보거나 하지 않아서 나는 더 편했다. 수술하고 나서 수술 잘 끝났다고 전화 한 통 했던거 말고는 나도 딱히 별로 말을 한게 없다. 이 정도로 우리는 대화가 없는 가족이다.      


그러던 어느 날에 일이 생겼다. 집에 있다가 약속이 있어서 외출을 하려고 하는데 엄마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누구 만나러 가냐길래 아는 사람 만나러 간다고 했더니, 나보고 “그 사람은 네가 좋아서 만나는거 같냐”고 물었다. 무슨 말인고하니 엄마가 티비에서 하리수가 나온걸 봤는데, 하리수가 과거에 주변 사람들에게 사기당한적이 있다는 얘기를 했다고 한다. 하리수 정도 되는 사람도 저렇게 사기를 당하는데 너는 오죽하겠냐는 거였다. 트랜스젠더라고 하면 주변에서 혐오하거나 안좋은 목적으로 다가오는 사람도 많지않겠냐고 걱정된다고 했다. 엄마가 걱정하는 마음은 알겠는데, 내 입장에서는 화가 났다. 물론 트랜스젠더로서 겪는게 없는건 아니지만 나 나름대로 열심히 당당하게 잘 살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왜 굳이 그런 말을 해서 힘빠지게 하는지 이해가 안됐다. 리스크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있는데, 일어나지도 않은 안좋은 상황을 굳이 입 밖으로 꺼내서 힘빠지게 할게 아니라 그냥 응원해주고 힘든 일 있으면 도와주겠다 이러면 안되는걸까. 그런데 엄마는 또 나보고 너는 너 힘든거 밖에 모르지 않냐는 말을 했다. 엄마아빠가 너 때문에 너무 힘들고 괴롭고 하느님이 원망스러워서 신앙도 잃게 됐다고, 아빠는 죽고싶어하는데 자기가 말렸다고. 뭐 그런 하소연을 엄마는 나한테 쏟아냈다. 나도 갑작스럽게 그런 말들을 들으니 너무 당혹스러웠다. 커밍아웃도 다 했고, 여러 수술들을 할 때도 별 말을 안했으니 그냥 받아들였나보다 라고 생각했었는데, 너 때문에 힘들고 죽고싶다 이런 말을 부모한테 듣고있으니 나도 죽고싶었다. 회복되어가고 있었는데 그 때는 다시 심각하게 자살충동이 올라왔다. 아, 나를 낳아준 부모가 나 때문에 이렇게도 힘들어한다니. 나는 잘못 태어난게 아닐까? 내 존재가 잘못된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진지하게 들었다. 부모에 대한 죄책감도 크게 올라왔다.



길가다 보여서 찍은건데 당시엔 부모에게,주변인들에게,그리고 온 세상에 이렇게 외치고 싶었다. 태어나서 미안하다고.



죽는거밖에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자살시도까지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그 때 굉장히 정신적으로 고통스러운 시기를 보냈다. 이런저런 키워드로 검색을 해보다가 우연히 유튜브에서 한 뉴스영상을 보았다. ‘텐트에서 숯불 피우고 자면 수십 분 안에 사망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는데, 경각심을 주려는 취지가 무색하게도 그 뉴스 댓글창에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다”, “빨리 안락사 합법화 됐으면” 이라는 말들과, 그 말들에 공감표시를 하는 사람들이 수백명이 있었다. 다들 저마다의 사정이 있어서 특정 검색어를 통해 이 뉴스를 발견하게 된 것이리라. 위험을 알리는 정보가 어떤 사람들에게는 다른 의미로 ‘좋은 정보’가 됐다는 그 씁쓸한 아이러니에 쓴웃음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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