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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수 Nov 30. 2023

<나의 트랜지션 일기> 34장: 유사여자(2)

박탈,실격,온전하지 못한

[34장: 유사여자(2)]



우리는 여성의 가치가 외모와 성적 매력으로 규정되는 사회에 살고 있다. 남성은 자신이 가진 능력이나 자원, 살면서 이루어낸 성취와 업적 등, 다양한 영역에서 자신만의 가치를 평가받지만 여성은 어떤 능력이나 자원을 가졌고 어떤 성취와 업적을 이루어냈는지를 떠나 오로지 얼마나 젊고 예쁘고 날씬한지에 따라 가치가 매겨진다. ‘여자가 예쁘면 고시 3관왕이나 마찬가지다’ 라는 말이 그 단편적인 예시다. 여자는 예쁘기만 하면 아무 노력 안해도 편하게 살 수 있는거 아니냐고 생각하는 남자들이 있지만 예쁜 여자도 안 예쁜 여자도 어쨌든 계속 남성중심의 사회로부터 평가받는 위치에 있는 이상 편할 수가 없다. 안 예쁜 여자는 예뻐지기 위해, 예쁜 여자는 계속하여 미모를 유지하기 위해 부던히 자기검열을 하고 애써야 한다. 화장,다이어트,성형을 포함하여 자신을 옥죄는 온갖 방식으로. 학생이 교수한테 A+ 학점을 받는다고 해서 교수와 동등한 지위를 갖게되는건 아닌것처럼, 남자들이 끝까지 여자들을 평가하는 위치에 있는 이상 남성과 여성은 절대 동등할 수 없고 여성들의 삶은 편할 수가 없다.


일반적인 시스젠더여성들도 그럴진데, 하물며 트랜스젠더여성들의 삶이야 오죽하랴. 남성중심적인 사회에서 시스여성들은 억압을 받지만, 트랜스여성들은 그 억압받는 여성의 자리에 놓이지도 못한다.     

여성의 가치가 외모와 성적인 매력으로만 환원되는건 분명 문제인건 맞지만 그렇게 사회적 미의 기준에 부합하는 외모를 가지고서 잘 활용하며 살아가는 여성들을 보면 부럽고 박탈감이 들었다. 그 외모를 유지하고 매력을 계발하는 데에 있어서는 나름의 고충이 있겠으나 남성들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별다른 노력 없이 남성들의 관심과 호의를 너무나 쉽게 얻어내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같은 말이라도 안 예쁜 여자나, 혹은 그 ‘여자’에서조차 탈락한 나같은 사람이 할 때랑 예쁜 여자가 할 때랑 남자들의 반응이 천지차이 라는 것이 노골적으로 느껴졌다.       


여성들이 많이 겪는 문제 중에서는 (성차별이나 성폭력 같은 문제는 우선 제외하고)남성들로부터 잠재적 연애대상 취급을 받으며 일상적으로 추근거림을 받는다는 것이 있다. 물론 이것은 당사자들 입장에선 몹시 성가시고 불쾌하고 때로는 공포스러운 경험일 수 있다. 나는 여성들이 그런식으로 대상화되지 않고, 잠재적 여자친구나 ‘고백공격’의 대상이 되지 않고 동등한 동료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원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박탈감이 크게 들었다.

나 또한 일반적인 여성들처럼 꾸미고 싶었을 뿐인데 ‘여장’ 한 것이 되어 징그럽다고 욕을 먹고, 여장이 아니라 그냥 여성으로 보일 수 있게 되었다고 해도 트랜스젠더인게 밝혀지면 나는 여자가 아닌 여장남자가 되어 역겹다고 욕을 먹는다. 일반적인 여성들에게는 자연스럽고 아름답고 권장될 만한 일로 여겨지는 일이 왜 나에게는 더럽고 역겹고 징그럽고 비정상적인 일이 되는지. 지정성별 남성이라는게 너무나도 저주같은 낙인으로 느껴졌다. 죽을때까지 이 낙인을 짊어지고 살아야한다는 것이 절망적이었다. 트랜스젠더에 대해 욕을 하거나 혐오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해도, 트랜스여성을 여성이 아닌 제3의 성으로 여기는 사람들도 많았다. 트랜스여성이 여성으로 살고자 인생까지 걸면서 그렇게 노력을 해도 그들에게는 결국 ‘여성’이 아니라 트랜스젠더에 불과한 것이다.


나는 그것을 주변인들을 통해서 더욱 노골적으로 느껴본 적이 있다. 한 때 친하게 지내던 시스젠더 이성애자 남성 지인들이 있었는데, 남자 중에서는 드물게도 차별과 혐오를 반대하고 소수자인권 및 다양성을 지지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나도 어느 정도는 안심하고 지냈는데, 결론적으로는 다들 내 주변 여성친구들한테 무분별하게 플러팅을 하는 바람에 여러 사람이 불편해졌고 결국 나도 같이 멀어지게 되었다. 겉으로는 안 그런 척했지만 결국 여느 남자들과 똑같이 여자들을 잠재적 연애대상,성적대상으로 밖에 볼 수 없었던걸까. 믿었던만큼 충격과 실망이 컸다. 그리고 그들의 행위가 무례했다는 것과 별개로, 내 주변의 시스젠더여성들에게는 다 한번씩 플러팅을 했던 남자가 나에게만큼은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매우 큰 박탈감으로 다가왔다. 나는 결국 그 남자한테는 여자가 아니었던걸까. 결국 트랜스젠더가 아닌 ‘진짜 여성’ 이어야하고 사회적 미에 부합하는 여성이어야 남자들로부터 관심과 호의, 애정을 얻어낼 수 있는걸까.          


여자임을 확인받고 인정받고 싶어서 소개팅 어플을 해본적이 있다. 모두 알겠지만 이런 곳은 성비가 거의 9:1이다. 성별을 ‘여자’라고 적어놓기만 해도 무수한 남자들로부터 쪽지가 온다.

트랜스젠더임을 밝히지 않고 내 소개와 사진을 걸어놨을때는 남자들이 꽤나 호의적이었다. 외모에 대한 칭찬뿐만 아니라, 관심사나 취향, 가치관을 이야기할 때도 남자들은 나의 말에 경청하며 적극적으로 반응해주었다. 그러던 남자들도 내가 트랜스젠더임을 밝히자 다들 나를 즉시 차단하고 도망갔다. "그걸 왜 이제 말하냐, 나는 그런 취향 아니다"라는 질책을 듣기도 하였다. 유사품에 속았으니 화가 났겠지.



'평범'하지 못해도 괜찮지만 트랜스여성만큼은 '온전한 여자'가 아니라서 안되는 것이다.


비참한 기분이었지만 그래도 관계가 진전된 이후에 밝혀져서 폭력을 당하는 것보단 차라리 이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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