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 남자에요, 속지마세요"
유사품: 어떤 다른 물건과 비슷한 물품
‘유사’라는 말이 물건 앞에 올 때는 그 물건이 ‘진짜’가 아니라는 뜻이다. 비슷하기는 하되 딱 그거는 아니라는 것. 나는 어느새부턴가 나를 유사여자라고 여기게 되었다. 남자는 아니긴 한데, 그렇다고 여자라고 하기에는 무언가 하자가 있어 진짜라고 여겨지지 못하는 존재, 여자가 되고싶지만 여자는 아닌 존재.
이렇게 말을하면 올바른 상식과 인권의식을 갖춘 사람들은 ‘왜 말을 그렇게 하시냐, 진짜여자 가짜여자 이런게 어딨냐’ 라고 야단치겠지만, 내가 살아온 현실이 나를 그렇게 여기게 만든다.
‘당신이 여성으로 정체화한다면 당신은 여성이다’ 라는 말이 물론 인권적으로나 당위적으로는 맞다. 당연히 그래야하고, 누구나 그럴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한다. 하지만 세상은 일반적인 시스젠더여성들에게도 그렇겠지만 트랜스젠더여성에게는 더욱 더 가혹하다. 내가 나를 여성으로 인식한다고 해도 사회에서 요구하는 여성성에 온전히 부합하지 못한다면 여성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셩벌이분법 사회에서 여성으로 인정받지 못한다면 자연스레 남성이 된다. 트랜스여성이라면 남성으로 여겨지는 삶은 절대로 살 수가 없는 사람들인거니까, 여성으로 인정받지 못한다는건 곧 생존의 위협을 의미한다.
그렇게 숱하게 생존의 위협을 겪으며 살아오다보니 언제부턴가 나를 온전한 여성이라고 생각하지 못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냥 ‘여성으로 살고싶어하는 무언가’ 라고 스스로를 생각하는게 차라리 마음 편했다. 비하당하기 전에 내가 나를 먼저 비하해버리는 것이다.
상처를 덜 받고싶은 자기보호의 본능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성희롱이나 성추행의 피해를 겪었을 때 문제의식을 덜 느꼈던건 아마 그래서인 것 같다. 나는 유사품이니까, 그만큼 훼손되는 가치도 적은거고, 그러니까 큰 문제가 아닌거라고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내가 스스로 성적인 가치가 떨어진다고 여기게 된건, 남성들이 일반적인 여성들과 나를 대하는 태도의 차이가 너무 컸기 때문도 있다. 트랜지션을 하기 전, sns에 내가 원하는 모습대로 꾸미고 찍은 셀카를 몇 번 올린 적이 있다. 가발을 쓰고, 화장을 하고, 치마를 입고 등. 뭐, 사회적 기준으로 보면 ‘남자’가 ‘여장’을 한 모습이었다. 조금 서투른 부분이 있을 수는 있어도, 그 때도 그렇고 지금 다시 봐도 그렇고 나는 그 모습이 싫지 않은데, 어떤 사람들은 그게 굉장히 꼴보기 싫었나보다. 전체공개로 올렸던 내 사진들을,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퍼다 나르면서 조리돌림을 했다. 남자가 왜 이러고 있냐, 역겹다, 토나온다 등의 온갖 욕설과 혐오발언들이 난무했다. ‘여자인줄 알았는데’ 남자인게 드러나거나 남자같으면 이리도 욕을 먹는구나.
그래서 한 번은 내가 어릴때부터 눈팅했었던 모 남초 커뮤니티에, 내 사진들 중에서 ‘여성’으로 보일만한 것들을 선별해서 올려본 적이 있다. 여성으로 대우받아보고 싶어서. 그 흔한, 남자들이 인터넷상에서 여자들한테 하는 말들을 나도 들어보고 싶었다. 나도 욕망의 대상이 되어보고 싶었다.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는 신체부위를 부각시켜서 올려보기도 했다. 내 외모와 성적매력을 칭찬하는 남자들의 댓글들이 달리기 시작했다. 찝쩍거리는 쪽지도 왔다. 기분이 야릇하고 좋았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자, 어떤 사람이 내 게시글에
“이 사람 남자에요. 속지마세요”
라며, 내가 그 커뮤니티에 10년도 더 전에 내가 나를 남자로 지칭했던 댓글을 캡쳐해서 첨부하였다. 나는 창피해서 후다닥 게시글을 삭제하고 도망갔다. 10년도 더 전인 과거를 캐어낸 것도 참 음침하고 기분 나쁘지만, 아니 애초에 ‘속지 말라’니. 도대체 뭘 속이고 뭘 속는다는 건가. ‘진짜여자’가 아닌 대상에 성적인 끌림을 느꼈다는게 이성애자 남자들에겐 수치라서 그런걸까.
내가 남성의 위치에서 여성인권을 얘기할 때는 ‘여자한테 잘보이고 싶어서 여자 편드는 보빨러’ 라고 욕을 먹었는데, 남성의 위치에서 벗어나 여성성을 체화하고 수행하고자 하는 위치에 놓이게 되니까 ‘역겨운 여장남자’, ‘더러운 똥꼬충’이라고 욕을 먹게 되었다. 이는 우리 사회에서 성별이분법과 성별간 위계, 성별정체성 및 성적 지향과 성적 실천이 모두 연결되어 있는 문제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 모든 것이 ‘유사여자’였던 내 위치와 교차하며 나의 몸과 마음은 너덜너덜해져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