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상처를 받으면서도 나는 여기저기 모임을 기웃거렸다. 어떤 모임에서도 인사할 때 나를 남자로 여겼던 사람이 있었는데, ‘아니에요 저 여자에요’ 라고 하니까 그냥 좀 허스키하시구나 하고 넘어간 적도 있다. 인터넷상에서는 남자인데 여자행세를 하는 소위 ‘오카마’가 종종 있긴 하지만, 오프라인에서까지 굳이 그러는 경우는 아마 잘 없을테니, 처음엔 오해를 받더라도 해명을 하면 딱히 누가 의심을 하거나 문제를 삼진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온전히 마음이 편한 것은 아니었다. 뭔가 계속 여성스럽게 말하고 행동해야 될 거 같은 압박이 있었고, 여성들만 아는 얘기(생리 얘기 등)가 나올때라던지, 출신 중·고등학교 얘기를 할 때라던지 하는 상황에서 내가 쭉 여성으로 살아온 사람이 아니라는 걸 들킬까봐 조마조마 했다(물론 남자들이 군대 얘기를 꺼낼 때 모른 척 하는건 재밌긴 했지만). 이럴거면 차라리 그냥 처음부터 밝히는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어떤 친목모임에서는 들어가자마자 커밍아웃을 했다. 사람들은 생각보단 흔쾌히 받아주었다. “아 그래요? 저희 모임은 그런거(차별) 없어요~” 라고 했다. 그땐 순진하게도 그 말 하나만 가지고 안심을 했다. 그걸 아는가? 무언가를 구태여 부정을 한다는건 이미 그걸 의식하고 있는 거라는 것을. 편견이 없다고 섣불리 말하는 사람은 이미 편견을 가진 사람이란 말이다.
물론 또한 시혜적인 태도이기도 하다. 아무튼 그래서 그 말에 안심을 하고 톡방에서 사람들과 어울려 대화를 했다.
초반엔 별 문제없나 싶더니 난데없이 어떤 멤버가 나한테 궁금한게 있다고 했다. 친하기는커녕 단독으로 대화조차 해본 적 없는 사람이 갑자기 나한테 궁금한게 있다고? 느낌이 좋지 않았는데 아니나다를까. 그 사람은 나에게 “남자일 때와 여자일 때를 비교했을 때, 어떤게 더 기분이 좋아요?” 라고 물었다. 그러니까 무슨 뜻이냐면.. 성관계 시 오르가슴 쾌락이 남자가 더 좋은지 여자가 더 좋은지를 묻는 질문이었다. 그 사람은 그 질문을 수십 명이 있는 톡방에서 한 것이다. 도대체 이런 것을 나한테 왜 물어보나. 아니 트랜스젠더에 대해 궁금하다는게 고작 섹스 시 쾌락인가? 그리고 궁금하다고 해도 그걸 친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단톡방에 이렇게 대놓고 물어본다고? 너무 당황스럽고 불쾌하고 수치심이 들었다. 이건 트랜스혐오이자 성희롱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미 그 전에 톡방에서 게이 비하발언이 나와서 내가 그걸 지적하는 바람에 분위기가 싸해진 적이 있었기에 또 다시 문제제기를 하기가 어려웠다. 당시에도 내 지적에 대해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오히려 ‘편견을 깨는건 당사자의 몫’ 이라는 반응이 돌아왔었으니 이번에도 나는 전혀 보호를 받지 못할 것 같아서 침묵했다. 아, 트랜스젠더로 산다는건 이런 무례한 질문에 일상적으로 노출된다는 것일까?
톡방 안에서 내 이름을 뒤집은 '수연' 이라는 닉네임을 사용했다. 하지만 뒤집어지는건 내 속이었다.
그런데 그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모임장에게서 개인톡이 왔다.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야겠다’ 면서 나의 수술여부와 성별정정 여부를 물어봤다.
당시는 성확정수술은 했지만 성별정정은 되기 전이었다. 그렇게 말을 했더니 모임장은 “사람들이 혼란스러워할 수 있으니 아예 닉네임에 트랜스젠더라고 표기를 해달라” 라고 요구했다. 그러니까 성별을 ‘여’ 라고 적어놓은 닉네임 칸에, 트랜스젠더라는 의미로 ‘여(트)’ 라고 적어놓으라는 것이었다. 그때도 황당했고 지금 생각하면 더 황당하지만 모임장이 워낙 강경하게 말을 해서 그래야된다고 생각했다. 모임장은 자기는 편견이 없고 주변에 트랜스젠더나 게이 친구들도 있다, 연수씨가 사람들이랑 어울리고 싶으면 먼저 다가가고 노력해야 되는거 아니냐고 했다.
내가 ‘평범하게’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려면 이 정도는 감수해야 하는걸까 싶었다. 나는 평범하지 못하니까 내가 평범하지 못하다는걸 사람들에게 알려야 내가 평범하게 지낼 수 있는걸까.
정말로 알리기만 하면 문제가 되지 않는걸까?
여(트)
혼란스럽고 괴로웠다. ‘여(트)’ 라고 표기해놓으니 나는 사람들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다. 온갖 사람들이 “저분 저 ‘트’는 무슨 뜻이에요?” 라고 질문을 해왔고 나는 그때마다 설명을 해야했다. ‘트’ 라는게 마치 주홍글씨 같았다. 나만 예외적인 특이한 존재, 유별난 돌연변이가 된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