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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수 Nov 27. 2023

<나의 트랜지션 일기> 31장: 평범한 여자

소수자가 참 살기 힘든 세상이지요

[31장: 평범한 여자]



‘평범함’ 이라는 것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평범하게’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사람마다 정의하는게 조금씩은 다를 수 있는데, 보통은 많은 사람들과 다르지 않은 삶, 사회에서 ‘정상적’ 이라고 여겨지는 삶이 보통 평범하다고 여겨진다. 나 또한 한 때는 평범한 여성의 삶을 꿈꾼 적이 있다. 평범한 여성으로 대우받으며 평범한 여성들이 하는 경험을 하며 평범한 여성들의 생애주기를 따르는 삶. 그걸 강력히 원하고 추구하는 마음이 있었다. 물론 지금은 나만의 삶의 형태와 방식을 정의하고 있지만, 트랜지션을 결심하고 진행했던 당시에는 평범한 여성의 삶을 동경했었다. 그게 무엇인지 정확히 뭐라고 설명하기는 어려우니 우선 내 경험들을 얘기해보겠다.     


여성으로서 사람을 사귀고 싶었다. 여성으로서 여성집단에 속해보고 싶었고, 남성과는 이성적인 거리감과 긴장감을 느끼며 남성으로부터 연애적·성적 욕망의 대상이 되어보고 싶었다. 퀴어가 아닌 일반 사람들의 커뮤니티를 찾아보았다.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서 내 또래인 사람들이 친목을 목적으로 모이는 톡방들을 들어가봤다. 그곳은 랜덤한 사람들이 수시로 들락거리는 곳이기에, 서로를 간편히 식별할 수 있게 하기 위하여 닉네임 칸에 나이,성별,지역을 기재해놓는다. 성별을 ‘여’ 라고 적어놓고 사람들과 대화를 해보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내가 억지로 더 여성스러운 말투를 쓰려고 의식했던건 아니었는데 성별을 그렇게 적어놓으니 사람들은 당연히 나를 ‘여자’로 인식하고 대했다. 여자들은 나를 언니라고 부르며 친근히 대하고 남자들은 나를 ‘이성’으로서 조심스럽게 대했다. 나는 그런 대우를 받아보는게 처음이라 굉장히 신선하고 기분이 좋았다. 개중에는 나한테 그럴듯한 말로 개수작 부리는 남자들도 있었는데 그것도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분명 나라는 사람은 이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은데,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관계맺기에서 많은 것이 달라졌다. 나의 말이나 행동에 대한 사람들의 해석이 달라졌다. 내가 부드럽거나 세심한 말투를 사용하면 예전에는 ‘남자답지 못하다’,‘남자치고는 ~~하다’ 라는 말을 들었는데 이제는 ‘여성스럽다’ ‘따뜻하다’ 라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고, 반대로 내가 직설적이고 직관적인 말투를 사용하면 예전에는 별 코멘트가 없었는데 이제는 ‘털털하다’, ‘걸크러시다’ 라는 말을 들었다.

또한 나는 소위 남성향 취미라고 여겨지는 축구나 게임을 좋아하는 편이었는데, 남성들 사이에서는 잘 알거나 잘 하는 편이 아니었는데 내가 여성으로 인식되고 나니 지식이나 실력 여부를 떠나 그저 관심있다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대단하다고 하거나 매력적이라고 했다.

반대로 여성들의 영역이라고 여겨지는 화장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때는 내심 마음이 조마조마 했다. 물론 나도 메이크업을 조금씩 배워보고 해보기는 했지만, 태어났을때부터 여성으로 사회화되어온 사람들의 숙련도에는 당연히 비할 바가 못 되었으니 말이다. 


격투게임을 좋아하는 여자는 잘 없으니까..


문제는 내가 ‘티’가 나는 순간들에 부딪힐 때였다. 어떤 지역 친목단톡방에 들어가 오프라인 모임을 참가한 적이 있다. 커밍아웃은 하지 않은 상태였다. 내 또래 사람들이 5~6명이 나왔고 같이 밥을 먹으며 수다를 떨었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라 조금 어색하기는 했어도 나쁘지는 않았다. 그냥 그런 장면들이 내가 바랐던 ‘평범함’ 이었으니까. 근데 그 자리에 뒤늦게 합류한 어떤 사람에 의해 나의 꿈은 와장창 깨져버렸다. 내가 “안녕하세요” 라고 인사를 건네자 그 사람이 나를 보고 하는 말,



 “어? 카톡에서는 여자분인줄 알았어요.” 



내가 ‘평범한 여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이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그 5글자를 내뱉는 내 목소리를 듣고 그 사람은 나를 머리 긴 남자라고 생각을 했나보다. 그 순간 그 자리를 황급히 벗어나 길거리 모퉁이에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 당시는 성대수술과 성확정수술 등의 온갖 의료적 트랜지션을 끝마친 상태였다. 아, 여자로 살기위해 이렇게나 노력해왔는데 고작 인사 한 마디 가지고 남자 취급을 받다니. 너무 서럽고 절망적이었다. 내가 그러고 있으니 모임장이 와서 나를 달랬다. 대충 어떤 상황인지는 모임장도 눈치채고 있었다. “소수자가 참 살기 힘든 세상이지요” 라고 친절하게 나를 다독여준 모임장은, 며칠 후 나를 카톡방에서 강퇴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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